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히 생생한 도시
"유서깊은" "역사있는"
프라하, 사실 한 도시로 한정하기보다 대체로 유럽의 거리를 걷다보면 저 단어가 느껴진다. 역사란 무엇일까. 역사학도의 답이라고 하기엔 형편없지만 나에겐 역사란 축적된 숨결이다. 커다란 흐름, 현실과 유리되어 객관적으로 바라보아야 할 대상이기보다 나에게 역사는 생생한 사람들이고, 순간들이다. 나와 같은 거리를 걸으며 울고 웃었을 그들이 역사다. 역사학도로선 영 꽝인 생각이지만 어쩔 수가 없다. 태어나고 살아가고 죽어갔을 많은 숨결들이 공간 위에 축적되는 것, 그것이 나에게는 역사다.
루강은 놀라울 정도로 매력적인 도시였다. 붉은 벽돌과 석양의 조화, 길을 잃을 것 같은 골목길들과 까만 밤의 조화가 연속해서 말을 잃게 했다. 루강의 아름다움은 그림같은 아름다움과는 다른 것이었다. 사진 속의 완벽한 풍경같기에 아름답다기보다는 너무 생생해서 아름다웠다.
그 생생함의 비결은 역사에서 나온 것이었다. 그 수많은 숨결들로부터.
청대에 번영한 무역도시였다는 루강에는 300여 년 정도의 시간이 쌓여있었다. 200여 년 전에 심어진 나무 두 그루가 여전히 서로를 바라보고 있고, 일제가 세웠다는 건물은 여전히 건재하고, 2차 세계대전 때 미군이 쐈다는 총알자국은 여전히 지워지지 않았다. 나의 삶이, 오늘 루강을 방문한 나의 하루가 지나치게 우스워질 정도로 긴 시간이 그 도시 위에 쌓여있었다.
그리고 무수한 숨결들 위로 오늘의 숨결이 쌓여가고 있었다. 역사라는 이름으로, 그림 속 풍경으로 박제되어 이 도시가 멈추지 않을 수 있도록 오늘의 사람들도 열심히 숨결을 불어넣고 있었다.
그렇게 피고 지는 인간의 짧은 삶이 모여 영원을 만들고 있었다. 영원한 생생함이 루강이었다.
루강을 보며 역사를 생각했다. 그리고 내가 만들고 있는, 우리가 만들고 있는 역사를 생각했다. 우리가 공간 위에 쌓는 숨결이 보다 따스하기를 바랐다. 오늘 만난 루강의 숨결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