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천 계곡은 소읍 버스터미널에서 오 분 거리의 가까운 계곡이다. 진입로는 구 소방서와 닭실 마을(酉谷里)의 두 군데인데 유곡리에서 봉화읍을 관통하는 물길이 계곡을 적시며 흐른다. 계곡의 길이는 오백여 미터로 짧지만 암반을 타고 흐르는 물과 솔숲이 조화를 이뤄 사철 색다른 풍경을 연출한다.
계곡에는 오래전 유생들이 과거 급제의 꿈을 키우며 공부하던 석천정사가 있다. 풍경이 좋아 밤마다 도깨비들이 모이는 통에 시끄러워 충재 권벌의 후손이 바위에 '청하동천(靑霞洞天)'이란 붉은 글씨[朱漆]를 쓴 이후 조용해졌다는 얘기가 전한다. 동천은 이상향을 뜻한다. 혈기 왕성한 양반의 자손들이 공부만 했겠나. 정사의 담을 넘어 마을에 내려가 술을 푸거나 처자를 만나기도 했을 거다. 새벽이슬을 밟고 비틀대며 불운한 나라의 운명을 한탄하던 유생의 발소리는 사라지고, 입신출세의 꿈을 키우던 정사의 돌담에는 이끼가 말라붙었다. 비바람에 칠이 벗겨진 쪽문으로 물소리만 들락거린다.
삶의 가치는 시대 의식으로 만들어진다. 의식은 과거로부터 온 사유와 섞여 현실의 습속과 상황이 빚어낸 바, 인간은 환경과 상황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더러 혁명의 피를 받은 이단아가 나타났지만 제도와 습속은 그때마다 새로운 변화의 기를 꺾어놓았다. 제도와 습속은 삶에 의문을 품지 않는 게 문제다. 이전부터 그렇게 생각하고 해왔으니 그냥 따르라고 한다. 하지만 변화의 물결은 젖고 마는 법이다. 안팎으로 밀려드는 변화는 사유와 물질세계를 서서히, 때로는 충격으로 다가왔고 사회는 역풍과 순풍을 갈아타며 변했다.
종교는 현실 너머의 세계를 통해 구도를 실천했고 사람들은 살만한 세상을 욕망하며 싸우다 떠난다. 인간은 가치와 의미를 좇는 존재임에 분명한데 사회는 점점 짐승의 세계를 닮는 것 같다. 남과 비교해 남보다 못 살면 속상하다. 일 안 하고 살면 주변의 시선은 그를 모자란 인간 취급한다. 좀 튀는 얘길 하면 외계인 취급하거나 아예 돌아선다. 불편하거나 실용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돈 많이 벌어 편하게 사는 게 지상 최고의 가치이고 목표다. 돈은 어느새 진리의 반열에 올랐다. 모든 가치의 기준이 돈이기 때문에 돈이 없는 사람은 미안하지만 가주십쇼다. 가난은 자본주의의 적이면서 자발적 생태주의다. 쓰지 않으니 버릴 게 없다. 돈 냄새를 풍기지 않는 사람을 찾게 된다. 예전엔 못난 것들이 끼리끼리 놀았지만 지금은 얼굴 보기 힘들다.
어쩌다 봉화에 산다.
예전에 봉화는 듣도 보도 못한 곳이었다. 알게 된 후로도 교통이 나쁜 오지라거나 조선 시대 귀양지 정도로 생각했다.
도시에서 봉화 출신 여자를 만나 아이 낳고 살았다. 그때부터 봉화 출입을 했는데 삼십여 년 전의 봉화는 진흙 길에 낮은 지붕이 오종종한 시골이었다. 명절 때 귀성 차량에 섞여 처가 나들이하면서 농촌의 풍경을 간직한 봉화를 좋아하게 되었다. 시골이 으레 그렇듯이 당시 봉화도 가난을 씻기 위해 도시로의 탈출이 성공의 길이었다. 학업으로 일터를 찾으러 도시로 떠나는 행렬은 집집마다 이어졌다. 도시로 나가 자리 잡아 돌아오지 말라는 부모의 바람은 명절이 되면 큰 차를 타고 돌아오는 경쟁의식을 부추긴다. 자식의 성공은 부모의 한 풀이요 대리 만족이 되었다. 자랑할 것 없는 부모는 예전 살던 집과 함께 낡고 늙어간다.
