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꺼 일기

by 소인

一人暮らし(25)


영, 책과 물감 그리고 산책이 일상의 대표적 단어다.

늘은 백오십 미터를 헤엄쳤는데 신기한 일이었다. 그동안 다양한 방법으로 호흡을 시도했다. 고수들은 일 년 정도 지나야 호흡이 트인다고 했다. 난 성급한 놈이다. 평균보다 짧게 걸릴 수도 있는 거 아닌가. 왼팔을 입수함과 동시에 숨을 조금 뱉고 오른팔로 물을 당길 때 숨을 뱉으며 물 밖에서 숨을 마셨다. 이게 내 몸에 최적화된 호흡법인가. 모르겠다. 다음 주부터 계속 시도해 봐야겠다. 200m, 300m씩 거리가 늘면 익숙한 호흡이다. 숨쉬기가 익숙해도 거리가 늘수록 팔 젓기는 힘들다. 고수도 힘든 걸 참으면서 나간다고 했다. 장거리 수영의 비결 중 하나는 근력이란 뜻이다. 나이 들며 근육이 빠져나가면서 팔다리가 가늘어진 것처럼 근력도 자연스레 새어 나갔다. 울퉁불퉁 솟은 팔뚝의 힘줄은 기계톱을 들고 산등을 넘던 오래된 얘기다. 팔십 키로를 유지하던 체중은 75kg으로 떨어졌다. 어제는 체중계 바늘이 74와 75 사이에서 파르르 떨었다. 내 키에 적당한 몸무게는 칠십 정도다. 불룩하게 처진 뱃살이 들어가고 몸이 가볍다. 내려와서 소식(小食)하는 습관이 생겼다. 고기반찬이 없는 밥상을 소식(素食), 채소뿐인 반찬은 소식(蔬食)이라고 한다. 거친 밥상을 소식(疏食)이라고 하니 모두 해당되는 말이다. 집에서 밑반찬을 가지가지 날랐다. 두 달은 먹을 양이다. 이후부터는 직접 김치도 담그고 장아찌도 만들어 먹겠다고 아내에게 큰소리쳤다. 남도의 마트엔 벌써 마늘종이 진열되어 있다. 짜고 매운 것 투성이인 밥상에 고기 구워 얹으면 황제의 식탁일까. 너무 잘 먹어서 탈 나는 세상이다. 하지만 영양의 균형은 건강을 위해 필요하다. 고른 섭식이 중요하다는 걸 알면서도 끼니를 간단히 때우는 게 버릇이 되었다.


심 먹고 어제보다 개나리 같은 개나리를 그리고 집 나섰다.

도리에 장갑까지 꼈는데 바람이 차다. 두꺼운 옷은 집에 두고 왔다. 귀마개를 하니 좀 낫다. 장승포 쪽으로 걸으려다 산그늘이 많아 음습해서 조각 공원 양지를 택했다. 동백꽃이 벌어지기 시작한다. 먼저 핀 것들은 바닥에 처박히거나 가지에 매달린 채 암갈색으로 말라간다. 이달 말이면 산책로와 섬은 붉은 꽃의 개화와 낙화로 핏빛 섬이 될 것 같다. 찬바람 속을 사람들이 걷는다. 혼자서 둘이 여럿이 하염없이 걷고 끊임없이 말한다. 혼자 걷는 사람은 라디오를 크게 틀고 걷는다. 자신만 좋으면 그만이지 남의 귀를 불편하게 하는 데엔 아랑곳없다. 요새 흡연자는 숨어서 담배 피운다. 간접흡연의 피해와 퀴퀴한 담배 냄새로 인상을 찌푸리는 비흡연자에 떠밀려 제 돈 내고 산 물건을 숨어서 태운다. 공기는 모두의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자기 동네에 임대 아파트가 세워지거나 장애인 시설이 들어온다고 하면 목에 핏대를 세우고 결사반대다. 주거권과 장애인 교육은 민주 시민의 정당한 권리임에도 자기 재산권 방어를 위해 타인의 권리를 묵살하는 폭력을 서슴지 않는다. 그게 너고 나고 우리의 모습이다. 돈 앞에서는 부모도 자식도 부끄러움도 없는 세상이 되었다. 찢어지게 가난한 시절의 설움과 차별을 뼈저리게 경험한 탓이다. 동백나무 너머로 프러시안 블루의 바다가 펼쳐진다. 짐승의 이빨 같은 파도가 수면을 하얗게 뒤덮는다.


늘 산책은 글렀다.

동항으로 가서 낚시 데크의 반대편으로 차를 몰았다. 하얀 등대 건너에 있는 빨간 등대에는 낚시꾼이 하나도 없다. 바람이 차고 세니 모두 사라졌다. 바람에 먼지가 날린 탓인지 시야는 트였다. 섬을 연결한 다리와 P시의 서쪽 옆구리가 희미하게 잡힌다. P시에 사는 시인을 보기로 했는데 언제가 적당할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 온라인이든 대면 수업이든 개학하면 바쁠 것이다. 날 잡히면 시외버스 타고 P시의 옆구리에 닿는다고 연락을 할까 하다 좀 더 두고 보기로 했다. 시인은 시보다 평론 쪽으로 선회한 느낌이다. sns를 끊고 비평에 몰두하는 시인은 책이 나올 때마다 잊지 않고 보내주었다. 꼽아보니 얼굴 본지가 오래되었다. 시인도 늙어가는 중이다. 삼십 대 후반과 사십 대 초반에 보았고 오십 대 중반을 넘어선다. 만난 횟수보다 sns를 통해 대화를 많이 나누어서 그런지 오래 못 봤다는 느낌이 없다. 다감한 성격이면서 날카로운 문장은 나이 들수록 인식을 다지는 사람이란 생각이 든다. 하도 책을 봐서 '눈알이 빠질 정도' 란다. 어느 날 독서회 멤버가 말했다. '눈이 점점 나빠져서 앞으론 책을 못 읽을 거예요' 속으로 책보다 술을 좋아하는 그녀의 독서량을 의심했지만 표 내지 않고 들어주었다. 난 돋보기로 책을 보기 때문에 한 시간이 적당한데 넘으면 한참 동안 초점이 흐려진다. 밖에 나가 서성이거나 멀거니 시간을 보내야 회복된다. 눈 좋을 때 많이 읽지 않은 게 후회스럽지만 요즘엔 좋은 책이 널렸다.


