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꺼 일기

by 소인

一人暮らし(57)


수영장과 화실에 익숙해지면서 루틴 한 일상이 계속되자 시간은 빨리 지나갔다.

습속이란 몸에 새겨진 문신과도 같이 떨어지지 않고 따라다니는 혹이다. 밥을 끓이고 생각이 꽂히면 늦도록 잠들지 못하는 날이 생겼다. 부스스한 오전이 지나면 오후는 빨리 찾아왔고 지나갔는지 모르게 어둠이 내렸고 줄어드는 반찬을 올려놓고 꾸역꾸역 배를 채운다.


그러다 문득 집에 가야겠다는 생각이 번개처럼 스쳤다. 집으로 돌아간다는 의미는 다시 임시직 일자리를 찾아 게시판을 뒤지는 진부한 일상 속으로 빠지는 거다. 시골 읍내의 풍경은 언제나 건너편 빌라의 소란으로 시작되었다. 달그락거리는 그릇 소리가 나고 아이를 부르는 소리, 출근하는 남자들의 아침이 지나면 여자들은 각자 시간제 일을 하러 나가거나 은밀한 외출을 서두른다. 뒷산 솔수펑이에는 소쩍새가 우는 봄이 지나면 피이- 피이- 무덤의 혼을 부르는 듯한 호랑지빠귀의 괴이쩍은 울음이 새벽 공기를 뚫었다. 나는 언제나 도시락 가방을 들고 집을 나섰다. 매지구름처럼 낮게 깔린 권태의 물기가 바람결에 묻어오면 사람들은 한층 옷깃을 조이고 일상을 견뎌냈다. 지리멸렬한 삶 속에서 각자의 일상을 으뜸으로 챙기는 건 오래된 습속이었다.


읍내는 중심으로부터 반경 일이 킬로라 사람들의 생활은 도시와 농촌을 뒤섞은 모습이다. 안개가 뭉텅뭉텅 길을 지운 날에는 터미널 앞길을 관통해 북쪽으로 달리는 기차 소리가 안방까지 들어왔다. 여름이 다가오자 보건소 방역차는 사흘이 멀다 하고 골목 구석구석 연막을 뿜어댔다. 코로나가 감기처럼 변한 올해는 두 번의 축제가 기지개를 켜고 시골 소읍을 달굴 것 같다. 사람들은 외지인과 상인들이 몰려드는 축제 구경을 즐겼다. 텔레비전에 나오는 가수가 등장하는 천변 무대는 그중에서도 단연 핫플레이스다. 어디서 왔는지 골골이 노인들은 전망 좋은 자리를 차지하고 먹을 것을 펼쳐놓는다. 댐에 막혀 옛말이 된 은어를 개울에 풀어놓고 잡느라 사투를 벌인다. 육봉 은어는 고향인 섬진강의 수조를 떠나 내륙의 축제장에서 뒤뚱대며 달아난다.


선한 사람의 삶은 두려움이 섞였다.

낮고 가난한 자라고 욕망이 비천하거나 허접할 거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치열한 욕망은 계층을 가리지 않는다. 수영장의 6월 강습이 사라졌다. 예비 접수를 받아본 결과 수강 신청 숫자가 적어 없던 일이 된 거다. 코로나 끝물의 확진자가 줄어들지 않은 여파다. 사람들은 여전히 감염의 공포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러면서 일상의 모습은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는 걸 보면 복불복이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든다. 코로나가 감기처럼 변해도 성가시거나 무서운 건 피하려는 심리다. 에너지를 주체하지 못한 사람들은 관광버스에서 마스크를 쓰고 춤을 추었다. 일상의 음울한 기운을 털어내는 모습은 다양하게 번지고 있었다.


집으로 가기로 마음먹자 루틴 한 섬의 풍경이 새롭게 다가왔다.

어쩌면 다시 올 수 있을까. 우연히 스치듯 지나치기엔 지리적으로 막다른 곳이라 정해놓고 올 수밖에 없다. 바닷물에 한쪽 발을 담그고 살아가는 사람들. 배를 만들거나 풍경에 반해 정착한 사람들. 유배와 전쟁과 밥벌이의 상처를 섬 구석구석 고스란히 새긴 미역 줄기처럼 생긴 섬. 평생의 반년을 섬의 바람과 햇볕을 받으며 살았다는 건 소중한 경험이었으며 이곳에서 만난 사람들과의 추억은 오래 간직될 기억이다.


바다를 보며 사는 사람과 산을 보며 사는 사람의 기질은 어떨까. 둘 다 나름의 특성은 있으리라. 만남은 생사와 마찬가지로 인간의 속성이다. 만남 없는 관계는 없으며 관계없는 삶 또한 부재한다. 흔쾌히 가슴을 열고 이방인을 맞는 사람은 예부터 초원 유목민의 전통이었다. 가축을 몰고 먼길을 떠날 때면 텅 빈 게르에 먹을 것을 준비해 두고 떠난다. 혹시라도 낯선 이방인이 길을 잃고 헤매다 게르를 발견하면 허기를 면하고 쉬었다 가라는 배려에서다. 낭패스러운 상황은 내게도 찾아올 수 있다는 경험에서 얻은 지혜다. 에스키모는 여행자에게 아내를 대접했다. 낯선 씨를 받아 종족에게 새로운 DNA를 제공하는 거였다. 역지사지는 이심전심을 낳고 연대를 형성한다. 전쟁과 침략보다 공동체의 연대로써 인간은 문명과 문화를 이어왔다. 그래서 이기적 유전자는 정복 유전자보다 오래 살아남았다. 내가 죽음으로써 나의 유전 인자가 살아남는 이기적 유전자에는 연대와 희생의 비밀이 스몄다.


가물고 더운 날이 이어진다.

다이소에서 손바닥만 한 선풍기를 샀다. 제법 바람이 시원하다. 낮게 사는 것들은 더위와 추위를 견뎌야 한다. 어떤 오사리잡놈이 공부 못하면 더울 땐 더운 데서 일하고 추울 땐 추운 데서 일한다고 했지만, 더위와 추위를 견디는 환경은 반 생명적이다. 낮은 서열이 당하는 고통을 당연시하는 사회는 희망이 없다. 수영장에서 만난 노인은 하루 네 시간이라도 일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어중간한 재산에 노령연금을 타지 못하니 집 가진 거지가 따로 없단다. 불러주는 데 없고 갈 데 없는 노인은 꼬박꼬박 들어오는 푼돈이 아쉽다. 일할 수 있는 형편을 기껍다고 해야 하나. 집에 돌아가 일을 구하고 수영장에 다니고 그림을 그린다. 집안 곳곳 청소하고 눈칫밥 얹어 설거지하고 다시 집 나갈 궁리를 한다. 이번에 가면 돌아오지 않는 게 아니라 아예 못 올지 모른다. 문지방 너머 북망은 동네 뒷산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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