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aipei Golden Horse Film Festival
올해로 54회를 맞는 전통과 권위의 영화제 대북금마영전에 다녀왔다. Taipei Golden Horse Award, 다양한 나라를 배경으로 한 다양한 주제의 작품이 앞다투어 상영되고 있는 바로 지금 타이페이에 살고 있다는 것은 정말 행운이다.
내가 선택한 작품은 프랑스 감독 질 부르도스의 <Endangered Species>. 올해 베니스 영화제 경쟁작이라는 점, 그리고 가족에 관해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관람하게 되었다.
영화는 세 가지 이야기가 서로 얽히며 흘러간다. 세 가지 이야기는 각기 다른 부모 - 자식 관계를 그리고 있다. 가장 첫 번째로 등장하고 주요하게 다뤄지는 인물은 부모가 반대하는 사람과 결혼한 조세핀이다. 조세핀은 부모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토마스와 결혼하지만, 결국 가정폭력에 시달리고 불행한 가정생활을 맞게 된다. 딸은 부모에게 의지할 수 없고, 부모는 딸을 도울 수 없다는 무력감에 시달린다. 결국 조세핀의 아버지는 토마스를 살해하는 극단적인 방법을 선택한다.
두 번째는 남편의 지속적인 불륜으로 정신병원에 입원까지 하게 된 안토니의 엄마와 안토니에 관한 내용이다. 그녀는 지독한 결혼 생활 끝 유일하게 남은 것은 너라며 안토니에게 병적으로 의존한다. 때때로 남편과 아들 안토니를 헷갈려하며 남편에게 내야 할 화를 아들에게 내곤 한다. 그런 부모 밑에서 의지할 구석 하나 없는 안토니는 대화 상대를 찾지만 실패하고, 결국 그는 보살펴야 하는 어머니 곁을 떠나지 못한다.
세 번째는 이혼한 부부의 딸 멜라니에 관한 이야기다. 멜라니는 63세의 교수와 사랑에 빠지고 임신하게 된다. 임신 8개월이 되어서야 아빠 빈센트에게 곧 결혼할 예정이라며 전화를 하고, 빈센트는 혼란에 빠진다.
이렇게 다소 극단적인 세 가지 이야기를 통해 영화는 부모와 자식의 관계에 대해서 끊임없이 이야기한다.
세상의 모든 인간관계가 복잡하고, 어렵고, 경이롭고, 흥미롭지만 부모 - 자식 관계만큼 그러한 것은 없다. 자식이 이 세상에 태어나 처음 맺는 관계인 점에서 그러하다. 선택이 아닌 온전한 우연의 결과로 맺어졌지만, 그토록 필연적이라는 점에서 그러하다. 부모는 한없이 어리고 서툰 때에 부모가 될 수밖에 없지만, 자식에게 부모란 가장 절대적이고 가장 위대한 존재가 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부모가 되는 일은 연습이나 체험판 없이 처음 겪어야 하는 일이지만, 시행착오 없이 완벽해야 한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부모는 부모이기 이전에 인간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식에게는 언제나 부모여야 한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부모는 부모가 된다. 부모가 되는 것은 약자가 되기로 하는 것이다. 세상 무엇보다 사랑해주었음에도 그 사랑의 방식이 옳지 않았음을 인정하기로 하는 것이다. 자식이 나를 사랑하건 말건, 나는 나 자신보다 자식을 사랑하기로 하는 것이다. 자식의 상처와 잘못, 고통과 슬픔이 나로부터 나오진 않았을까 걱정하기로 하는 것이다. 더 해주지 못했고, 나약한 점만 물려주었다는 자격지심에 끝없이 시달리기로 하는 것이다. 내 피가 섞였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없다는 것을, 그 아이를 창조했지만 그 아이를 구원할 신은 내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온몸으로 실감하는 것이다.
이렇게 약자가 되기로 한 부모는 자식의 악의없는 한 마디에 KO패를 당하곤 한다.
물론 약자가 되기로 한, 되어버린, 혹은 될 수 밖에 없는 부모 역시 실수를 한다.
이따금 부모는 자식이 아주 어린 아이라는 것을 잊는다. 어린 아이에게 이해를 구하고, 용서를 구하고, 때때로 어깨까지 빌려주기를 원한다. 자식이 아직 <부모>가 필요한 아이라는 것을 그렇게 잊는다.
이따금 부모는 자신의 세상이 아이라고 말한다. 누군가의 전부가 되는 것이 어린 아이에게는 감당하기 힘든 일이라는 것을 알지 못한다.
이따금 부모는 사랑을 알지 못한다. 사랑이 아닌 것을 주면서 사랑이라고 착각한다. 이 아이에게 사랑을 가르쳐줄 유일한 교사는 부모라는 그 중요한 책임감을 알지 못한다.
그러나 부모의 실수는 자식의 세계를 뒤바꾸고, 영원히 흔적을 남긴다는 점에서 치명적이다.
부모는 어린 자식의 세계 속에서 지나치게 강함으로서 , 동시에 커버린 자식의 세계 속에서 지나치게 약해짐으로서 그렇게 또 약자가 된다.
강자이고 싶었던 적이 없지만 이미 강자가 되어버린 자식과 영원한 약자인 부모의 관계는 그래서 어렵다.
강자인 자식에게도, 약자인 부모에게도 어렵다.
영화는 이렇게나 특수한 부모 - 자식을 생생히 목도하게 한다. 목격자가 된 나는 나의 부모를 떠올린다. 그러면서 울고, 웃고, 화나고, 이해하고, 용서하고, 무거워진다. 아주 좋은 영화였다. 하지만 동시에 역시 부모가 되는 것은 포기하는 게 좋겠어,라고 마음먹게 하는 다소 나쁜 영화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