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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인 Jun 16. 2022

고동이 사는 법

고동이 사는 법


고동은 다슬기의 전남, 경남 지방 방언이다. 길쭉한 고동은 갯고동이고 동그란 게 제주서 보말로 부르는 참고동이다. 해안은 해마다 관광객의 해루질로 개체수가 눈에 띄게 줄었다. 더구나 동해는 개펄이 없어 갯것의 서식에 불편한 환경이라 남해와 서해처럼 종류가 적다.


섬의 바다에 들어가 본 풍경은 동해와는 사뭇 달랐다. 뻘물이 섞여 탁한 편인데 바위에는 굴이 붙어 자랐다. 바다 민달팽이인 군소는 엄청 많았다. 크고 작은놈들이 짝짓기 하느라 둘이 꼭 붙어 있는 놈도 있다. 멍게 해삼이 드물게 보이고 바위틈으로 제법 굵은 노래미가 낯선 그림자에 놀라 화들짝 꽁무니를 뺀다. 미역 다시마 등 해초는 녹아내렸고 기름한 톳이 물살에 흔들리며 자란다. 자연산 홍합이 짠물을 마시며 몸을 불리고 해초가 사라진 곳에 보라성게가 밤송이 같은 가시를 세우고 점령했다. 바다의 황폐화는 한반도 전역의 수역에서 진행 중이다. 물밖에서 보면 무늬만 멀쩡한 바다의 일몰과 일출을 배경으로 펜션과 식당이 들어선다. 고깃배는 줄어들고 유람선과 낚싯배가 포구를 차지한다. 장(醬)을 푸고 쌀독을 헐어 유배와 전쟁 피난민을 품어준 유순한 섬사람들은 태풍 전야 같은 불안한 삶을 들여다본다.

 해수욕장 건너편의 자갈이 많은 해변에 고동이 많았다.


잠수복을 벗고 수영복에 티셔츠를 입고 바다에 뛰어들었다.

초여름의 수온은 견딜만했다. 짠물의 부력 덕에 몸이 둥둥 뜨는 느낌이다. 자유형 스트록에 힘이 들지 않고 잘 나아간다. 주름 같은 파도가 얼굴을 때려도 호흡하기에 적당하다. 가까운 거리를 왕복한 뒤 스노클 물안경을 쓰고 바위 탐색에 나섰다. 일행은 양파 주머니를 들고 물가의 바위를 살피며 다닌다. 가슴 높이의 물에서 고동을 찾았다. 홍합과 고동이 천지 빛깔이다. 다닥다닥 한 군데 붙은 것들은 손으로 쓸면 우르르 잡혔다. 굵은 홍합을 골라 땄다. 기다란 양파 주머니가 차기 시작한다. 가만히 보니 다닥다닥 붙은 것처럼 보일 뿐, 사람의 손길을 피한 나머지 개체를 궁핍한 내 시선에 풍족하게 느낀 것뿐이란 건 나중에 알아챘다. 돈 되고 쓸모 있는 건 이미 싹 쓸어간 뒤였다. 살아남거나 막 알에서 깐 새끼들은 자랄 새 없이 운명을 다한다. 실은 많은 게 많은 것이 아니었다. 사철 관광객은 바다로 몰려들고 각종 장비로 무장한 그들은 밤에도 불을 켜고 바다를 쑤셔댄다. 마치 무용담을 늘어놓듯 유튜브에 올린 찬란한 전과는 뒤이어 따라올 사람들을 부추긴다. 예전 사람들은 빈한한 밥상에 올리기 위해 바다를 들락거렸을 뿐인데 요즘은 탐식을 위해 들락거린다. 종패(種貝)를 풀어 조개 체험을 하는 건 나은 편이다. 바다는 풍요의 전설을 잊고 오염과 가난에 신음 중이었다.


바쁘게 섭과 고동을 잡으면서 느낀 건데 바위에 붙어 느릿하게 움직이는 고동이 재빠르게 달아나는 것이다. 물고기의 움직임과는 다른 몸짓이 무척 예민하게 보였는데, 그건 사람 손이 가까이 가면 스스로 흡반의 밀착을 풀고 깊은 물속으로 몸을 던지는 것이었다. 물속의 생물은 수압과 물의 흐름 등으로 적의 동태를 파악한다. 물고기 옆줄의 역할과 비슷한데 고동은 스스로 봉인을 해제한 보물상자처럼 바위를 떠나 돌 틈으로 사라졌다. 그것도 신호를 받기라도 한 것처럼 일제히 몸을 던져 낙하한다. 천적의 입장에선 다 잡을 수는 없다. 생존은 복불복이지만 살아남는 건 희생을 치른 이기적 개체다. 만일 고동들이 모두 제자리에서 눈을 질끈 감고 천적이 지나가길 빌었다면 전원 생존이나 전원 사망의 선택만 있을 뿐이다. 스스로 보호하는 고동의 몸짓에 감탄했다. 그렇다고 모든 고동이 탈출의 비법을 쓰는 건 아니었다. 대개는 위험의 도래를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천적은 너무 빠르고 은밀하게 물을 헤쳐 나타난 때문이었다.


인류의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

공동체의 미래를 점치기 전에 나는 지구에서 사라질 테지만 궁금하다. 가당찮은 두뇌의 능력을 믿고 끝을 보려는 인간의 개발 본능은 자신의 미래를 보장하지 못할 지경이 된 지 오래다. 잠든 고동처럼 잡힐 운명이거나 깨어 있어도 결말은 나쁜 운이라면 더 이상 미래는 없을지 모른다. 그저 자신이 속한 집단이 오래 생존한 공동체이길 바라며 자원을 약탈하며  삶을 누린다. 고동이 사는 법과 인간이 사는 법은 웃프게도 닮은 것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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