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생산성
“할매, 웃어라. 웃어라 웃어라 얼른!“
막내 손녀의 너스레에는 10번이면 11번 웃어주던 우리 영순할매.
할머니의 영정 사진은 내가 찍어드린 사진으로 제작했다. 사진에는 감정이 담긴다. 그리고 오래 기억된다. 그 사진을 보면 그때의 감정, 온도, 나눴던 대화가 떠오른다. 그래서 나는 사진을 좋아한다. 할머니의 영정 사진이 된 5월 어느 카페에서 찍은 사진도 그렇다.
할머니의 장례식에서 내가 찍은 할머니의 사진들로 만든 영상을 하얀 벽에 빔을 쏘아서 재생했다. 조문객들은 90대인 할머니의 최근 사진이 이렇게까지나 많을 수 있느냐며 놀랐고, 울었고, 웃었다. 그 놀라움은 할머니를 떠올릴 때마다 미소 지을 수 있는 삶의 원동력이 되었다. 그날은 할머니의 육신과 함께 살아 숨 쉬는 마지막 날이었으니까. 나에게서 가장 소중한 할머니의 마지막을 더욱 의미 있게 배웅하고 싶었다. 값으로 나타낼 수 없지만 그보다도 더 값지게. 그리고 그 슬프고도 아름다운 시간을 가족들과 따듯하게 맞이하고 싶었다. 나의 의도처럼 우리는 그 영상을 보고 울고, 웃고, 각자의 생에서 오뚝이 같았던 할머니를 마음으로 어루만졌다. 하늘에서 할머니가 보시고 뿌듯해하셨을까? 아마도 함박웃음을 지으셨을 것 같다. 또 눈물도 보이셨겠지.
할머니를 보내드리기 위해 수년간 모아둔 클라우드를 한 장 한 장 넘겼다. 할머니의 웃는 사진, 언니오빠들과 함께 있는 사진, 여름휴가로 떠난 펜션에서 노래 부르던 사진과 영상, 그리고 우리는 사진으로만 볼 수 있었던 할머니의 젊은 날까지. 모으고 모아 우리의 시간들을 하나의 영상으로 만들었다. 40분가량의 영상을 만들고 혹시나 매끄럽지 않은 부분은 없을까 1초부터 다시 재생하고, 다시 보고, 또다시 봤다. 어스름한 새벽이 지나고 할머니를 보내드리기 위한 시간이 다가왔다. 잠이 오지 않았다. 잠을 잘 수가 없었다. 할머니의 임종 전 영상을 완성해야 했고, 할머니와의 마지막 인사에는 어떤 옷을 입으면 좋을지 고민했다. 아무렴 화사한 색상의 옷이 좋을 것 같아서 연분홍색의 셔츠를 입었다. 얼굴에는 무엇도 바르지 않았다. 어차피 눈물로 다 지워질 테니까. ’가슴이 사무친다‘라는 말의 뜻을 실감할 수 있는 슬픔이었지만 할머니의 긴 여정의 편안한 시작을 위해 담담하게 받아들이려 애써 마음을 다잡았다.
수액에 퉁퉁 부은 손을 잡고 내가 가진 온 마음을 다해 고맙다고, 사랑한다고 귓가에 나지막이 이야기했다. 그리고 나는 기도한다. 내가 할머니에게 들려준 마지막 단어들이 할머니를 조금이나마 편안함으로 인도하였기를. 숨이 멎어도 청각은 4시간 동안 지속된다고 한다. 내가 알고 있는, 소리 내어 말할 수 있는 예쁜 단어들은 모두 들려드리고 싶었다. 한 없이 부족하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