퇴직 후 돌아온 봉화는 처음과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터널이 뚫리고 자동차 전용도로가 생겨 교통이 나쁜 오지란 말은 옛말이 되었다. 일 년에 두 번 축제가 열리고 읍과 면에는 연립주택과 미끈한 아파트가 세워졌다. 도립공원 청량산과 낙동강이 흐르고 가까운 영주의 부석사와 소수서원은 주요 관광지다. 산 좋고 물 맑고 깨끗한 공기 외에 내세울 것 없는 봉화는 가난한 지역이 그렇듯 소와 돼지, 닭을 집단 사육하기 시작하면서 물색이 탁해졌다. 비가 오면 논밭에 뿌린 퇴비는 빗물과 섞여 하천에 스며들었다. 정신 나간 놈이 사대강 물을 정화한다고 막은 댐은 물을 가두자마자 녹조가 창궐해 도로 물을 빼는 지경이었다. 깨끗한 산과 물을 보려면 점점 내륙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처음 내려왔을 때 사만 오천이던 인구는 삼만으로 줄었다. 서울시 면적의 두 배인 군은 고령화와 함께 노인마저 떠나면 지도에서 사라지는 마을이 늘게 생겼다.
이웃 안동 시와 영주시, 영양군과 함께 전통이 살아 있는 봉화는 전통과 현대가 공존하는 지역이다. 문화원 지붕을 기와로 씌운 걸 봐도 짐작한다. 간밤에 누구 집에 부부싸움이 나면 날 새기 전 온 동네가 다 알고, 아침에 일어난 소식은 저녁 어스름 전에 다 퍼진다. 한집 건너 친척이고 선후배니 술집에 앉아서 함부로 남 욕도 못한다. 선거철이면 상대편 운동원이 삼촌이고 아지매다. 답답하면서 미지근한 정이 공기를 타고 흐른다.
방송에서 자연인이 한 말, '다람쥐가 열심히 사나, 그냥 사는 거지'. 그는 이 깨달음을 얻고 우울에서 벗어나 천지 불인(天地 不仁) 한 자연의 품에 안길 수 있었다고 했다. 도시와의 소득 격차는 점점 벌어지고 B급 인간만 남았다는 자조적인 상황이라면 B급 인간이 모여 살 만한 농촌을 만드는 게 괜찮단 생각이다. 체험 마을이니 관광 농업이니 축제니 외부인에게 생색내기 정책 말고 주민이 행복하게 느끼는 사업을 실천함이 옳다. 주거와 소득은 삶의 토대이니.
아침마다 개를 데리고 계곡을 산책한다. 구 소방서 쪽에서 들어가거나 닭실 마을 들판을 지나 석천정사 주차장 쪽에서 가기도 한다. 사철 다니다 보니 이른 새벽에 물에서 노는 동물을 자주 목격한다. 개는 코를 벌름거리며 동물의 체취를 탐문한다. 멧돼지와 함께 한반도의 상위 포식자가 된 담비, 너구리가 계곡의 숲에 터를 잡고 산다. 청둥오리는 물길의 위아래를 오가며 새끼를 치고 기른다. 계곡의 위로 마을이 있어 논밭에서 넘친 퇴비와 농약이 섞여 드는 물에 버들치와 갈겨니가 용케 비늘을 반짝이며 헤엄친다.
한여름에는 근동 아이들의 물놀이로 떠들썩하다. 수심이 깊은 곳은 없어 너럭바위에 미끄러져 물살을 헤치며 멱을 감는 모습을 보면 어릴 적 기억이 떠오른다. 맨손 잡기 은어 축제장에서 도망친 육봉 은어가 토실한 엉덩이를 씰룩이며 물길을 거슬러 올라오기도 한다. 축제가 끝나면 은어를 노린 사람이 투망과 훌치기 바늘을 들고 물속을 뒤진다. 살아남았다 해도 양어장에서 자란 비만한 은어는 번식도 바다로도 나가지 못한 채 계곡 물에 비치는 가을 단풍에 취해 서서히 생을 마친다.
계곡 물길 옆으로 난 오솔길에 벤치와 화장실이 있고 느릿한 걸음으로 산책해도 왕복 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아침저녁엔 인적이 끊어져 홀로 산책하기에는 이만한 데가 없다. 구렁이처럼 허리가 구불텅한 소나무가 숲 사이로 보이는 기름한 하늘을 떠받치고 바위에 부딪치며 흐르는 물소리, 오솔길 주변에 풀과 들꽃, 고요를 깨뜨리는 산새의 울음은 소란한 거리를 떠나 잠시 생각 없이 걸어도 좋다. 푹푹 찌는 더위에 시달린 밤을 지나 희번한 동살 무렵 석천 계곡을 찾으면 삶의 자잘한 소음조차 물소리에 섞여 아래로 떠내려간다. 불화하는 세상은 외롭고 쓸쓸하고 추악하면서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