도꺼 일기

by 소인

一人暮らし(18)


요일이라고 해도 매일 집에 있는 입장에선 별 느낌은 없다.

만 오랜 습속에 길들여져서인지 주말이면 하던 걸 멈추고 놀고 싶다. 수영장도 주말엔 쉰다. 아침 먹고 섬의 남쪽으로 내려가 보기로 했다. 섬에 사는 동안 섬의 구석구석을 살피기로 했는데 서두를 건 없다. 천천히 조금씩 다니다 보면 구불한 해안선을 따라 한 바퀴 돌 것이고 사방으로 뻗은 길을 더듬어 내륙을 보게 될 거다. 전국 어디를 가도 사람이 붐비고 사람이 모이는 데는 술과 밥을 팔고 잠자는 곳이 생겼다. 일과 휴식 또한 중요한 생명 활동이다. 노동과 여가에도 수많은 다양성이 존재한다. 하지만 차이의 다양성은 차별에 진작 묻혀버렸다. 작은 배낭에 사과 한 개를 넣고 보온병에 뜨거운 보리차를 담아 집을 나섰다.


침에 영하로 떨어진 기온은 빠르게 올라간다. 구불한 도로를 가다 보면 해안이 들쑥날쑥하게 드러나는데 그때마다 움푹 들어간 바다엔 마을이 오종종하게 모여 있었다. 마을 앞에 떠 있는 무인도는 머리끝까지 소나무를 밀어 올리고 발목을 짠물에 적시고 있다. 무인도의 발목은 커다란 바위들로 이루어진 뼈대 같았다. 수평선이 길게 이어지다 바위에 짙은 그림자를 만들었다. 잔잔한 바다 위로 불쑥 해녀가 솟아올라 휘이- 숨비소리를 토할 것 같았는데 바다는 고요하다. 벚나무 가로수가 주종이고 동백나무가 사이마다 군락을 이루고 늘어섰는데, 섬에서 동백나무는 자생하는 우점종이라 애써 힘들여 심을 것도 없다. 해송 아래 관목과 덤불이 자란 곳에는 어김없이 동백이 검푸른 잎을 무성하게 키우고 있다. 햇발이 좋은 양지머리에 있는 동백의 잎은 햇볕에 그을린 듯 검붉은 초록색이다. 겨울의 중간인데 실핏줄의 피돌기가 시작하는 듯이 보인다. 수목의 생명 활동은 자세히 관찰해야 비로소 드러나는데, 인간의 행위와 맞먹는다. 만약 사람이 나무 옆에서 몇 년을 지켜본다면 나무의 표정이나 한숨, 주름살까지 관찰하게 될 거다. 비바람에 저항하는 나무의 움직임을 슬로 모션으로 본다면 사람과 닮았음에 놀라 자빠질지도 모른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무의 감정 표현을 모르고 지나친다. 나무도 동상과 화상을 겪고 부드러운 햇살과 바람에 감응한다. 한여름의 폭우를 견디는 나무를 본다면 뿌리와 가지의 끈질긴 사투를 느낄 수 있다. 언제나 한 곳에 머무는 나무는 없다. 인간의 시계와 나무의 시계는 달라 인간은 백 년의 삶을 사는 데 비해 나무는 수백 수천 년을 살기 때문이다. 숲의 천이는 좋은 예다. 광합성으로 산소를 뿜어내는 나무가 없다면 애초에 인간의 역사와 문명은 지구에 존재하지 않았음은 물론이다. 도시를 벗어나면 어디를 가나 수목의 초록과 바다의 푸름으로 덮여 있는 섬은 온화한 표정이었다.


울 해수욕장은 텅 비었다.

