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서가 절정에 달한 주말 얼음물과 파라솔 챙겨 집을 나섰다. 성큼 자란 벼가 허리를 세우고 이슬을 말린다. 조생종 벼는 패기 시작한 이삭을 달고 인사하듯 고개를 나부시 숙였다. 작년 재선충병 감시 초소 근무원으로 오간 길을 달렸다. 구불하게 이어진 길 양쪽의 논밭에선 심어놓은 작물이 푹푹 익어가는 중이다. 배릿한 냄새가 공기에 섞였다. 풋내와 닮은 냄새는 밤꽃 같기도 해서 야릇한 자극과 함께 여자를 떠올렸다.
명호면 외곽을 돌아 래프팅 기점에서 강을 둘러보았다. 래프팅 체험객이 줄 맞춰 서서 강사의 설명을 듣고 있다. 헬멧과 구명조끼를 입은 표정이 환하다. 나무 아래서 카약을 점검하는 동호회 사람들이 바쁘게 오간다. 튜브형 카약에 공기를 넣으니 빵빵한 모습이 드러나는 게 신기했다. 강에 내려간 사람이 경치를 감상한다. 칠월 들어 비가 잦았다고는 해도 수량은 갈수기를 조금 면한 상태다. 탁한 물빛에 잠긴 바위는 물때가 끼어 어둡다.
가는 길에 아는 이에게 강수욕 할만한 곳을 물었다. 출렁다리 부근을 알려주었다. 오랜만에 얼굴이라도 볼까 했지만 고추밭에 약 치느라 바쁘다고 했다.
래프팅장에서 강을 따라 더 달렸다. 오전 태양은 이미 골짜기를 달구기 시작한다. 강은 여울과 소를 군데군데 두고 아래로 흐름을 유지했다. 어느 곳이나 탁도와 물색이 암갈색을 띠고 속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였는데, 어릴 적 복개공사 전의 개천의 물빛과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집의 하수구와 연결된 도시의 개천은 말 그대로 오수의 집합지였다. 쓰레기와 죽은 쥐, 오물과 분뇨가 뒤섞인 개천은 장마가 지면 한차례 꺼풀을 뒤집어 씻겨 멀쩡한 바닥을 드러냈다. 세제를 풀어 박박 문지른 돼지 창자 같았는데 잠시 맑은 물빛을 보이던 개천은 며칠 지나면 도로 검은 물을 흘려보냈다. 놀랍게도 그런 물에 붕어가 살았다. 우리들은 썩은 물이 떨어지는 웅덩이에서 물고기를 찾아내며 놀았다. 생활환경에 대한 개념은 전무했고 오로지 먹고사느라 죽어라 매달렸으니 아침이면 두부장수 종소리와 요강을 비우는 아낙의 풍경이 하나도 이상하지 않던 시절이었다. 갑자기 불어닥친 북한과의 해빙 무드와 함께 개천은 하나둘 두꺼운 콘크리트로 덮였고, 낚시하던 통일로 하천의 하상은 석축 공사로 높아졌다. 지금은 개천을 기억하는 노인도 떠나고 또래의 장년 중에서 몇몇이 기억하거나 말거나 할 거다.
출렁다리에 차를 세우고 내려다보았다. 남녀 둘이 다리를 건너갔다가 오고 있었다. 풀 베는 인부들이 넘어오는 해를 피해 산그늘에 앉아 땀을 식힌다. 다리 아래의 풍경은 겉만 보면 중국 내륙의 명승을 빼닮았다. 깎아지른 바위 절벽 틈마다 푸른 바늘잎의 소나무가 자라고 절벽 아래로 강물이 멈춘 듯 흐르는 듯 검푸른 물길을 이어간다. 사진을 담거나 캔버스에 옮기면 그대로 힐링을 부추기는 천혜의 자연경관이다. 누가 그랬다.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고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고.
물이 모인 곳마다 수영 금지를 알리는 팻말이 있었다. 깊은 수심이 아니라도 저런 물에서 멱 감다간 온몸에 두드러기 생기기 딱 좋다. 강의 북쪽에는 오십 년 넘은 아연 제련소가 있고, 논밭에서 흘러든 퇴비의 침출수와 쓰레기로 강의 지류인 모세혈관부터 상한 물길이다. 보이는 산과 강, 물길과 논밭은 더없이 푸르고 청명하게 보이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생태는 뿌리부터 신음하는 환자의 상태다. 강마을 사람들은 강에 사는 물고기를 먹지 않는다고 했다. 상류와 안동댐까지의 퇴적토에는 기준치를 초과하는 카드뮴이 검출되었고 환경 단체에서는 끊임없이 제련소 철수를 요구하지만 자치단체와 환경부는 찔끔대며 경고장과 영업 중단의 시늉만 낼뿐이다. 그러는 동안에도 강에 기대 사는 것들의 생명은 시들어가고 강은 죽어간다. 강물을 가둬 물을 자원화하자던 터무니없는 발상은 강마다 녹조와 깔따구가 창궐하는 썩은 강을 만들었고, 죽어가는 사대강을 정화한답시고 만든 댐은 물을 가두자마자 녹조탕으로 변했다. 자본의 논리로 움직이는 정책은 시민의 생명, 생태의 순환을 끊는 돌이킬 수 없는 과오다. 거기에 거짓과 기만이 합세하면 돌아오는 건 인간과 자연의 공멸이다.
분명한 건 제도와 인간은 지금까지 해 왔던 삶의 형태를 바꿀 생각이 없다. 자본가도 농부도 시민도 정책 입안자도 지금까지 이루어 온 부와 삶의 양식을 변화시킬 대안을 찾기보다 손익을 따진다. 새로운 형태의 산업과 농업은 이제까지 누려온 것들을 버리지 않고 해결할 순 없을까 고민하는 동안 생태는 숨넘어간다. 인류는 투명한 하늘을 보기 위해 로켓을 타고 날아야 하고 맑은 물길을 보기 위해 가상 체험의 문을 두드려야 할지 모른다.
