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에 관한 명상(2)

by 소인

풀에 관한 명상(2)


주말 지나 문화원 뒤란에 갔다.

탄성이 나올 정도였다. 풀은 꽃망울을 터뜨리고 주렁주렁 꽃을 달았다. 구석의 그늘이 불을 켠 듯 환해졌다. 대책 없이 자식만 낳아놓은 가난한 집처럼 꽃의 무게를 이기지 못해 가지가 한쪽으로 늘어졌다. 중국 공안에 잡혀 몽둥이로 린치를 당하다 목이 모로 꺾인 운동권 인사가 떠올랐다. 그의 행방은 아무도 모른다. 섬에서 자라니 섬초롱꽃이라 불러도 구차하진 않겠다


초목은 언제 그곳에 있었는지 모르다가 움이 돋거나 꽃대를 올려 꽃을 피운 후에야 발견하곤 한다. 봄에 산 벚꽃이 피면 연둣빛으로 물들기 시작한 산 여기저기에 환한 불을 매단 듯 환하다. 쳐다보지 않는 맹지에 돼지감자 꽃이 피고 나서야 그곳에 뚱딴지가 묻혔다는 걸 안다. 생명 가진 것들은 존재에 상당하는 기척을 낸다. 생각과 말, 노래와 춤, 꽃과 열매, 울음과 웃음소리... 존재감이 없다면 무생물도 외로움을 견디지 못할 거다. 하지만 누가 보아주지 않아도 스스로 존재를 뿜어내고 사멸하는 것도 있다. 외로운 사내를 비춘 우물이 그렇고 산모롱이에 핀 들꽃이 그렇다. 인정 욕구는 인간이 가진 특질 중 하나인데 관계의 존재인 인간은 더욱 인정에 목마르다. 새들은 그것이 사랑인 줄 모르고 서로의 부리를 비벼 체온을 나누지만 인간의 문제는 포르노를 사랑이라 착각하는 것이다. 인터넷에는 노인에게 정력을 찾아준다는 광고가 차고 넘친다. 톰 행크스가 주연한 영화 「필라델피아」에서 게이인 주인공은 ' 사람들은 서로의 삶보다 타인의 바지 속에만 관심을 둔다'라고 말한다. 톰 행크스는 이 영화로 아카데미 남우 주연상을 받았다.


봄에서 초여름으로 넘어가자 문화원 뒤란은 미니 정글의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뒤늦게 존재를 발견한 것들은 이미 알아챈 삼나무와 팔손이나무, 비자나무, 느티나무, 담쟁이덩굴 외에 막 꽃을 피운 인동초와 외래 식물인 자리공, 한 자 넘게 자란 쑥, 꽃을 피었다가 송이째 말라가는 아카시나무, 어디 숨었는지 몰랐다가 가제트 팔처럼 가지를 늘이고 이파리를 하늘대는 뽕나무, 줄기에 꺼끌한 가시가 달린 환삼덩굴 작은 꽃은 꿀이 가득한 밀원(蜜源) 식물이다. 그 외에 땅 위에 낮게 깔려 하얀 꽃을 피운 흰 줄무늬 달개비꽃과 큼직한 이파리가 반짝이는 털머위까지 서른 평도 되지 않는 좁은 땅에 초목은 스스로 존재를 뿜어내며 키를 세우는 중이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주인공이냐 엑스트라냐 상관없이 생긴 모습대로 땅을 딛고 공중에 손을 흔드는 거였다.


회의나 의심이 없는 신념이나 이념은 위험하다.

사회는 진영으로 편이 갈려 상대편의 의견이나 신념을 묵살한다. 분열은 쉽사리 봉합되지 않고 토론이 부재한 갈등만 증폭된다.

한강의 소설 「소년이 온다」는 5•18을 다룬 소설이다. 인간이 인간을 죽이는 철저히 무감각의 잔인함 앞에서 모든 생각은 단절된다. 소설의 마지막 문장이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남는 질문은 이것이다. 인간은 무엇인가. 인간이 무엇이지 않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그녀는 책을 덮고 기다렸다. 창밖이 더 어두워지기를 기다렸다. 그녀는 인간을 믿지 않았다. 어떤 표정, 어떤 유려한 문장도 완전하게 신뢰하지 않았다. 오로지 끈질긴 의심과 차가운 질문들 속에서 살아 나아가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화려한 수사와 꾸밈으로부터 벗어난 자연의 세계는 실재한 그대로의 생성과 사멸을 반복하며 인간에게 무언의 메시지를 날리는 것 같다. 그렇다고 해석을 바라지도 다음 행위의 연속이나 변화를 요구하지 않는다. 자연은 스스로 존재할 뿐이니 거기에 대고 따스하거나 냉정한 성정을 대입하는 건 인간의 희롱에 불과하다. 단어의 적확함을 의심하면서도 쓸 수밖에 없는 건 과문한 탓이기 때문이지만 자연은 스스로 장엄하다. 섬초롱꽃의 생애와 개화의 몸짓, 또 다른 모습으로의 끝없는 변주는 생로병사의 법칙에서 기승전 인정 욕망과 물질을 좇는 인간에 비할 바가 못 된다.


의심받는 사람들이 시민의 대표로 나선다.

타인의 고통보다 자신의 명예와 가문의 영광을 먼저 치는 사람들은 재취업의 기회로 삼은 선거판에서 무엇을 약속하는가. 역사는 더딘 걸음으로 진일보하는 게 아니라 갑자기 돌변해 주인의 손목을 물어뜯는 짐승이 된다. 민심은 천심이란 말도 옛것이 되었다. 언론과 권력의 카르텔은 언제든지 세상을 뒤엎을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되었다. 도대체 정치란 일반 시민의 도덕성 따윈 하등 문제 삼지 않을 만큼 탈 도덕적이고 일체의 상식을 초월한다. 정치는 무소불위의 절대자와 어깨를 나란히 걷는 괴물이 되었다.


섬 생활 반년째가 돼간다.

슬슬 집으로 가고 싶은 생각보다 다른 곳으로 갈 수만 있다면 다른 지역에서 살고 싶다. 현실은 수월치 않으니 다시 일을 찾아 나서야 한다. 다음 가출은 아마 오래 계속될 거다. 어쩌면 다시 집으로 돌아가지 않는 유목의 삶이 될 수도 있다. 인간이 정주(定住)를 하면서부터 차별과 불평등, 정상과 비정상의 분열과 다툼이 시작되었다. 오래도록 잘 살기 위해서는 사냥과 약탈은 필요한 것이니 법을 갈아치워서라도 몰가치의 역사는 오염된 강물을 탈 각오가 돼 있다. 신이 천지를 창조했다고 믿는다면 세상을 망가뜨린 건 인간이다. 자리와 돈으로 살 수 있는 안전한 제국은 없다. 다만 세상의 바람과 무관한 문화원 뒤란의 수목의 영토는 땅을 빼앗기지 않는 한 오래도록 자리를 지키며 생명의 유희를 이어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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