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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인 Sep 18. 2022

잡설

杂说(16)


며칠 전 개와 함께 뒷산에 산책 다녀온 아내가 배낭에서 알밤을 쏟아냈다. 탱글한 햇밤의 윤기가 쪄 먹으면 좋겠다고 감탄했다. 산에서 일하는 일꾼 중 도시에서 귀농한 임 씨는 틈날 때마다 산초 열매를 따거나 도토리를 줍는다. 이런 게 시골 사는 재미라며 일하러 나오는 게 즐겁단다. 젊었을 때 참치잡이 원양어선을 탔다는 손 씨는 산에서 일하다 산양삼을 캐기도 했다. 그는 지난 파수의 해발 천 미터 임도 풀베기 때 무쭐한 노루궁뎅이버섯을 땄다. 영림단에서 일할 때 남들은 영지버섯이나 송이버섯을 곧잘 따는데 내겐 고작 더덕과 도라지만 보였다. 가을 간벌작업할 때 퍼드래기 송이버섯을 따서 숙소에서 동료들과 소고기랑 볶아 안주로 먹기도 했다.


시골의 봄 가을은 먹을 게 넘쳐난다.

냉이는 납작하게 웅크린 로제트 자세로 한겨울의 추위를 견디다 정월 대보름 전후 얼었던 땅을 녹이며 깨어난다. 콕콕 밭두렁을 호미로 찍으면 실하고 기다란 냉이 뿌리가 달려 나온다. 된장 풀어 슴슴하게 끓인 냉이 된장국의 풍미는 겨우내 군둥내 나는 입맛을 단번에 씻어준다. 냉이를 선두로 아지랑이 오르는 봄이면 쑥을 비롯해 산과 들에 지천인 봄나물로 식탁을 풍성하게 차린다. 머위 잎, 햇잎나물, 참옺나무 새순, 참두릅 순, 엄나무 새순, 화살나물, 돌나물, 원추리 싹, 나물취 등 야생 식물의 새순이 죄다 먹을거리다.


도시에서 자라 나물을 멀리했었는데 나이 들어 농촌에 살다 보니 농촌 출신 아내가 만든 나물 반찬을 즐기게 되었다. 냉이를 콩가루에 버무려 된장국에 넣어 풍미를 즐기는 것도 배웠다. 처음 시골에 내려가 동네 사람들과 나물을 캐러 산을 뒤지면서 참당귀와 개당귀를 구별하는 법을 배웠다. 마을 사람들은 비닐봉지에 밥과 된장 고추장만 싸 가서 참당귀 이파리에 싸먹었다. 흔한 민들레 이파리는 삼겹살에 싸면 쌉싸레한 맛이 입맛을 돋우고 건강까지 돕는다. 어릴 때 먹었던 나물 중 피마자 이파리 묵나물 무침을 시골에 내려와 사십 년만에 먹었는데 음식은 풍미와 함께 그때의 기억을 소환하는 놀라운 마법을 지니기도 하는 거였다. 일례로 난 대학생 때 사귀던 여학생과 먹은 멧돼지 불고기 맛을 지금도 기억한다. 또는 대여섯 살 부산에서 먹은 고래 고기까지도 기억의 말미에 끌어 올린다.


뜨거운 햇볕과 사나운 비바람이 잦아드는 가을에 접어들면 비로소 시골의 산과 들은 먹을거리로 넘쳐나기 시작한다. 임도를 걷는 중에도 툭툭 지구를 울리며 도토리가 떨어지고 밤나무 아래 밤을 줍는 중에도 머리며 등짝을 토실한 알밤이 사정없이 때린다. 이른 추석이 지나자 들판은 날마다 누렇게 색을 입는다. 무거워진 고개를 가누지 못해 나락이 물결 치고 김장밭에는 배추 무가 몸집을 키운다. 시골살이의 재미는 서로 나누는 데 있다. 감자를 캐면 감자를 나누고 상추가 크면 쌈을 나눈다. 텃밭에서 키운 소소한 것들로부터 농사꾼의 손길을 거친 풋고추며 채소를 심심찮게 노나 먹는다. 도시는 문밖을 나가면 마시는 물부터 돈으로 바꾸지만 농촌은 나눔의 문화가 끈끈하게 공동체를 이어가는 힘이다. 예전보다 인심은 강팔라졌지만 이웃의 정은 여적지 남아 온기가 돈다.


