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
이제 오백 미터 수영으로 몸을 푸는 형편이 되었다. 동작이 부드러우니 호흡도 편하다. 레인을 왕복할수록 숨이 가빠지는 현상도 줄어들었다.
오전에 화실에서 연필 소묘를 하고 회원들과 점심을 먹고 수영장에 갔다. 오백 미터로 몸을 풀다 1km 수영을 했다. 이상할 정도로 몸과 호흡이 가볍다. 물을 뚫고 나아가며 바다를 상상한다. 파도가 얼굴을 할퀴고 소금물이 목을 넘어온다. 검은 바위를 가늠하며 쉼 없이 팔다리를 휘두른다. 깊은 물 바닥의 해초가 몸을 감고 고깃떼가 비웃으며 자맥질을 한다. 홀로 공기를 마시고 내뿜는 수영인은 고독하고 절망적이다. 대양의 표면에서 나를 보장하는 건 자신뿐이다. 목표로 삼았던 바위의 검은 눈이 스르르 잠긴다. 잠시의 목표마저 눈앞에서 사라진다. 절망은 뒤끓는 삶에선 상시적이다.
마지막에는 스퍼트로 들어왔다. 초등학교 수영부 학생들이 하얀 피부를 뽐내며 풀로 뛰어든다. 함께 수영하던 네댓의 사람들은 이미 샤워장으로 달려갔다. 금요일이라 주말엔 수영장이 쉬니 좀 더 물살을 헤쳤다. 가는 길에 파스를 사서 어깨에 붙이리라 생각한다.
고수 k에게 톡을 보냈더니 다음 주엔 나올 예정이란다. 수영장에서 그는 단연 수영 실력이 고수에다 성품이 좋아 인기가 많다. 사람들에게 친절하게 동작을 고쳐주기도 한다. 옆 사람이 바다 수영에서 우승한 경력이 있다고 귀띔 해주었다. 동호회에서 오픈 워터 모임을 할 때 따라가 보기로 했다. 3,4km는 가볍게 하는 사람들이니 배울 것이 많겠다.
수채화 수업 시작한 이후 한 번도 빠지지 않았다. 하긴 남아도는 시간을 주체하지 못하는 놈이라 주말이면 주말대로 화요일을 기다리고, 화요일이 지나면 다시 금요일을 헤아린다. 화실에 나가면서 내가 그림에 소질이 없다는 걸 깨달았지만 표현에 대한 관심은 오래전부터 가진 터였다. 기존 회원의 색감과 붓 터치는 주눅 들기에 충분했고, 신입 회원 면면마다 세밀한 연필 선은 내 그림을 감추고 싶을 정도로 뛰어났다. 거개가 십 년 이상의 경력을 지닌 분들이라 색채에 대한 이해와 물을 다루는 능력이 탁월했다. 화실에 나와 그들의 그림만 봐도 공부가 되었다. 선생님은 문화원 서양화 반이 생긴 이후 죽 화실에서 제자를 가르친 분이다. 회원 개인의 특성을 감안하여 아낌없이 지도를 베푸는 모습이 보기 좋다. 욕심 같아선 단기 속성으로 그들의 정보를 캐고 싶지만 뭘 배우는 데 잼병인 나로선 능력 밖의 일이다.
특히 좋은 부면은 새로 온 회원에 대한 기존 회원들의 상찬과 격려가 넉넉하다는 것이다. 자칫 낯설기 쉬운 분위기를 부드럽고 유쾌하게 이끄는 모습이 좋다. 때로는 신입 회원에게 따스한 조언을 꿀팁처럼 건네는 장면은 한 폭의 훈훈한 풍경화 같다. 수업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 점심 먹기도 뭣한 나의 경우 남은 회원과 선생님과의 점심 식사는 친밀과 정보를 나누기에 더없이 소중한 시간이다. 처음엔 김밥을 사다 먹다 물려서 도시락을 싸기로 했다. 반찬을 나누고 커피를 끓이는 소란한 화실의 풍경을 내내 기억하고 싶을 정도다. 점심을 먹고 그리던 걸 마무리하고 수영장에 간다.
재일 작가 서경식은 「고뇌의 원근법」에서
“뒤러, 그뤼네발트, 카라바조, 고야, 렘브란트, 피카소, 고흐……. 이 거장들은 ‘예쁜’ 작품을 그려서 사람들을 위로하려 하지 않았다. 진실이 아무리 추하더라도 철저하게 직시해서 그리려 했다. 그것이 우리를 감동시킨다. 거기에서 ‘추’가 ‘미’로 승화하는 예술적 순간이 생긴다. …… ‘미의식’이란 ‘예쁜 것을 좋아하는 의식’이 아니다. ‘무엇을 미라고 하고 무엇을 추라고 할 것인가’를 판단하는 의식이다."라고 말했다.
그림을 그리는 목적은 개인에 따라 다르겠지만 인간은 표현의 욕구를 가진 존재다. 일상에서 대화나 행위를 통해 자신을 드러낸다. 그것이 음악, 미술, 문학 등 예술을 매개로 한 행위일 때 인간의 감성과 사유는 최고조로 고양되는 것이다. 꿈이랄 것은 없지만 내가 말년의 도락으로 삼은 건 글 쓰기와 수영, 수채화 그리기다.
어느 따스한 봄날이나 불콰한 낙엽이 떨어지는 가을날, 산속의 오두막 앞뜰에서 물감을 개어 풍경을 담는 모습을 상상한다. 실은 눈앞의 풍경을 즐기는 것으로도 대상은 마음속에 전이된다. 흐르는 바람과 쏟아지는 햇살, 산새의 날갯짓 나뭇잎들이 서로 부딪혀 울리는 화음. 자연을 섬기는 자세로 자연을 대할 때 인간과 자연의 상생이 가능하다. 섬의 빛과 바람, 해풍에 난분분 떨어지는 꽃잎, 생선 배 가르듯 물살을 헤치고 나아가는 고깃배, 고단한 사람들의 웃음소리.
이방인으로 틈입한 남도의 풍경은 눈물겹도록 가슴 저린 스토리다. 종내 벗어나지 못한 상념 중 하나는 돌아갈 내륙의 사람들, 뻔한 일상에도 물리지 않고 질박한 결기로 자신과 삶을 사랑하는 사람들 말이다. 무엇 하나 허투루 스칠 수 없는 존재의 내던져짐. 그들이 내게 소외와 배제의 창을 던져도 난 그들을 외면할 수 없다. 투영된 나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다시 누려보지 못할 섬에서의 일상은 차곡차곡 쌓여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