제는 좋은 작가의 불편한 책은 널리 읽히지 않고 세상을 변화시키기엔 더디다는 점이다. 우리가 일상에서 경험하는 여러 가지 반생명적 요소들, 예컨대 관습에서 비롯된 고정관념은 자본주의 학습과 더불어 삶을 갈수록 불행하게 하는데 사람들은 내 앞의 불만 끄기에 급급하다. 당장의 출세와 성공, 가족의 불화, 동료와의 경쟁에도 꼭지가 돌 지경인데 기후 변화, 생태오염은 먼 나라 얘기다. 밥상에서 명태가 사라지고 흔하게 먹던 오징어가 금값이 되고 국민 생선 고등어는 먼바다에서 잡지 못하면 수입하는 현실이다. 비싸지면 돈을 더 벌어 사고, 사라지면 다른 걸로 대체하면 된다는 식이다. 그러나 임기응변은 자연 자본이 풍족할 때의 일이다. 사실 어제 방파제에서 홍합을 따던 사람을 보면서 든 생각은 눈으로 보는 푸른 바다가 깨끗하다고 믿을 수 있는가다. 실제로 G섬의 바다는 우리나라 평균 해양 오염치의 세 배가 넘는다. 어선과 양식장에서 나온 쓰레기가 해양 오염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잠수부와 봉사자들이 건져내는 쓰레기는 손톱만큼이다. 무인도와 해변에 쌓인 플라스틱은 햇볕에 쓸리고 파도에 부서져 미세 플라스틱이 된다. 양식장의 굴, 멍게조차 믿고 먹을 수 있는 시절은 지났다. 모르고 먹거나 플라스틱을 함께 먹는다는 걸 알면서 먹는 수밖에 없다. 앞으로는 돈 주고도 얻을 수 없는 자원이 늘어나게 된다. 인디언 속담에 '지금 쓰고 있는 땅과 자연은 후손에게서 잠시 빌려다 쓰는 것이다'라는 말이 있는데 이건 순전히 전설이 될 가능성이 높다. 까놓고 얘기해서 재생 에너지가 발전해도 지금의 에너지 소모량을 대체하기엔 턱 없이 모자란다. 이미 굳어진 문명의 시스템을 바꾸기 힘들다면 지속 가능한 지구의 미래는 암울하다. 다만 조금 더 깨어 있자는 말이 위로 아닌 위로가 될 뿐이라면 지나치게 공허한 말일까. 나는 종교의 종말론을 믿진 않는데 그들 식의 종말이든 지구의 종말이든 가까워지는 걸 느낀다. 어쨌든 우리는 불합리한 사회의 제도와 비인간적인 요인으로 벌어지는 모든 차별과 배제와 맞서야 한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인식 체계를 향해 나서지 않으면 모두의 삶은 전혀 달라지지 않기 때문이다.


로나 확진자가 이만 명을 넘고 치명률이 낮자 정부에서는 코로나 바이러스를 독감 수준으로 관리하는 정책을 만지작거린다. 이젠 코로나 공포가 사라지는 걸까. 문화원에 전화를 했다. 삼 월부터 시작하는 문화교실 공지는 중순 경에 문자로 알려준단다. 수영하고 책 읽고 그림 그리고 산책하는 일상은 팔자가 좋은 게 아니다. 팔자가 있다면 첫 끗발부터 조지고도 남았다. 난 초조하게 독거의 일상을 보낸다. 철학자 백상현의 「속지 않는 자들이 방황한다」는 말처럼 속지 않으려고 헤매는 중이다. 팔자 좋은 사람이 정상으로 느끼는 잘 돌아가는 세상을 삐딱한 시선으로 비판하는 사회학자의 말에 동의한다. 우리는 하나도 괜찮지 않은 사회를 괜찮은 척 살아간다. 희망과 삶에의 열정은 절망을 관통하는 시선이 없다면 공허할 뿐이다.


'나는 희망을 거절한다'


나는 희망이 없는 희망을 거절한다

희망에는 희망이 없다

희망은 기쁨보다 분노에 가깝다

나는 절망을 통하여 희망을 가졌을 뿐

희망을 통하여 희망을 가져본 적이 없다

나는 절망이 없는 희망을 거절한다

희망은 절망이 있기 때문에 희망이다

희망이 있는 희망은 희망이 없다

희망은 희망의 손을 먼저 잡는 것보다

절망의 손을 먼저 잡는 것이 중요하다

희망에는 절망이 있다

나는 희망의 절망을 먼저 원한다

희망의 절망이 절망이 될 때보다

희망의 절망이 희망이 될 때

당신을 사랑한다


- <나는 희망을 거절한다> 정호승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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