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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인 May 30. 2022

도꺼 일기

一人暮らし(58)


네덜란드 동인도회사의 선원 하멜, 전남 우이도의 홍어장수 문순득, 자산어보를 쓴 정약전, 풍랑을 만나 표류하다 중국 내륙을 거쳐 돌아와 표해록(漂海錄)을 쓴 최부, 일본으로 건너가 왜인들에게 독도는 우리 땅이라고 꾸짖은 대찬 어부 안용복, 아시아의 물개 조오련, <조난을 당해 모든 선원이 사망하고 자신은 아메리카 대륙 오리노코 강 하구 근처 무인도 해변에 표류해 스물 하고도 여덟 해 동안 홀로 살다가 마침내 기적적으로 해적선에 구출된 요크 출신 뱃사람 로빈슨 크루소가 들려주는 자신의 생애와 기이하고도 놀라운 모험 이야기>인 대니얼 디포의 '로빈슨 크루소'. 소설의 첫 출간 당시 제목은 앞 문장처럼 긴 게 트렌드였다.


이들의 공통점은 바다다.

바다는 미지의 대륙을 향해 나아가는 통로였다. 길이 아니면서 길이기도 한 바닷길은 뱃길, 물길이라고도 한다. 항해의 운명을 좌우한 건 날씨였다. 오랜 경험이 바닷길을 연 지혜가 되었지만 때때로 바다는 심술을 부려 배를 삼키거나 산산이 부수기도 했다. 살아남은 자들은 새로운 땅에서 낯선 세계를 만나는 경험을 한다. 정주민과 이방인의 만남은 말 그대로 충격이었고 고향으로 돌아간 사람들은 낯선 땅의 풍물을 고향 사람들에게 소개했다.


G섬은 한반도에서 제주도 다음으로 큰 섬이다.

지금은 다리로 연결돼 육지나 다름없는 곳이지만 예전엔 배로 건너는 유배의 땅이었다. 한국전쟁 중 급하게 지은 포로수용소에 십칠만 명의 포로가 몰려 섬주민과 피난민을 합해 한때 섬은 북새통을 이루었다. 전쟁이 끝나고 북으로 뭍으로 뿔뿔이 흩어졌지만 섬에 정착하여 원주민과 섞여 든 사람도 있었다. 조선업이 본격화되면서 섬으로 모여든 조선소 노동자들이 섬의 경제를 일으켰다. 조선과 관광, 어업이 섬의 주요 산업이다.


내륙 사람에게 예부터 바다는 동경의 대상이었다. 아득하게 펼쳐진 바다의 수평선을 보며 꿈과 희망을 품었다. 배를 타고 낯선 나라, 물선 땅으로 공부하러 돈 벌러 떠났다. 요즘은 휴가와 관광이 대세가 되어 사시사철 바다로 떠난다. 바닷가 사람에게 바다는 육지의 논밭과 같다. 양식과 어업은 삶의 수단이었다. 연안어업은 하루 이틀 걸리고 근해어업은 안강망 중선배의 경우 보름, 원양어업은 수개월 수년 동안 대양을 떠돈다. 모든 배의 출항지는 짠내 풍기는 바닷가다.


오래전 Y시에서 동지나해로 고기잡이를 떠났다. 얼음 창고에서 어창 가득 얼음을 싣고 수제비처럼 섬들이 점점이 떠 있는 다도해를 지나 이틀 반을 걸려 해구에 도착해 그물을 내렸다. 눈물 콧물 비벼져 손 시린 짠물에 퉁퉁 불어 터진 뱃사람들의 손마디는 삶의 고통이고 희망이었다. 나는 양망을 노리는 갈매기가 되어 뱃사람들과 섞여 그들의 꿈과 한숨을 읽기도 했다.  졸시 '출어'다.


출어(出漁)


국동 얼음창고 컨베이어 타고 싱싱한 얼음 조각 한껏 배 채우면 기름 먹은 바다 위 고등어 배 갈라 소금 뿌리듯 물자락 들추며 중선배 나아간다 수제비 같다 남해 사이 점점이 등대 비춘

섬의 표정 안개 위로 지울 때까지 통통통 길 열린다


멀미 언제나 붙어 다녀 육지 멀미 사람 멀미 뱃멀미 바다 멀미 멀미 따라다니는 갈매기 탐욕의 시선 죽지에 감추고 항상 등 노린다 물속은  어군탐지기로 까 볼 수 있어 네 뱃속 시커먼 창자 맴도는 꿈 어지러워 씨팔, 골 때려 멀미가 출렁거려 일곱 물 오사 해구 문패 잠기듯 부표 대륙붕 떠돌다 투망 소리에 긴장한 수초 오금 저린다 씨팔,

육지 소식은 잊어버려 똥내 나도록 그물 당기다 항구 횟집 쌍과부 허벌나게 박아 조지면 그뿐 뱃놈 신세 신접살림 웬 호사여 어느 해고 대목 터지는 날 이 바닥 떠나 내 고향 영산강 변 복사꽃 흐르는 물길 따라 소 몰고 밭갈이로 저무는 고향에서 메나리 한 판 멋들어지게 뽑을 거야