텅 비었지만 바다와 무인도의 바위, 바위를 적시는 짠물과 물에 뜬 오리, 해송과 마른 풀이 클 대로 자라 늘어진 마른 몸을 바람에 맡긴 채 흔들린다. 철 따라 오가는 사람이 드물었을 뿐 풍경은 그대로 완벽하다. 사람이 없는 곳에서 쓸쓸함을 느끼는 건 군중 속에서 부대끼는 습관이 불러일으킨 감정이다. 쇠로 만든 감방에서도 인간의 머리는 터질 거 같다. 사유는 전용 도로 없이 탁 트인 활주로나 공터 같아서 아무 데서나 바람을 일으켰다가 사라진다. 너는 나를 기억하지 않는 날이 쌓여 가도 나는 널 아직도 붙들고 있다. 바다는 잔잔한 거울 같아서 물결이 모래를 툭 치고 밀려갔다 밀려온다. 젖은 모래 위에 사람과 새가 만든 발자국이 어지럽게 찍혔다. 맨발로 모래를 밟고 지나간 사람, 주인과 이른 아침 산책 나온 개도 흔적을 남겼다. 활처럼 굽은 모래사장을 걸었다. 건너편의 무인도가 손에 잡힐 듯하다. 한 오륙백 미터쯤 될까. 물을 보면 드는 생각은 저기까지 헤엄쳐 건널 수 있을까다. 바다에서 스노클링 한 게 십오 년인데 수영이 내게 꽂힐 줄은 미처 몰랐다. 제대로 된 영법을 배운 적이 없었다. 더 늦기 전에 홰홰 팔다리를 저어 수면을 미끄러져 가고 싶었다. 인간은 소금쟁이처럼 물 위를 미끄러져 대양을 건넌다 해도 물속의 사정엔 깜깜하다. 빙산의 일각이란 말인데, 그렇게 바다를 건넌 소금쟁이가 삶과 우주를 정복했다고 큰소리친다. 미안하지만 만약에 우주 공간 어딘가에 우리보다 월등한 지적 존재가 실재한다면 아마 알고도 모른 척하지 않을까 싶다. 지금 겪고 있는 인간의 문명은 그들의 조상이 거쳐온 암모나이트 조개의 화석과 같을지 모른다. 어쨌든 난 지금 수영으로 무인도에 닿고 싶을 뿐이다.


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무엇으로'는 수단과 방법을 말하는 걸까. 수단과 방법이라면 물질과 정신을 아우르겠다. 물질은 사는 동안의 일을 말함이다. 인간은 노동을 해야 섭생이 가능하도록 설계되었다. 정신은 일생 동안 살아가면서 세계를 보는 가치를 말함인데 한 사람이 중요한 가치의 척도를 어디에 두는가의 문제다. 사람의 한뉘를 통한 노동과 가치는 그가 태어난 환경과 조건에 영향을 받는다. 범박하게 말해 역사, 문화적 요인이 일과 정신의 가치를 좌우한다는 거다. 아무 생각 없이 매일 일어나 밥 먹고 일터로 나가고 저녁이면 들어와 씻고 자는 반복을 되풀이하다 툭 하고 떨어지는 동백꽃처럼 죽는 사람도 있을 거다. 그에겐 '아무 생각 없음'이 삶 전반을 휘어잡는 가치인지 모른다. 하지만 대부분의 인간은 공동체에서 자신의 위치에 따라 일정한 역할의 페르소나를 수행하며 살아간다. 거기에서 영향이 지대한 부면은 전통적 습속과 내재된 가치관이다. 우리는 습속에 젖은 옷을 말릴 생각 없이 입고 산다.


교 사상의 전통이 강한 사회는 개인화된 세태에서 전통의 습속을 완전히 떨쳐내진 못한다. 가정과 사회에서 서로를 존중하고 배려하는 공동체의 전통이라면 무슨 상관이겠냐만 차별과 불평등이 문제다. 가족이 해체되는 상황에서 더 이상 안전망은 없다. 자본주의 사회가 발전을 거듭할수록 위계의 차별과 불평등은 확장, 심화되었기 때문이다. 체화된 가치는 사회 구석구석에 바이러스처럼 침투해 몇 번을 씻어 말려도 얼룩과 냄새가 빠지지 않는 넝마가 되었다. 대중적인 시선에서 역사를 논하기란 지난한 일이 되고 말았다. 왜냐면 역사의 불편한 진실을 가리는 세력이 득세하기 때문이다. 나쁜 역사도 배워야 할 역사라고 말하면, 부끄러운 선대의 과거는 잊고 새로 출발하자고 한다. 과거 없는 현재가 어떻게 존재하며 현재 없는 미래가 가능할까. 가짜 뉴스와 왜곡된 역사에 젖으면 과거와 현재, 미래를 재단하는 변별력은 쓸모없이 된다. 믿고 싶은 것만 믿으며 진영의 논리에 빠져 남의 로맨스는 죄다 불륜이라고 떠들게 된다. 강한 자는 부끄러운 고백을 하는 용기를 낼 수 있지만 교활한 자는 실수를 자꾸 포장한다. 거짓말은 할수록 복잡한 그물을 짜게 되어 원래의 논점으로 돌아가는 것조차 어렵게 될 지경이다. 뒤죽박죽이 된 착종된 현실은 누가 처방전을 내놓아도 더 이상 새로운 동력을 상실한다. '앎'이라는 건 경험과 인식이 계속 변화하면서 확장되는 과정인데 진영의 논리에 빠진 이들은 인식을 확장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는 것 같다. 치유가 불가능한 환자가 할 수 있는 건 쾌락에 취해 시간을 보내며 죽음을 기다리는 일이다.


