一人暮らし(22)
근데 여긴 왜 이리 추운 거야.
새벽에 개 데리고 충혼탑에 산책 나갈 때는 영하 -13도이더니 집에 돌아오니 십사 도로 떨어진다. 장갑 낀 손이 시려 주머니에 찌르고 걷는다. 섬과는 십도 이상 차이가 난다. 섬사람들은 영하로 떨어지면 온몸을 둘둘 감고 자라목처럼 움츠리고 다닌다. 4월 되면 수영 동호회 사람들은 open water swimming을 한다. 해수욕장 앞의 무인도를 돌아오는데 3km는 거뜬히 헤엄친다. 나도 따라나서기로 했다. 난 죽어라 해야 삼사백 미터나 갈까. 고작 한 달 살았는데 내려가고 싶다. 이번에 내려가면 전보다 더 바쁘다. 코로나가 전국을 장악하면 방에 틀어박혀 지낼지도 모른다. 쌀이나 넉넉히 사둬야겠다. 미술 도구는 거의 완벽하게 챙겼다.
집에 돌아와 섬에서 가져온 책을 읽었다.
섬의 도서관 책이 내륙의 추위를 견딘다고 생각하니 신기하다. 세상은 생각하면 신기한 것 투성인데 모두들 진작 알고 있었다는 듯 태연히들 살아간다. 신기한 게 평범하다면 진부함 속에서의 의미 찾기는 각자의 몫이다. 나처럼 함부로 생겨먹은 놈은 그걸 즐기며 산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권태가 지겨워 미쳐버렸을지 모른다. 아무나 사랑할 순 없지 않은가. 이데올로기는 그때그때 꺼내 쓰는 티슈와 같아서 소용이 다하면 유효기간이 끝나는 제품이다. 요즘 이데올로그들은 데마고기(demagogy)에 방부제를 쳐서 오래 두고 먹으라고 부추긴다. 철 지난 이념 타령, 웃기지도 슬프지도 않은 경제 민주화로 블랙 코미디를 연출한다. 신기한 건 흔해빠진 뻔한 줄거리를 예상하고도 환호작약이다. 얼간이 후보를 진짜로 좋아하는 게 아니라 미운털이 박힌 도덕으로 무장한 놈들이 우리 집 살림을 조져놓았다는 거다. 바다의 고기를 내가 잡지 않으면 어떤 놈이 가로챈다는, 그래서 어족 보호를 위해 쿼터제를 정하는 건 배신자의 출몰을 염려한 다수의 불안한 이기심으로 순탄치 않다. 그러는 사이 바다를 정말로 조져놓았다. 새끼 고기는 버리거나 사료 공장에 보내고 돈 되는 것만 넘겨 싹쓸이해버렸다. 공유 자원의 배신자 논리는 '모든 것은 모두의 것'이라는 P.A. 크로폿킨의 생각을 보기 좋게 뒤집었다. 모두의 것이란 얘기는 임자가 없다는 얘기다. 밤에 와서 말뚝을 박거나 도륙을 내 거나 발 빠른 놈이 장땡이라는 얘기는 승자승 독점의 자본주의 패악질을 설명한다. 강한 국가의 등장이 필요한 시점이나 국가조차 자본에 먹히고 만다. 잡문을 며칠 쓰지 않으니 편하고 홀가분한데 외려 머릿속이 산만해진 느낌이다. 잡스러운 게 내 속성인가 싶다.
곰돌이 별칭을 '아무 생각'으로 정했다.
아무 생각은 산책이 최고의 도락이다. 마당에 있으면 우울 모드였다가 옷 입고 나가면 눈이 빛나고 들뜨기 시작한다. 밖에 나가면 코는 촉촉하게 씰룩거리고 지나는 곳의 냄새와 공기의 감촉을 느끼느라 바쁘다. 두 마리였다면 무념이와 무상으로 이름 지을 텐데 두 마리는 버겁다. 승질은 뭐 같아서 제가 싫으면 죽어도 싫단다. 비누칠하다 제 몸에 손대는 걸 싫어해 이빨 드러내고 으르렁대다 혼나면 다음날까지 삐친다. 겁이 있어 산에서 고라니 쫓다가도 이내 주인 곁으로 달려오는데 요즘은 행동반경이 넓어졌다. 아무 생각은 내가 남쪽에 있어도 아무 생각 없이 놀다가 어느 날 나타나면 길길이 뛰며 반겨줄 거다. 녀석에겐 이데올로기도 자본의 탐식도 무지 무쌍한 데마고기도 없다. 식구들보다 더 기뻐하는 아무 생각을 사랑한다. 물론 식구는 내게 김치와 반찬을 푸지게 내준다. 섬에서 오래오래 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