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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인 Jun 16. 2022

도꺼 일기

一人暮らし(65)

섬에 내려와 사람들과 이런저런 약속을 하고 만난다.

오늘은 구조라(旧助羅) 해변에서 고동을 잡기로 했다. 빗물이 철철 듣는 화실에서 우연히 잡은 약속인데 섬사람은 널린 게 바다라 쉽게 나가고 들오는 모양이다. 내륙에선 동해에 가려면 한 달 전에 날을 잡고 준비하느라 미리부터 부산을 떨어야 간다. 그나마 당일 일이 생긴 사람 빠지고 나면 가는 이는 줄어든다. 그만큼 내륙인에게 산과 바다는 멀다.


저녁엔 도서관 어반 스케치 강좌에 나가고 내일은 오전 수영 마치고 주민센터에서 하는 풍물 강습 구경 가기로 했다. 화실 총무가 주민들을 가르친다. 그녀는 광주 항쟁 때 중학생으로 광주에 있었다. 시절의 아픈 상흔을 똑똑히 기억했다.


금요일이 오면 섬을 떠나기 딱 일주일 남는다.

매일 초 읽기로 섬을 몸에 새긴다.

수영장 사람들은 물속에서만 만나고 인사했다. 밖에서 만난 이는 수영 고수 K와 관리인 박 씨뿐이다. k는 퇴직한 후 다시 일하러 다니느라 새벽 수영을 한다. 박 씨는 수영장 일이 끝나면 원래 살던 안산으로 갈 생각이다.

화실 사람들은 함께 그림 그리고 밥을 먹었다. 오월의 바다 야유회, 목포 여행, 전시회 등 많은 시간을 같이 보냈다. 수영이나 그림이나 공통의 행위로 모인 사람들이라 마음이 통했다. 게다가 도서관 어반 스케치 나가면서 강사가 그림 동아리를 소개해 섬의 화가들과 인연을 맺게 되었다. '색먹' 창립 전시와 연말 문화원 화실 전시에 작품을 내려면 집에서도 꾸준히 붓을 잡아야 한다.



오후 바다에서 돌아와 급하게 잠수복 헹궈 널려다 젖은 발에 미끄덩 꽈당! 노인들이 집안 활동에서 다치는 게 팔 할이라더니 그꼴 났다. 엉치뼈에 파스 붙이고 도서관 어반 스케치에 다녀왔다. 수업 내내 앞자리에 앉아 선생과 그림 얘기하다 종 쳤다. 다음 주엔 섬에 내려와 그린 그림들을 가져가기로 했다.


바다에 들어가니 바위틈 노래미가 화들짝 달아나고 굵은 고동이 몸 풀어 달아난다. 기름한 톳나물이 다리를 감싸는 바닷속 풍경은 동해와 다른 맛이 났다. 장소를 옮겨 두 번째 고동 잡기는 대성공이었다. 홍합을 따고 군소와 성게를 잡았으나 군소 성게는 버리고 고동(보말)만 나눠 챙겼다. 조금 찬 물에 수영하니 몸이 둥둥 뜨고 쑥쑥 잘 나아간다. 동해안 스노클링 이후 자유형 영법으로 바다를 헤치는 느낌이란 걸음마를 배운 아이가 발 타는 기분에 버금갔다. 오는 길에 화실 동료의 집에 초대받아 음식과 다과를 먹고 양파까지 얻어 왔다.


넘어지면서 한 손에 잡은 스노클 마스크가 분해되었는데 깨지진 않아 조립했다. 기계와 기구에 잼병인 내가 스노클 빨대의 원리를 깨치는 기회였다  대롱 끝의 숨구멍 마개는 물에 들어가면 닫히고 숨을 뱉으면 열리는 원리다. 부표처럼 부력을 받아 뚜껑을 닫는 장치가 빨대의 기본 구성이라는 데에 새삼 감탄했다. 물에 들어가면 부력과 중력은 반대로 작용하며 균형을 요구한다. 삶도 그러한데 여적지 힘의 균형을 함부로 여긴 것 같다. 살면서 만난 여자들은 젊고 이뻤지만 모두 떠나보냈다. 오랜 관계를 바랐지만 내 쪽에서 균형을 무시한 탓에 각자의 길로 돌아갔다. 지금은 가끔 추억하는 정도다. 늙는 모양이다. 이런 데서 깨달음을 얻으니 말이다.


집에 와서 고동을 삶았다.

작은 껍데기에 어디서 그 많은 살을 숨겨 두었을까 싶을 정도로 굵고 실하다. 이젠 술 없이도 안주를 먹게 됐다. 고소한 게 맛있다. 반 넘어 까먹고 누웠다. 엉치뼈가 쑤신다. 내일은 약국에서 진통 소염제와 물파스를 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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