一人暮らし(24)
수영을 마치고 차 고치러 갔다.
오래 탄 차는 내가 진단한 것 이상의 병징을 드러냈다. 설명하자면 얼라인먼트 부조화로 앞바퀴가 편마모 된 건 맞지만, 마모된 바퀴의 상태는 앞뒤로 바꿔 끼워도 천 킬로를 타기 어렵다는 진단이고 앞바퀴 하부의 로우 암(low arm) 노후로 교체하지 않으면 얼라인먼트를 조정해도 도루묵이란 얘기였다. 결국 왜관이 고향이고 구미 사는 아내랑 아기가 유 월에 섬에 내려와 합류하기로 예정된 성실한 젊은 기사의 진단은 앞 타이어 두 개와 양쪽 로우 암의 교체, 얼라인먼트 조정이었다. 얼라인먼트 견적이 몇 만원인데 열 배가 넘는 금액이 나왔다 차는 낡고 주인도 오래되었으니 함께 가려면 다른 방도가 없다. 타이어는 생명과 같다. 더 살기로 하고 수리를 부탁했다. 바로 옆에 있는 도서관에 가서 서가를 돌며 책을 살폈다.
집에 도착해 늦은 점심을 먹고 물감 놀이를 했다.
붓질은 생각처럼 되지 않는다. 민들레를 그렸는데 씀바귀 꽃인지 애기똥풀인지 분간이 안 가고, 개나리를 칠했더니 난데없이 노란색 바람개비가 어지럽게 떠다닌다. 마음만 급했지 첫술에 배부를까 싶어 시간을 두기로 하고 능포항에 나갔다. 요즘 조각 공원 산책보다 능포항 등댓길을 자주 걷는다. 혼자 걸으면서 생각한다. 난 왜 지금 혼자인가. 나이 들면서 소중한 건 친구라는데 내겐 있던 친구마저 떨어져 나갔다. 가끔 술 생각이 날 때면 함께 술 마시며 어울렸던 친구들이 생각나지만 그건 추억의 부분이지 삶을 뒤흔들 만큼의 무게로 다가오진 않는다. 물론 벗도 좋고 우정도 좋다. 하지만 만날 때마다 흔해빠진 인생 타령이거나 재테크에 골몰하는 불안한 얘기에 장단을 맞출 수도 들어주기도 힘들었다. 삶의 허망함이야 익히 꿰고들 사는 거지만 무엇이 허망함이고 현실의 엄중함인지 길게 얘기하는 건 모두 거절하는 눈치였다. 복잡하고 머리 성가신 얘긴 관두고 술이나 마시잔 분위기였다. 언제부턴가 내 쪽에서 연락을 끊고 밖에 얼굴 비치지 않으니 자연 관계는 소원해지다 멀어졌다. 혼자인 게 편하고 쓸쓸해도 좋았다. 외려 멀리 사는 친구와 가물에 콩 나듯 안부 주고받는 게 애틋하고 반가웠다. 심리학자가 말하듯 친한 친구는 세 명쯤이 족하다. 익자삼우(益者三友)라 했다. 멀리 있는 건 물리적 거리이니 심리적 거리와는 관계없다. 여자는 달랐다. 그녀는 자주 만나 몸과 마음을 매만져야 웃었다. 물리적 거리가 멀어지자 마음도 떠났다.
사회학자 오찬호는 혼자는 중심으로부터 '배제된 홀로'가 아니라 사회적 관습을 잠시라도 거부하는 '적극적 자아'라고 했다. 설마 사람 자체에 지쳐서이겠는가. 사람들과 거리를 두는 이유는 표면적으로는 함께 밥 먹고 술 마시면 피곤하기 때문이다. '함께'가 되면 관성적으로 주고받는 얘기들이 싫어서다. 나는 섬에 내려와서 처음 만난 사람들과 나누는 대화에 주목한다. 부동산 중개사, 원룸 주인 내외, 수영장에서 매일 만나는 사람들, 수영장 관리인, 주차 관리인의 따듯한 인사, 카센터 기술자, 능포항에서 미끼를 던지는 낚싯꾼, 마트의 계산원... 그들과 지나는 말이나 일상의 얘기를 나눠도 예사로 들리지 않는다. 개인의 신상을 잠깐 비추면 자신도 스스로 가슴을 열어 보이는 모습이 좋다. 각자 욕망의 내력이야 다르겠지만 낯선 얼굴의 이방인을 보듬는 모습이 좋을 뿐이다. 더 깊이 들어가는 건 경우에 따라 다르겠지만 친구도 얻을 수 있다는 설렘에 마냥 흥분되는 순간들이다. 그들의 내력을 듣고 새기는 일상이 정말 흐뭇하다. 이방인은 그들의 입장에선 철저히 타인이고 난 틈입을 전제로 다가간다. 여기선 읽을거리도 넘치고 볼 것, 만날 사람도 차고 넘친다. 진부한 생기로도 사람은 살아간다.
바람이 차다.
