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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인 Sep 01. 2022

잡설

杂说(12)

문수산 임도 작업구간 총 길이는 3.32km이다. 휴양림의 임도 입구에서 올라가며 작업한다. 휴양림에서 삼거리 쉼터까지는 2km, 쉼터에서 정상 가부재까지는 1.32km이다. 국유림 임도와 군유림 공설 임도가 만나는 세 갈래 고갯마루에서 다시 주실령의 서벽과 춘양면으로 길이 갈라진다.


문수산(1205m) 정상은 여기서 더 올라간다. 비 뿌리는 고갯마루에서 쉬었다. 바람은 없고 젖은 나무들은 소리 없이 서 있다. 어린 층층나무가 풀 속에서 존재감을 드러낸다. 밑동만 보아서는 잣나무인 줄 알았는데 거대한 소나무가 하늘을 찌른다. 산꼬대를 견디며 자랐으면 몸이 뒤틀릴만 한데 소나무는 굵은 몸피로 꼿꼿하게 땅을 딛고 서 있다. 오래 묵은 나무에도 영혼이 있다면 문수산을 지키는 산신령의 동무 반열에는 들지 싶다. 주인 보이지 않는 차가 한쪽에 멈춰 있다. 서쪽의 아랫길이 작업할 임도가 연결된 휴양림 방향이다. 오줌을 갈기고 공설 임도를 조심하며 내려갔다.


마사토와 부서지기 쉬운 임도의 직벽에서 떨어진 낙석이 군데군데 흩어졌다. 풀은 무성한 곳과 드믓한 곳이 섞여 작업은 대체로 무난한 편이다. 길가와 중간의 풀을 베면서 지나간다. 늦여름의 싸리나무 꽃이 한창이고 자리공은 열매를 익히는 중이다. 상수리나무 열매는 떨어지기 전이고 대신 도토리 거위벌레가 자른 나뭇가지가 태풍 지나간 신락로처럼 떨어져 있다. 가을 초입의 숲은 여름의 진한 초록을 여전히 품었다.


휴양림에서 근무할 때 도토리 주우러 임도를 돈 적 있다. 길보다 상수리나무가 우거진 계곡에 많을 터인데 편하게 줍자고 임도를 따라갔다. 십 키로의 임도를 도는 동안 첩첩 산에 펼쳐진 산하를 감상했다. 산의 골짜기마다 마을과 도시가 있고 사람들의 사연이 흐른다. 시간과 역사가 버무려진 인간의 세상은 저주스럽고 눈물겹고 아름다운 얘기를 담고 흐른다. 그런데 곰곰 생각하면 아름답고 눈물겨운 건 순전히 인간의 관점이다. 저 푸른 소나무, 키를 세우는 층층나무, 임도를 구르는 돌 하나같이 인간의 속사정엔 관심이 없다. 천지불인(天地不仁)의 속내엔 우주를 관통하는 깊은 뜻이 흐른다.


돌틈에서 흘러나온 물이 계곡으로 모인다. 맑고 차가운 물은 맨입으로 마셔도 좋을만큼 깨끗했다. 우곡리 골짜기는 비구름에 갇혀 그림 같다. 사흘 내리는 비로 새소리도 숨었고 축축한 기운이 골마다 가득하다. 정상에서 천천히 내려가다 달아나는 고라니를 보았다. 짙은 밤색 털이 우리 집 개를 닮았다.