난 사회학자도 예언가도 아니다.

노동의 위계에서 밀려나는 중이다. '일반인'은 사회의 위아래도 아닌 중층의 대중을 지칭하는 말이라면 그렇게 생각해도 된다. 엄밀히 말해서 물질적 위계로는 최하층이고 나이로는 고령이 아닌 초령 노인(the young-old)이다. 노인이 현자를 의미하는 시대는 지났다. 노인이 죽으면 도서관 하나가 사라진다는 속담은 전설이 되었다. 고독사하는 노인이 증가하는 가운데 노인이 죽으면 사회의 짐이 하나 덜어질 뿐이다. 노인과 청년을 대비하곤 하는데 못마땅하다. 세대는 전 계층을 아울러 살펴야 한다. 아동과 청소년, 청년, 장년, 노인은 전방위적 위기 상황을 맞게 되었으니 계층 간 비교는 어불성설이다. 남녀 간 혐오는 경쟁의 파도에 부유하는 자신들의 불안을 드러낸다. 신자유주의로 양극화는 절정으로 치닫고 부모의 능력이 대물림되는 상황에서 위계 상승의 꿈이란 가당키나 한 말인가. 기후 변화와 코로나 팬데믹은 낙원이라고 믿었던 공동체의 환경이 얼마나 허약한 지반에 지탱하고 있는지 잘 보여주었다. 국가는 생산성이 아니라 개인의 삶이 행복한가에 초점을 맞춰야 하지만 성장을 바라는 기업가, 부자들의 입맛도 맞춰야 하기 때문에 양극화의 처방은 찔끔거리기 마련이다. 핏기 잃은 실업자 청년의 삶은 현상 유지조차 어렵게 되었다.


간은 어디서나 홀로 서 있는 존재다. 아내의 처갓동네인 그곳에서도 여기서도 난 철저히 이방인이다. 따지고 보면 현대인은 모두 이방인이다. 초록별의 행성에서 태어난 생명체는 시간의 물살에 휩쓸려 허우적대다 가라앉고 만다. 물의 입자가 모여 내를 이루고 강을 따라 바다로 쓸려가듯 삶의 입자는 역사의 페이지를 채우기에도 모자란다. 왜 내가 역사를 채워야 하는지 항변하더라도 당신이 태어날 때부터 죽을 때까지 통계는 따라다닌다. 죽어서도 과거의 통계는 계속 소환된다. 내 삶은 내 것일 뿐이라고, '나는 자유다'라고 외쳐도 당신의 자유는 이미 태어날 때부터 구속 상태에 있었다. 인간 존재에 자유란 말은 태초부터 어울리지 않은 옷이었다. 자유를 그리며 불안한 구속의 옷을 걸치고 살다 떠날 뿐이다.


젖은 모래에 발자국을 찍으며 걷는다.

떠나온 B군에서 나의 일상은 일과 일의 끊김의 연속이었다. 휴식과 쉼은 언제나 불안한 시간이었지 창작이나 재충전과는 거리가 멀었다. 아내는 매일 출근했고 딸아이는 나처럼 일과 끊김을 반복했다. 결혼하고 싶은 생각은 있어도 현실의 그림자를 지워내기엔 별다른 대책이 없으니 사소한 것에서 즐거움을 얻으며 산다. 부모의 지위가 높고 재산의 많고 적음이 자식의 미래에 영향을 주겠지만 부모에게 기대기란 포기했다. 가난한 현실을 물려준 상황에 미안하다. 포기와 체념으로 위안을 얻고 정신 승리를 요구하기엔 현실은 너무 강하고 공허할 뿐이다. 긴장된 대화로 서로에게 상처주기보다 떨어져 사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문자로 소식을 주고받는데 지금은 서로 편안한 감정이다. 오래전 집을 떠나 산판 현장에서 먹고 잤다. 낮에는 산에서 나무를 베고 저녁이면 농가에서 동료들과 잤다. 한밤중에 화장실에 다녀오면서 하늘을 봤다. 뭇별이 깔린 밤하늘 아래의 내가 뜨악하게 느껴졌다. 아내와 아이들이 있는 집으로 달려가고 싶었다. 지금은 모든 게 바뀌었다. B군에서 살든 떠나든 삶의 구태의연과 진부함은 달라지지 않을 거다. 결론은 어떻게 살아도 흔해빠진 뻔함이라면 산책이라도 하는 게 낫지 않겠는가. 나는 산책하러 섬에 내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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