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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주의 숲 Oct 09. 2017

<13> 대만 타이중 여행 - 일월담, 르위에탄

日月潭, 비로소 아는 것들


르위에탄, 달과 해의 모습을 닮은 호수

하늘의 쪽빛이 번져간다. 구름의 옅은 하얀색이 되었다가, 짙은 청록색의 산이 되었다가, 더 탁한 색의 육지가 되었다가, 다시금 맑은 쪽빛의 호수가, 그리고 심연의 쪽빛이 된다.

육지 한복판에 생긴 호수는 섬을 만든다. 우리는 서로의 육지를 자유롭게 오가다 갑자기 외딴 섬이 되어 서로를 바라본다. 꼭 붙어 있을 때에는 보지 못했던 것들을 보기 시작한다.

국경절 연휴에 방문한 르위에탄은 가족단위의 관광객들로 넘쳐났다. 혼자서 유람선 정류장에 서서, 산책로를 걸으며, 호수를 바라보며, 계단을 오르며 그들을 바라봤다. 자식을 보살피는 부모의 손길이 보인다. 그 나이 때의 내가 그랬듯 아이는 아무것도 모른다. 연휴의 끝 무렵에 어린 자식에게 호수를 보여주기 위해 집을 나선 부모의 마음을, 눈이 마주치면 지어보이는 미소를, 어떤 상황에서건 안심시키는 목소리를 알지 못한다.
나는 그들을 바라보며 어린 나를, 그리고 젊었을 엄마와 아빠, 이모와 삼촌을 떠올린다. 그들도 나에게 저런 표정으로 저렇게 세상을 보여주었을 것이다. 그 때는 알 수 없던 것들을 지금은 알 수 있다. 사실 지금에서야 알 수 있다.

호수의 바람은 너그럽다. 바다의 바람보다는 덜 매섭게, 그러나 충분히 시원하게 온다. 호수의 쪽빛을 눈에 담는 사람들을 보며 내 사람들을 떠올린다. 붙어 있을 땐 보지 못했던 것들을 곱씹는다.
그들의 마음이 얼마나 소중하고 놀라운 것인지, 나는 얼마나 감사해야하는지 생각한다.

중요한 깨달음은, 왜 비로소, 이제서야, 간신히, 겨우 오는지 모르겠다. 지금 알고 있는 것들, 지금 감사해하는 것들을 그 때 충분히 알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부디 앞으로는 중요한 마음들을 뒤늦게 깨닫지 않았으면 한다. 어쩌면 지금도 그러고 있을지 모르겠지만.

르위에탄, 육지 한 가운데에 있는 커다란 호수. 육지와 육지 사이에 간격을 만들어버리는 쪽빛 물결을 보며 나도 나와 멀어진 세상과 사람들을 떠올린다. 그들의 마음을 이제야 완전히 실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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