돌아오는 길 강 여울에 고무보트 두 개가 바닥에 걸려 오도 가도 못하고 노를 든 사람들은 재밌는지 환호성을 지른다. 그들은 배에서 내리고 타기를 거듭하며 도립공원 입구까지 래프팅을 즐길 거다. 똥물에 젖은 몸을 씻으며 오늘 하루 자연의 품에서 즐긴 체험을 소중한 기억으로 간직할지도 모른다. 나이브하게 강수욕을 꿈꾸었던 행보는 처참하게 무너졌다. 좌절은 개인을 넘어 죽음 직전의 생태를 확인하는 데에 이른 것이다.
집에 와 검색하니 강 오염 뉴스가 떴다.
조사단이 목격한 충격의 낙동강... "국민 식수 심히 걱정"
2022. 8. 6 오마이뉴스
이명박 정부 때 4대 강 사업으로 8개 보가 들어선 낙동강 전 구간에서 녹조가 심하게 창궐했다. 퇴적토는 오염으로 시커멓게 변해 있었다. 물과 퇴적토에선 역한 시궁창 냄새가 났다.
'낙동강 국민 체감 현장 조사단'은 4~6일 사이 낙동강 하류 김해 대동 선착장부터 상류 상주보에 이어 영주댐까지 대한 현장 조사를 벌인 뒤 이같이 밝혔다.
조사단은 마지막 날 칠곡보 생태공원과 해평취수장, 낙단보 선착장 부근에서 분석을 위해 물(채수)과 강바닥 흙(채토)을 채취하고, 저서생물을 살폈다.
현재 낙동강은 전 구간에 걸쳐 녹조가 발생했다. 조사 첫날 김해 대동 선착장과 매리·물금 취수장, 창원 본포취수장, 창녕함안보 선착장, 함안 칠서취수장, 창녕 유어 선착장 부근은 온통 녹색을 띠고 있었다.
둘째 날 살펴본 합천창녕보 쪽 어부 선착장, 달성보 선착장, 화원유원지, 매곡취수장 부근도 마찬가지였다. 낙동강 상류에 해당하는 해평취수장, 낙단보 선착장 부근도 역시 강물은 온통 녹색이었다.
낙동강 상류인 해평취수장에 발생한 녹조와 관련해, 박창근 가톨릭 관동대 교수는 "육안으로 봐도 녹조가 엄청 심하다. 쉽게 말해 녹조가 바글바글하다"라고 했다.
또 낙단보 부근에 있는 물놀이 시설과 관련해, 박 교수는 "지금 강물 속에는 녹조 알갱이가 매우 심하다. 육안으로만 봐도 미국 물놀이 금지 기준보다 훨씬 높은 녹조가 발생해 있다는 걸 알 수 있다"라고 했다.
그는 "그런데도 환경부는 보를 활용한다는 이유를 내세워 물놀이에 대해 그냥 보고만 있는 모양새다. 현재 녹조가 창궐해 있는 낙동강에서 물놀이를 한다는 것은 국민 건강 문제와 직결된다"며 "물놀이 시설이 운영은 적절하지 못하다"라고 했다.
환경운동연합이 지난 6월과 7일에 벌인 낙동강 수질 조사 결과, 독성물질인 마이크로스 시틴이 미국 물놀이 금지 기준(8 ppb) 보다 최대 1075배(본포 취수장 부근)에 달했고, 낙단보 율정호 선착장은 147.5배(1180 ppb)로 나왔다.
강바닥에는 퇴적토가 쌓여 있고, 흙은 색깔이 시커먼 상태였다. 특히 칠곡보 생태공원 부근에서 뜬 퇴적토는 시커멓게 변해 있었다.
임희자 낙동강네트워크 공동집행위원장은 "모든 구간의 퇴적토는 시커멓게 변해 있었고, 시궁창 냄새가 아주 심하다"며 "강바닥이 썩었다고 보면 된다"라고 했다. 물이 흐르지 않으면서 강바닥에 퇴적토가 쌓여 시커멓게 된다는 것이다.
이번 현장조사에서는 달성보에 이어 칠곡보 부근에서 뜬 퇴적토에서 '실지렁이'가 나왔다. 실지렁이는 깔따구 유충과 같이 '4 급수 지표종'이다. 또 상주보 쪽 퇴적토에서는 깔따구 유충이 20마리가량 나왔다. 이곳은 낙동강 상류인데도 4 급수에서 자라는 생물이 나온 것이다.
임 집행위원장은 "녹조로 인해 수질도 탁하고, 물에서 악취가 나는 데다 썩은 퇴적토로 인해 강물 속은 현재 현기성 산소가 부족한 상태로 보인다"며 "그래서 4 급수에서 서식하는 생물이 나타나는 것"이라고 했다.
더불어민주당 이수진 국회의원(비례)은 6일 오전 낙동강 상류 지역 현자 조사에 함께 했다. 이 의원은 시커멓게 된 퇴적토를 살펴보기도 했다.
이수진 의원은 "강에 녹조가 창궐해 국민 식수가 심히 걱정된다"며 "환경부 업무보고를 보면 재자연화 이야기는 없고, 보 활용에 대한 내용만 들어 있다. 낙동강 재자연화를 위해 국회에서 적극 나서도록 하겠다"라고 했다.
현장조사단은 이번에 곳곳에서 뜬 '채수'에 대해 독성물질인 마이크로시스틴, '채토' 자료에 대해 '강한 열로 태워서 남은 유기물'을 분석해, 그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