능포동 시외버스 터미널을 지나 주민센터 앞의 야트막한 고개를 넘으면 남해의 푸른 물결이 펼쳐진다. 곧장 가면 바다로 곤두박질이고 길이 끝나는 선창의 돌고래 조각상에서 좌우로 길이 났는데, 왼쪽으로 가면 옥포 조선소 쪽이고 오른편은 포구의 수변공원과 이어진 산길은 양지암 등대와 조각 공원의 뒤편이다. 냉동창고와 손질하다 만 그물이 공터를 메운 곳을 지나면 가로공원과 물가의 산책로를 만난다. 데크가 깔린 산책로는 등대와 막다른 길의 바다 끝에 닿는다. 사람들은 등대로 가는 방파제 길과 낚시용으로 만든 데크 위에서 밑밥을 던지며 고기를 유혹한다. 현지 주민 반 여행객 반의 비율로 오래전부터 그 자리에서 낚시를 던진 사람처럼 언제나 가도 낚시객은 있었다. 짠물이 바위를 핥는 막다른 길에 차를 세우고 목도리를 챙겼다. 차들 사이로 텐트가 두 개나 있다. 어제보다 하나 더 늘어났다. 찬바람 때문인지 오늘은 낚시 데크보다 등대 쪽에 닊싯꾼이 더 많이 보인다. 등댓길에서 너른 바다로 시선을 돌리면 부산의 서쪽이 보인다. 낙동강을 따라 장목으로 내려가면 만나는 다대포쯤 될 거다. 재작년 겨울에 자전거를 기차와 버스에 싣고 남해 일원을 여행했다. B군에서 기차를 타고 출발해 영천 동대구를 거쳐 밤이 되어 밀양에 도착했다. 다음날 영남루와 해천 거리에 있는 약산 김원봉의 의열단 기념관을 보고 남쪽으로 내달려 봉하마을과 주남저수지를 금빛으로 물들인 석양을 보았다. 광고회사 시절 동생 집에서 자고 다음날 G섬에 가서 포로수용소 유적지에 들렀다가 통영으로 넘어갔다. 다시 통영의 밤을 보내고 버스 타고 간 곳이 부산의 서북쪽 사상구였다. 사상에서 낙동강 제방길을 따라 다대포로 달렸는데 지금 내가 바라보는 지점의 어느 곳일 거다. 몇 년이 지나도 자전거로 여행한 곳은 길마다 기억이 선명하게 새겨졌다. 자동차로 빠르게 지나치지 않은 때문이다. 자전거로 달리면 길의 질감을 몸으로 특히 다리로 느낀다. 고바위를 만나면 자전거를 끌고 넘고 지치면 쉬면서 눈앞의 풍경을 찬찬히 새긴다. 길은 누웠다가 등을 세우기도 사납게 꺾어졌다가 급한 내리막을 만들어 여행자를 긴장시켰다. 물론 풍경보다 자질구레하게 달고 다니는 상념이 머릿속을 꽉 채우기 마련이지만 아마 도보 여행을 했다면 풍경은 더 느리고 천천히 속살을 보여줬을 거다.
인조털로 감싼 귀마개와 목도리를 하니 찬바람이 파고들 여지가 없다.
등댓길로 가려다 낯익은 빨간 제복을 만났다. 산불감시원이다. 그는 포구로 이어진 산 주변의 연기를 감시하는 중이다. 수고한다고 하니 반갑게 인사한다. 그에게 이것저것 물으며 나도 내륙의 B군에서 산불감시원을 했다고 말하니 그의 눈이 커지며 고향이 진보라고 했다. 안동에서 더 들어간 시골이다. 그는 37년 전 조선소에 일하러 내려왔다가 섬에 정착했다고 했다. 아이들이 섬에서 태어났으니 여기가 고향이라고도 했다. 진보에는 부모님 산소가 있어서 일 년에 한 번 벌초하러 가는데 먼 친척이 있어도 예전 인심이 아니라고 했다. 이쪽의 산불감시원 모집은 경쟁이 세단다. 그에게 B군에서 했던 기간제 일을 말해주었다. 배낭에 넣어둔 사탕이 생각나 차로 가서 사탕을 가져와 그에게 주고 나도 까서 입에 넣었다. 그의 내력을 더 듣는 건 다음에도 얼마든지 있겠다 싶어 수고하라며 손 흔들고 등댓길로 갔다.
오늘따라 갈매기들이 공중을 맴돈다.
낚시꾼들은 방파제 난간을 넘어 바람이 덜 부는 바다 반대편으로 낚시를 던진다. 미끼를 달아 던지자마자 밑밥을 던지는데 풍덩풍덩 떨어지며 퍼지는 모양이 대잠함용 폭뢰 같다. 걸어가며 슬쩍슬쩍 고기 바구니를 살피니 조황은 신통찮았다. 중간쯤 가니 바닷물 돌 틈에서 무언가 건지는 남자가 보인다. 방파제에는 부인인 듯한 여자가 난간에 미역을 죽 걸어 말리며 남자에게 말을 건다. 가까이 가니 바구니에 자연산 홍합이 가득 찼다. 남자는 가슴장화를 입고 미역을 건지고 홍합을 따는 중이었다. 여자는 바위에 이끼처럼 다닥다닥 붙은 해초가 톳이라고 했다. 톳나물이라니! 내가 즐기는 겨울 반찬 중 하나다. B군의 마트에는 겨울마다 남도에서 톳나물이 올라왔다. 살짝 데쳐 된장에 무치면 반찬으로도 술안주로도 꿀맛이다. 집에서 가슴장화와 통발을 꺼냈다가 도로 두고 온 게 후회됐다. 하지만 해루질은 천천히 해도 되고 안 해도 그만이다. 할 게 넘치는 형편이다. 남쪽으로 내려가면 더한 보물창고가 있을지 모르는 일. 등대 아래를 돌아서 낚시 데크로 돌아왔다. 오늘은 마트에서 쌀을 사야 한다. 끼니마다 밥을 알뜰히 먹었더니 한 달 새 반말을 해치웠다. 아내는 가끔 외식도 하라지만 절약해야 육 개월을 버틴다. 오는 길에 창문을 내리고 산불감시원에게 손을 흔들었다. 겨울 햇볕에 검게 탄 얼굴로 하얀 이를 드러낸 사내가 군인처럼 손을 이마에 붙이며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