아홉 물 열 물 동지나(東支那) 막창 해구(海溝) 갈치 아구 고등어 갑오징어 삼치 데룩거리는 수조기 와르르륵 쏟아진다 화태도 곰보 선장

벌어진 입 턱 빠진다 음력 삼월 봄 바다에 함박눈 퍼붓는데 눈물 콧물 시린 입김 마구 비벼져 출렁인다 에헤라, 한 그물에 출어 밑천 뽑아내고 두 그물 세 그물에 모작 패 호주머니 풍선 마냥 부풀어간다 화장(火長) 이마에 땀 솟는다 살 튀는 병어 접시 소주잔 알싸하게 돌아가는데 갓 잡은 고등어 뒤끓는 무 간장 속에 숨넘어간다


찌리링 찌리링 닻을 올려라

내일은 욘 단 록 단 참조기를 덮칠 거라 갑판장 얼음 삽질 신명 나게 돌아가고 동지나해 푸른 갈매기 한 그물 대목 꿈에 힘줄 솟는다


[87年 4月 여수선적 제65 대창호에서]


육지에 돌아와 누우면 눈앞의 천정이 빙글빙글 돌아갔다. 그때부터 삶은 외줄을 타듯 위태로웠던가 싶었다. 누구라도 수월한 삶이겠는가마는 별의별 일로 밥벌이를 삼아 살았다. 화이트칼라와 블루칼라를 오르내리던 직업은 산과 바다, 불, 땅속을 가리지 않았다. 돌아보면 동해안 주문진에서 십오 년을 살았으니 에 바다의 무늬가 새겨질 것 같다. 어쩌다 물과 가까운 건 독한 운명과 닮았는데 수소와 산소가 결합된 물은 사람을 살리기도 쓰러뜨리기도 하는 것이다.


섬에 내려와 반년을 살았다.

삶은 바위에 부딪쳐 거품을 일으키고 사라지는 것처럼 공허하다. 하지만 지구와 달이 서로 끌어당기듯 바다가 갈라지고 산소를 뿜어 동식물이 생멸하는 순환은 삶을 영속적인 반열에 올려놓는다. 무엇이든 태어난 이상 살아가기 위해 '삶'을 산다. 우리는 이걸 사랑이라 부른다. 사랑은 생명을 지속하는 일이고 반생명을 배척하지만 그렇다고 사랑이 언제나 생명의 편에 서는 건 아니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것들이 반 사랑일 수 있다. 가족을 사랑한다며 나라를 위한다는 명분으로 가족과 이웃을 사랑으로 다치게 하고 지배한다. 그래서 사랑은 어렵다. 우주의 부분 집합에 속하는 천지(天地)는 생성과 사멸의 현장이지만 생명과 죽음이 이어진다고 따스한 피가 돌거나 포용과 연대가 교환된다는 건 인간의 생각이다. 존재도 이름도 없던 별이 아득한 우주의 어둠에서 반짝이다 먼지로 사라지는 것처럼 생멸을 줄기차게 반복하는 것뿐이다. 천지 불인(天地不仁)한 공간에서 인간이 사랑을 보듬고 매만지며 온기를 불어넣으려 애쓰고 있다. 생과 사, 아름다움과 추함, 인간과 반인간은 함께 우주의 혼돈을 살다 떠난다.


수영장에서 나와 바다로 갔다.

초여름의 대지는 열기로 들끓고 수북하게 자란 풀이 길에 내려와 눕는다. 트렁크에서 짐을 챙긴 낚시꾼이 방파제로 걸어간다. 홍가시나무는 이른 봄에 새빨간 새순을 무성히 올리더니 도로 초록 색깔로 변했다. 변화무쌍한 수목의 변신이다. 창문을 열고 물살에 피로한 몸을 눕힌다.


집으로 가다 파란색 꽃 무더기를 보았다. 수국이다. 방금 튜브에서 짠 울트라 마린이다. 왕관에 박힌 보석처럼 무수한 자디잔 꽃으로 화관을 이루었다. 빙글빙글 우주가 생명의 환희를 뿜어낸다. 꽃의 아름다움은 숨이 막힐 정도다. 환희는 추락을 내포하지만 그저 지나치는 열락(悅樂)이 아니다. 미추(美醜)의 씨앗을 떨어뜨릴 거다. 썩든지 물기 먹고 싹을 틔우든 우주의 기운에 맡긴 채. 사람들은 꽃을 찾고 꽃을 그린다. 꽃은 희망과 절망을 모두 품었다. 난 꽃을 그릴 자신도 믿음도 없다. 짧게 산 미망(迷妄)의 궤적이 그것을 말한다. 지중해 크레 섬의 작가 작가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묘비명의 자유 가슴 떨며 바라볼 뿐이다.  바다는 자유다.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두렵지 않다

나는 자유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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