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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인 Jun 11. 2022

도꺼 일기

一人暮らし(63)

어쩌자고 인연은 자꾸 늘어나는가.

혈연도 제대로 건사하지 못하는 주제에 거미줄처럼 촘촘한 영토를 넓혀가는 관계망은 순전히 자신으로부터 비롯된 것일 터.


며칠 전 무게 중심이 안 맞아 탈수할 때마다 쿵쾅대며 천둥소리를 내던 드럼세탁기가 드디어 돌아가셨다는 문자가 왔다. 아내는 통돌이를 할부로 주문했다고 했다. 한 달 전에 내가 사준다고 했을 때 극구 자존심을 세우더니 홀쭉해진 지갑을 탈탈 뒤집어 세탁기 값을 넣었더니 놀고먹는 백수의 돈을 받아 불편하다면서도 마냥 좋은 표정이다. 이불 빨래를 얌전히 돌리는 세탁기 사진을 연신 보낸다.

내가 묻는 안부는 마당 개 곰돌이와 장미였는데 작년에 지인에게 얻은 붉은 메밀 씨가 꽃을 피웠고 담장의 장미도 새빨간 입술을 내밀었다.


과수원집주인은 두 번째 사과 적과로 내가 보낸 글도 읽지 못할 정도로 심신이 처진다고 했다. 올 가을 맛난 열매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양조장 사장은 조용하다. 한 달 서너 번 알바로 쏠쏠한 용돈 벌었는데 내가 빠지니 적잖이 고초를 겪는 모양이라 미안한 심정이다. 그러고 보니 B군에서 알고 지내는 지인은 과수원집과 양조장집, 처가 식구들 뿐이다. 일터에서 만난 사람들은 길에서 가끔 인사를 주고받는다.


가까운 Y시의 작가와 친구도 내 쪽에서 나들이를 삼가니 어쩌다 한두 번 만날 뿐이다. 사는 데서 칩거하다시피 하다 섬에 내려와 우르르 사람들을 만났다. 볼수록 매력적인 사람들이란 생각이 들었다. 화실의 화가들은 하나같이 그림의 표현이 개성으로 똘똘 뭉쳤다. 한 선생님이 오래 지도하는데도 자신의 회화 세계는 독특하다. 평소 선생의 주장이 자신의 창작 세계를 확장시키란 것이기도 하지만 내가 본 B군의 문화원 화실 수강생의 그림은 선생의 붓질을 그대로 빼박았다. 입시학원을 하는 후배가 선생인데 만나면 물어볼 생각이다. 후생가외나 청출어람이 공연히 생긴 말은 아니잖은가. 너른 물에 고기를 풀어주는 게 스승의 덕목이리라.


어제 낮 전시회에 다녀오다 소나기술로 죽었다 살아났다. 아침에 깨자마자 숙취가 이빨을 드러낸 파도처럼 밀려왔다. 간신히 밥상을 차리고 회복 중이다. 오후 가려던 수영장은 쉴 생각이다. 술 때문에 수영을 쉬다니 섬사람 다 된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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