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가화원 (林家花園)
오랜만에 날이 갰다. 빗방울과 뿌연 하늘에 웅크렸던 도시가 기지개를 켜는 고양이처럼 살아났다. 상점과 사람들, 모든 엉켜있던 것이 풀리고 있었다. 햇살이 이토록 상냥한 날에는 방을 나서야 한다. 어디로 갈지 머리를 굴리다 마음이 서자 버스에 오른다. 이런 날에는 소풍을 가고 싶어지기 마련이다. 햇살과 초록빛을 맘껏 누릴 수 있는 곳. 날 좋은 날 방문하려고 아껴놓았던 곳에 가기로 했다.
임가화원. 타이페이에서 강을 건너면 나오는 신베이시에 위치한 정원이다. 1893년 청나라 푸진 성에서 넘어온 임씨 집안 사람들은 가옥과 정원을 지었고, 지금은 국가 고적이 되었다. 중국 미학의 정석대로 지은 이 가옥과 정원이 너무 아름다워서 다시 푸진성으로 돌아가게 되자 비슷한 정원을 지었다고도 한다.
얼마나 아름답길래 또 똑같은 정원을 지었을까. 궁금증은 정원을 보자마자 금새 풀렸다. 그리워할 수 밖에 없는, 햇살도 사람도 바람도 오래 머물다 가고 싶어하는 그런 곳이었다.
중국 어딘가에 꼭 닮은 모습의 형제를 가졌을 정원을 둘러보면서 그리움에 대해 생각했다.
<그리움>
안 그래도 낯선 도시에서 무수히 많은 것들을 그리워하고 있는 이방인으로서 요즘 자주 생각하는 주제였다.
그리움의 대상이 된다는 것은, 대체 불가능한 대상이 된다는 것이다. 당신이 없는 이 곳에 당신과 닮은 것, 당신과 비슷한 것, 당신을 떠오르게 하는 것, 당신 같은 많은 것이 있지만 당신이 있는 것은 아니기에 나는 당신을 그리워하니까. 유일하고 고유하고 당신 외에 당신을 대신할 수 있는 것은 없는 존재가 되는 것이다. 그리워한다는 것은 어떤 것이 부재할 때 그 어떤 것 외에는 그 자리를 메울 수 없음을 실감하는 것이다.
그리움의 영역은 온 몸에 분포해있다. 오늘 하루도 버거웠던 때에 위로가 되었던 목소리, 함께 맥주를 마시며 맞던 바람, 메리크리스마스. 하고 건넸던 꽃의 향기. 그렇게 온 몸에 분포한다. 그리움은 단순한 생각이 아니라 온 몸의 기억 작용에 가깝다.
그렇기에 그리움은 슬프지만 멋지다. 힘겹지만 근사하다.
어떤 이를, 어떤 도시를, 어떤 날들을, 어떤 순간을 그리워한다는 것은 그만큼 내게 멋진 기억들이 많다는 것이니까.
안타깝게도 나는 내가 그리워하는 도시를 본딴 장소를 이곳에 만들지도, 내가 그리워하는 이들을 이곳에 데려올 수도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들을 담뿍 그리워하고, 무척 그립다고 말하는 것이 전부다. 그리워할 수 있다는 것은 특권이니까, 특권같은 그리움을 맘껏 누려야겠다. 그리고 당신이 굉장히 그립다고 지금 전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