一人暮らし(21)
오미크론 변이의 확산세가 심상치 않다.
이대로 가면 3,4월에 수만 명의 확진자가 발생할 수도 있다고 방역 당국은 말한다. 에볼라, 메르스, 사스에 이어 코로나 바이러스는 인류에게 중대한 과제와 질문을 던진 셈이다. 사람들은 '일상의 회복'을 간절히 원하지만 우리가 돌아갈 일상은 물 건너간 것처럼 보인다. 인류는 삶의 양식을 송두리째 바꿔야 할 기로에 섰다. 그러나 과연 지금의 풍요로운 상황을 포기할 마음의 준비는 되어 있을까. 어림도 없는 얘기다. 아편 같은 자본에 취한 노예 노동에서 안락을 구하고 쾌락에 탐닉하는 구속의 자유에서 한 치도 벗어나기가 두렵다. 자본이 품어주지 않는 경계의 밖은 암흑 속의 절벽이다. 체념의 희망, 포기의 꿈, 역설이 난무하는 착종된 존재가 어찌 독수리 오 형제가 되어 지구를 구한단 말인가. 너와 우리의 삶은 도대체 어디로 향하는지 종잡을 수 없다.
해양학자 서종석 교수는 「어업의 품격」에서 해양 수산자원의 고갈을 심각하게 파헤친다. 범박한 예를 들자면 가난하던 시절에도 우리의 밥상엔 고등어 갈치 명태가 자주 올랐다. 많이 잡히고 값이 싸서 서민의 중요한 단백질 공급원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어종과 크기를 가리지 않는 남획과 싹쓸이 어업, 중국 어선의 불법 어업 등으로 수산물 값이 치솟고 있는 실정이다. 어린 갈치는 사료공장으로 가고 오징어 새끼인 총알 오징어를 횟집에서 판다. 연안에서 잡히는 고등어보다 수입산 노르웨이 고등어 라야 먹을만하다. 산란장에서 인공 부화해 방류한 명태는 보이지 않는다. 어획량이 급감하자 급기야 어선들은 배를 개조해 관광 낚시어업으로 바꿔서 수입을 보장하기에 이르렀다. 더 지나면 쥐포는 물론이고 마른오징어를 씹던 시절은 선대의 추억으로 기억할지 모른다. 만약에 정부에서 고기 먹는 횟수를 일주일에 한 번으로 정하고, 차량 요일제를 정하고 에어컨 사용 온도를 올린다면 순순히 따를 시민이 있을까. 아침 식탁에서 고기를 구워야 밥이 넘어가는 사람은 목숨을 걸고라도 저항할 거다. 고기는 그의 목숨이니까. 축산 사육과 화석 연료 사용은 지구의 온도를 올릴 뿐 아니라 인간의 식량을 가축에게 먹이기 위해 농사를 짓는 꼴이 된 거다. 반면 남반구 사람들은 기아로 허덕인다. 다국적 기업의 원료 재배로 농토가 사라진 주민들은 플랜테이션 노동자로 전락해 식량을 사 먹는 처지가 되었다. 자국의 농민을 보호하기 위해 남아도는 쌀을 바다에 쏟아붓는 선진국은 돈을 들여 기아를 해결할 마음이 없다. 인식의 전환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인간의 마음을 변화시키는 일이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란 걸 안다면 전망은 어둡기만 하다.
우연한 기회에 그린피스 환경 감시선의 주방 보조에서 일등 항해사가 된 김연식은 '그린피스 활동가들이 채식하는 까닭은 채식이 환경오염을 막는 중요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지구에는 음매음매 소가 15억 7천 마리나 있는데, 이 소들이 트림과 방귀로 배출하는 메탄가스가 연간 1억 5천만 톤이다. 엄청난 놈들이다. 소들이 지구온난화를 유발하는 비중은 전 세계 모든 자동차, 비행기, 선박 같은 교통수단이 배출하는 온실가스의 1.5배다. 공장식 대량 축산업은 이처럼 심각한 환경오염원이다. 그러니 고기를 적게 먹고 채식이나 다른 대안을 찾아야 한다'라고 말한다. 95미터 인공 쓰레기산을 난지도 공원 유산으로 물려준 서울은 다시 인천 등지에 거대한 쓰레기 산맥을 만드는 중이다. 환경 보전은 멀고 당장 나 편한 소비는 코앞이다. 멀리 내다볼 여유가 있는 사람은 환경론자거나 도덕심을 지닌 시민, 부자들이다. '거창한 지구의 위기를 들먹여 내게 강요하지 마라'다. 생전 모르던 사람의 장례식장에서 슬픈 표정을 짓는 기분인 사람도 있을 거다. 이러다 말겠지는 과거의 얘기다. 지구는 기후 변화의 임계점을 넘어섰다. 생태 문제나 기후 변화의 심각성에 대해 스스로 조금 다르다는 우월 의식은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이 공허하다.