작가 정비석은 「산정무한(山情無限)」에서 '조반(朝飯) 후 단장(短杖) 짚고 험난한 전정(前程)을 웃음경삼아 탐승(探勝)의 길에 올랐을 때에는, 어느덧 구름과 안개가 개어져 원근(遠近) 산악이 열병식(閱兵式)하듯 점잖이들 버티고 서 있는데, 첫눈에 비치는 만산(萬山)의 색소는 홍(紅)! 이른바 단풍이란 저런 것인가 보다 하였다'라고 썼다. 고등학교 때 국어 책에서 본 수필이다. 이때의 느낌은 금강산 기행에 대한 산의 아름다움보다 '원근의 산악이 열병식하듯'의 열병식이란 표현에 관심이 쏠렸다. 지금이야 클리셰에 불과하겠지만 사춘기의 내겐 문학가의 표현에 빠져드는 계기가 되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면서 난 임도에서 만난 산과 숲의 풍경을 진부하나마 묘사할 능력이 모자라 끌탕하는 중이다.


영림단에서 내륙과 바닷가의 산을 넘나들며 일할 때도 산의 경치를 감상할 여유는 손톱만치도 없었다. 숙소에서 눈 비비고 일어나 물 말아 두 공기를 해치우고 산등을 넘는다. 점심엔 세 공기를 욱여넣어야 늦은 오후 허기를 견디며 산을 넘는다. 먹고살자고 하는 일이지만 밥을 낫게 먹지 않으면 근력이 달린다. 배 터지 먹어도 돌아서면 소화가 되던 시절이었다. 동해안을 오르내리며 골짜기에 들어가 조림지의 풀을 베고 간벌을 했다. 저녁마다 팀장은 회를 뜨거나 게를 쪄서 날랐다. 베개에 머리를 대면 빠르게 잠으로 빠졌는데 꿈결에서도 기계톱이 돌아갔다. 동료와 멀찌감치 떨어져 나무를 베면 톱 소리가 마치 누가 소리쳐 부르는 것 같았다. 나무가 넘어질 때마다 뒤를 돌아보았는데 이런 깊은 산중에서 대체 날 찾을 사람이 있긴 한가. 멀리 있는 인연들은 제가끔의 삶을 덧칠하느라 톱쟁이의 사정은 만리 밖인데 자꾸 그들이 생각났다.


산에서 밥을 벌다 아연 광산의 막장에서 광차를 밀었다. 파 먹을 대로 파 먹은 아연 굴은 스펀지처럼 사방에 구멍이 숭숭 뚫렸고 쉴 새 없이 쏟아진 물은 시커먼 갱도에 개울을 만들었다. 칸죠(勘定) 날이면 광산을 떠돌던 막장 영혼들은 무너질 것 같은 낡은 술집에 모여 밤늦도록 젓가락을 두들겼다.


어슴새벽에 모인 외인부대 용병을 닮은 기간제 일꾼들은 임도에 퍼질러앉아 아침 커피를 홀짝인다.  물기가 마르지 않은 풀잎이 바람에 흔들린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구간 별로 떨어져 풀을 베며 올라간다. 나는 작업차를 몰고 한참 위로 올라간 뒤 내려가며 풀을 친다. 산사태 방지를 위해 뗏장을 심은 길턱 아래는 낭떠러지이고 골짜기엔 상수리나무가 촘촘하다. 솔씨가 날아와 무성하게 번졌다. 일정한 높이로 돌을 조심하며 날을 휘두른다. 붉은 싸리꽃이 서슬에 춤을 춘다. 흐린 날씨에도 금세 수건이 젖는다. 작업용 앞치마는 튀는 돌과 나뭇가지를 훌륭하게 막아준다. 다리 보호대를 찰 필요도 없다. 바람이 통하지 않아 더운 게 흠이지만 계약이 끝날 때까지 다치지 않는게 우선이다. 중간중간 일의 속도를 가늠하며 휴식하고 베기를 계속한다.


두 파수 쉬니 밥때가 되었다. 나머지 풀을 베는 사이 동료가 물을 끓이고 컵라면에 스프를 털어 넣는다. 힐끗 보다 천연 비아그라 비수리의 모가지가 댕겅 날아간다. 하나 둘 오래 전 여자 헤아리니 푸른 선혈 낭자한 풀도 라면도 고단한 삶도 퉁퉁 불어터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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