조선의 이단아 허균은 '도문대작(屠門大嚼)'을 써서 음식에 대한 남다른 기호를 보였다. 도문대작은 푸줏간 앞에서 입맛을 쩝쩝 다신다는 의미다. 그의 아버지 허엽은 바닷물을 간수로 써서 두부를 만든 강릉 초당두부의 장본인이다. 인간의 일생을 '식색본성(食色本性)'이라 하여 먹는 것과 물질(성욕)에 대한 고갱이로 삼는 건 생존 본능과 일치하는 사유다. 먹지 않고 살 수 없듯이 물질욕과 성욕은 인간의 본성인데, 문제는 양보다 질에 달렸다. 먹을 게 넘치다 보니 색다른 맛을 찾아 즐기는 식도락이 유행하고 급기야 끝없이 집어먹는 먹방이 대세가 되었다. 먹어대는 중독과 음식을 거부하는 거식증은 병으로 치료를 받아야 하지만 음식을 낭비하고 마구 버리는 행위는 반생명이고 반생태적 문화다.


성욕은 늙어 빠질 때까지 마구 발산하는 게 지고의 쾌락이라 믿는 자는 눈이 벌게 새벽까지 정력 강화제를 뒤진다. 성은 사랑이 아닌 포르노가 되어 도락의 항목을 차지한다. 인터넷 물살을 헤치다 보면 무시로 정력제 광고가 시선을 막는다. 오줌 싸는 것 외엔 물건의 소용을 다한 사내는 한숨 섞어 과거를 추억하고 삽입을 사랑이라 믿는 자는 끝내 사랑을 경험하지 못한다.


물이 맑고 깨끗하다면 물에서의 천렵과 놀이는 시골의 또 다른 재미다. 면적이 서울시의 두 배인 B군에서 맑은 물을 만나려면 강원도와 맞닿은 S면이나 S'면을 가야 하는데 S'면의 낙동강 상류는 제련소의 중금속에 오염된 물길이라 강마을 사람들은 강고기를 먹지 않는다. 청옥산에서 내려오는 개울, 강의 지천에서나 맑은 물길을 본다.


휴일 오후 이십여 년 전 처음 B군에 왔을 때 삼 년 산 적이 있는 S면의 개울로 달려갔다. 일요일은 수영장을 닫으니 뭔가 허전한 느낌이라 마지막 오픈 워터를 생각했다.  태백으로 가는 전용도로가 생긴 이후 옛길은 차가 끊겼다. 펜션이 차례로 들어섰지만 여름 한철 장사고 겨울엔 산이 높아 볕이 짧게 지나가 추운 곳이다. 잠수교 위에 차를 세우고 물에 들어갔다. 다리 밑 깊은 물에 들어가니 물이 차다. 다시 나와 잠수복으로 갈아입으니 냉기가 가신다. 스노클 안경을 쓰고 물바닥에 들어가니 꺽지, 낙동강 수계에만 사는 수수미꾸리, 갈겨니들의 천국이었다. 마치 민물고기 수조에 들어선 느낌이었다. 찬물에서 노는 물고기들은 갑자기 커다란 물체의 출현에 어리둥절 곁을 맴돌며 엿살피는 눈치다. 바다와 민물에서 물속을 구경하는 건 물질하는 자의 즐거움이다.


굵은 다슬기만 골라 잡으며 한 시간여 놀았다. 남자 둘이 위에서 아래로 내려가며 다슬기를 잡는다. 가끔 지나가는 차가 물을 들여다보고 갔다. 잠수복은 거제 섬에서 한 번 입고 두 번째다. 이 정도면 시월초 바다에서 조개를 잡을 수 있겠다. 잠수복은 wet suit라 물이 침투하지만 들어온 물이 체온과 덥혀지기 때문에 체온을 유지한다. 어쩌다 두 벌의 잠수복으로 바다를 드나들었다. 양양 장에서 산 수중칼은 지금도 예리함을 자랑한다. 짐이라곤 몇 권의 책, 수영 장비와 그림 도구가 전부다. 시간이 더 지나면 이것들도 하나둘 사라지겠지.


집에 돌아와 다슬기를 해감하고 데삶았다. 클립으로 속살을 파냈다. 까놓은 양이 한 공기나 됐다. 우거지 넣고 된장 풀어 끓인 다슬기 된장국은 별미다. 시골에선 철마다 주변의 소소한 것들로 입맛을 돋운다. 살아 즐기는 소중한 것들이 오래도록 곁에 남을 수 있도록 무얼 해야 할까. 갑자기 우울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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