오미크론이 지구를 덮으면 수영 강습은커녕 수영장에서 쫓겨날 판이다.
다시 거리두기가 강화되면 문화원에서의 수채화 그리기도 무산될지 모른다. 그림은 평생의 취미 생활이었다. 누구나 그런 것처럼 어릴 때 그림에 소질 있다는 말을 자주 들었다면 그런 아이는 미대에 갔으면 화가가 되었거나 미술 교사가 되었을 거다. 그러나 현실은 순탄치 않고 계획대로 흐르지 않는다. 미대보다 다른 쪽이 보이고 유혹한다. 또는 아예 대학 갈 형편이 되지 않아 일자리를 기웃댄다. 인간의 소질과 능력은 알 수 없어서 평생 튀어나올 수도 있고 끝내 튀어나오지 않은 채 생을 마감하기도 한다. 선생 집안에 선생 나오고 의사 집안에 의사 나오고 환쟁이 집안에 화가가 나온다는 말은 유전 인자의 중요성이지만 난 이제 그런 내리 물림은 반만 믿는다. 인간의 능력은 보이지 않게 요소마다 숨어 있다고 믿는다. 다만 주머니 속의 송곳처럼 뚫고 나오지 않았을 뿐이다. 노력은 소질을 키우는 과정이지만 그런 의지조차 뿜어낼 수 없는 환경과 조건이 사람의 일생을 좌우한다. 해마다 수능 때가 되면 사회는 온통 수험생의 앞날에 대해 점친다. 한 번의 필기고사로 운명이 결정된다느니 인 서울 해야 밥은 먹고 산다느니 당일 고사장의 무탈을 빌기에 정신이 없다. 난 수십 만 수험생의 배경처럼 편의점에서 배달 오토바이 위에서 공장에서 삶의 무게를 견디는 청년들을 생각한다. 처음부터 기울어진 삶의 운동장에서 남의 일로 바라보는 입시 전쟁을 관전하는 그들의 기분은 어떨지 말이다. 난 예술대학의 문창과에 합격하고 등록금이 없어 입학을 포기했다. 한국 전쟁에 참전한 아버지가 뒤늦게 예편한 이후 월급쟁이를 시작했다. 올망졸망 육 남매가 차례차례 대학에 들어갔다. 내가 손을 내밀 처지는 아니었다. 대학을 포기하고 객지를 떠돌기 시작했다. 젊은 날의 방황은 이후 내 삶의 궤도를 짜부러뜨릴 정도로 독하고 역했다.
섬의 서쪽에 있는 수영장에서 확진자가 많이 나왔다.
거긴 방역 당국이 거리두기를 늑줄 주자 강습을 시작했단다. 퐁당퐁당 줄 지어 입김을 토하고 물을 마셔댔으니 사달이 난 모양이다. 우리 쪽은 강습은 전폐했고 간신히 자유 수영만 허용했을 뿐이다. 오미크론이 확산되면 수영장은 물론이고 문화원의 수채화 교실도 장담하긴 어렵다. 날 따듯하면 바다에 나가 멱이라도 감지 방에서 책만 파다간 쥐 생원 되기 십상이다. 책은 인식의 확장을 가져다 주기도 하지만 편협한 안목을 만들기도 한다. 독서 틈틈이 산책과 사람 만나기는 필수다. 하긴 난 혼자서도 잘 논다. 문제는 이 지긋지긋한 바이러스 일상에서 하루빨리 벗어나는 일이다. 음울한 공기는 도처에 퍼져 삶의 무력증에 자빠진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그런데다 괴물 같은 얼간이가 나타나 나라를 통째로 거덜 내려하고, 덩달아 굿판에 빠진 시민들이 그에게 박수를 보내고 있다. 미친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