一人暮らし(23)
돌아오는 길은 평탄했으나 남해의 소금기 섞인 바람이 느껴질 즈음 막히기 시작했다. 서울이 중심이라고 생각했던 생각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각각의 도시로 돌아가는 전국의 흩어진 자식들은 곳곳에 정체를 만들었다. 서울 대구 부산이 모두 삶의 터전이었다. 부산으로 돌아가는 자식들이 긴 행렬을 이뤘다 나는 모두에 분명히 돌아오는 길이라고 했다. 섬은 이제 내가 돌아갈 곳이다. 하지만 점점이 흩어진 고향처럼 내가 돌아갈 곳은 몽골 초원의 말과 양을 치는 게르처럼 멈춤 없이 유동하는 공간일 뿐 붙박이로 살아가는 땅은 아니다. 별의 흐름이 바뀔 뿐 별은 어디 앉아서도 밤마다 나타나 길을 비춰준다. 예전의 별자리는 방향과 점을 치는 예언의 도구였다. 이천 년 전 동방박사는 아기 예수의 탄생을 보려고 별을 따라갔다. 오늘의 사람들은 사회학의 통계를 손안에 쥐고서 자신의 욕망을 따라간다. 불가의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는 모든 것은 오로지 마음이 지어내는 것임을 뜻하지만, 마음은 다시 오욕칠정(五慾七情)으로 나뉘기 때문에 인간의 마음은 종잡을 수 없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사람은 자신의 마음을 따라 살아가는 미욱한 존재일밖에. 다만 일상을 지배하던 고정관념의 독재가 멈추고 새로움에 관한 사유가 가능해지길 바란다. 섬의 도시가 어둠에 묻히고 나서야 짐을 날랐다.
예정보다 하루 먼저 집을 나섰다.
지도에서 한반도의 남쪽을 향해 고등어 배 가르듯 죽 그으면 선이 끝나는 곳이 섬의 끄트머리다. 배 가른 생선에 막소금을 툭 뿌리면 점점이 흩어지는 데가 바로 다도해의 섬이다. 섬의 남쪽에 가면 해금강이 있다. 수제비처럼 동동 떠 있는 섬을 보러 가야겠다. 설은 다른 집처럼 담장 너머 기름 냄새를 풍겼지만 아들은 오지 않고 처남댁과 장모가 다녀갔다. 장모는 사위 눈치를 보면서도 꾸역꾸역 숟가락질을 했다. 감정을 드러내며 오래 사셨으면 좋을 텐데.
아침 생각은 없고 커피 물 올리는데 오금의 안쪽에 뭔가 만져진다. 신경에 혹이 있다는 걸 안 뒤부터 버릇이 되어 가끔 손바닥으로 다리를 만진다. 아프진 않은데 신경이 쓰인다. 강원도 살 때 복숭아뼈에 물혹이 생겼다. 가정의학 전문의가 주삿바늘로 물을 뺐다. 그러면서 혹시 모르니 초음파를 찍자고 했다. 그러라고 했다. 초음파 사진을 본 의사는 큰 병원에 가서 MRI를 찍어 보란다. 다시 큰 병원에서 사진을 찍었더니 이번엔 서울의 본 병원에 가란다. 대형 병원의 젊은 의사는 영상을 보더니 양손으로 오금을 눌렀다. 찌릿하고 전기가 왔다. 하마터면 젊은 의사의 뒤통수를 갈길 뻔했다. 신경에 붙은 혹은 커지면 제거하고 미세 접할 술을 하는데 완치율은 33퍼센트란다. 다리가 마비되거나 심하면 절단까지 간단다. 육 개월 후에 다시 오라고 했지만 가지 않았다. 아프지 않기도 했지만 겁이 나서였다. 벌써 칠 년 전 일이다. 가끔 절룩거리고 아프지만 않으면 평생 달고 살기로 마음먹었다. 지금 한참 빠진 수영 걱정이 났다. 오리발을 끼고 살살해야 하나. 고수 선생은 물에 들어가자마자 킥판 잡고 발차기부터 하라고 했다. 삼십 분을 채우면 얼굴이 후끈 달아오른다. 땀 많은 체질에 물 밖이라면 육수처럼 땀을 쏟았을 거다. 고수 선생도 평생 해온 자세로 무릎의 연골이 죄다 찢어져 수술했다. 조선소에서 철판 때우다 직업병을 얻은 거다. 그는 무릎을 풀기 위해 발차기를 나보다 오래 한다. 오리발 레인으로 갈아탈까 고민한다.
