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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주의 숲 Jul 12. 2017

영화 <Flipped>

- 세상의 모든 '겁쟁이'에게

   


  한 때 나의 매일에 깊숙이 자리하던 영화, 플립이 개봉했다. 기숙사 고등학교에 재학하던 시절, 친구가 엄청 재밌다며 파일이 담긴 pmp를 건네주었다. 브라이스 로스키의 "dazzling eyes"에 빠져 한동안 헤어나오지 못했었다. 어찌나 좋아했는지 몇 번을 돌려보고, 원작인 원서도 사 읽고, 'perpetual motion'이 무엇인지 검색도 했었다.


   내게 중요했던 많은 것들이 그러하듯, 영화 플립도 잊혀졌었다. 그러나 영화 플립은 내게만 소중하고 내게만 중요했던 것이 아니었나보다. 이렇게 시간이 흘러서 극장에서 개봉을 다 하고...!


   롯데시네마에서 개봉을 한다는 것을 듣자마자 개봉일 당일로 예매를 했다. 브라이스와 줄리를 처음 만났던 해로부터 여러 해가 지났고, 다시 그 아이들을 만난다니 왠지 모르게 옛 친구를 만나는 것 만큼 떨렸다.

  

  나 혼자만 나이를 먹은 채, 그 아이들은 스크린 속에서 여전히 생생하고 또렷했다. 줄리는 여전히 당차고 멋졌으며, 브라이스는 여전히 그윽한 눈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열일곱의 내가 보지 못 했던 것을 이제서야 발견했다. <플립>은 단순히 어린 소녀와 소년의 순수한 사랑 이야기가 아니었다.


  브라이스의 아빠, 스티븐은 굉장히 고약한 사람이다. 그의 비아냥거리는 말투는 사람을 가장 아프게 찌르기 위해 고안된 장치같다.

  줄리의 아빠, 리차드는 굉장히 사려깊은 사람이다. 딸이 가장 소중히 생각하던 플라타너스 나무가 베어지자 그 모습을 풍경화로 그려준다.

   브라이스의 아빠는 줄리의 가족을 극도로 싫어하고, 브라이스는 왜 아빠가 그들을 그렇게 싫어하는지 딱히 궁금해 하지 않는다.


   그러다 브라이스는 할아버지와 산책을 하고, 세상에서 가장 멋진 문장을 만나게 된다.


" 어떤 사람은 평범한 사람을 만나고, 어떤 사람은 광택이 나는 사람을 만나고, 어떤 사람은 빛나는 사람을 만나지. 하지만 누구나 일생에 한 번 무지개같이 변하는 사람을 만난단다. 그런 사람을 만나면, 더 바랄 게 없지. "


  브라이스는 줄리야말로 무지개같이 변하는, 일생에 한 번 오는 사람임을 깨닫고(flipped) 달라지기 시작한다.


  그러나 나는 할아버지의 저 문장이 꼭 사람만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는 걸, 스티븐을 보며 깨달았다.

스티븐은 밴드에서 색소폰을 연주했다. 훌륭한 아티스트가 되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데모 테이프 하나를 만드는 데도 너무 큰 비용이 들었고, 그는 포기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대신 그는 부인과 자식, 안정적인 가정과 깨끗한 정원을 가졌다, 줄리의 표현을 빌리자면 '어디 한 군데가 썩어가면서'.


   누구나 인생에 한 번, 무지개같이 변하는 사람을, 사랑을, 꿈을 만난다. 그 사람은, 사랑은, 꿈은, 너무나도 가치있기에 얻기 위해서는 대가가 필요하다. 용기내지 않으면 (flipped되지 않으면) 그것은 사라져버린다.


   리차드는 형편없는 정원과 초라한 집 밖에 갖지 못했다. 대신 그는 사랑하는 동생 다니엘을 지켰고, 자신이 원하는 그림을 그리며, 그의 딸 줄리는 아빠와 있는 시간을 사랑한다.


   브라이스는 겁쟁이였던 아빠를 생각하며 결심한다. 자신은 겁쟁이가 되지 않겠노라고. 마을 전체가 비웃고, 가장 친한 친구인 가렛이 침을 뱉어도 인생에 단 한 번 뿐일 사람을 위해 나무를 심는다.


   어렸을 때 만났던 <플립>은 단순한 첫 사랑 이야기였다. 하지만 오늘 만난 <플립>은 세상의 모든 겁쟁이에게 바치는 노래같았다.

   인생에 단 한 번 뿐인. 무지개같은. 그 사람을, 사랑을, 꿈을, 놓치지말라고. 온 힘을 다해 용기를 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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