짐에서 물감과 팔레트를 꺼냈다.
마스킹 테이프를 길게 붙이고 물감을 하나하나 짜 놓고 색깔 이름을 써나갔다. 설 전날 시내의 문구점에 나가 전문가용 수채 물감 18색을 샀다. 반 이상은 굳어버린 십여 년 전에 산 30색은 튜브를 가위로 잘라 쓸 생각이다. 미술 도구를 뒤지다 보니 그동안 그림에 정성을 쏟은 흔적이 얼룩덜룩 묻어났다. 어디에 뒀는지 세 개나 있던 이젤은 끝내 찾지 못했다. 버리진 않았을 텐데 행방이 궁금하다. 요즘은 기억하지 못해 새로 사는 물건이 많다. 너무 꼭꼭 숨겨두면 물건도 주인과 숨바꼭질을 하는가 보다. 지인이 준 포스터물감은 물을 조금씩 채워 두었다. 손 글씨 배울 때 산 거라며 물감과 붓 나이프까지 주었다. 추운 날 아침 고맙게도 들고 나왔다. 그녀에게 그림을 선물하겠다고 했다. 그림 배운다는 놈이 큰소리부터 치다니 참 못 말리는 성미다. 그녀의 슬픈 듯 깊은 눈을 볼 때면 윤동주 시인의 '자화상'이 떠오른다.
자화상
산모퉁이를 돌아 논가 외딴 우물을 홀로 찾아가선 가만히 들여다봅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습니다.
그리고 한 사나이가 있습니다.
어쩐지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가엾어집니다. 도로 가 들여다보니 사나이는 그대로 있습니다.
다시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그리워집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고 추억처럼 사나이가 있습니다.
'사나이'는 '여인'으로 대입할 수도 있다. 결국 사나이는 나 자신이란 얘기다. '나'는 밉고 그리운 존재다. 시는 시인이 연희전문을 다닐 때 쓴 것인데, 1930년대의 맥락을 이해하면 시의 마음이 읽힌다. 시대의 우울에 갇힌 시인은 일제의 야만에 비참하게 생을 마감했다. 마트에 장 보러 갔다가 그녀를 만났다. 깊은 눈을 다시 한번 보았다.
나이프는 마스킹 액을 바를 때 쓰고 포스터물감은 불투명이니 요긴하게 쓸 때가 있을 거다. 안 쓴다고 남 주긴 쉽잖다. 사람들은 물건에 밴 생각을 쉽게 버리지 못해 오래도록 붙들고 산다. 사물에 인간의 감정이 이입된 셈인데 노인의 경우 아무 데나 마음을 붙여 집을 쓰레기장으로 만들기 일쑤다. 자꾸 버리고 비우는 게 좋다. 다른 것이 빈자리를 채우지 않아도 좋으니 비우고 싶은데 나도 그러지 못하고 엉거주춤 사는 꼴이다. 극작가 버나드 쇼의 묘비명은 '우물쭈물하다 내 그럴 줄 알았어!'인데 우물쭈물하지 말자 특히 열정 앞에서는. 버리고 비우면 맑은 물이 채워질까.
올라갈 때 내 차를 아찔하게 추월한 덤프트럭이 펑크 난 걸 봤는데 집에 가서 보니 내 차 앞바퀴가 안쪽으로 닳았다. 교체한 지 일 년 안 됐다. 고속도로 내려오며 내내 불안했다. 내일은 수영장 다녀와서 얼라인먼트 보고 앞뒤 바퀴를 바꿔 끼워야겠다. 놀아도 돈 들 일이 생기는 건 물건이 많아서다. '사람은 자신이 필요로 하는 것을 찾아 온 세계를 여행하다가 집에 돌아와 그것을 발견한다' 소설가 조지 무어의 말이다. 잡념처럼 물건만 덕지덕지 달고 산다. 아침을 먹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