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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대만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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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주의 숲 Dec 02. 2017

<25> 너의 의미

당신이 머물렀다 간 타이페이 

  한 차례 손님이 왔다 돌아갔다. 대만 생활을 하며 많은 것을 깨닫고 느꼈지만 그 중 가장 큰 것은 사람에 관한 것이다. 타지생활은 생각보다 고되지 않다. 지구촌 어디나 사람 사는 모습은 비슷하기 마련이라 내 동네가 생기고 난 후의 일상은 고향의 그것과 별다르지 않다. 반복되는 하루들은 단순한 매뉴얼들을 만들어주고 평화로운 규칙 안에 살다 보면 정말로 생활 자체는 어렵지 않다. 입맛도 까다롭지 않은데다 비슷한 문화권의 나라인 덕에 더욱 힘들지가 않다. 


  가장 힘든 것은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나의 사람들, 나의 <연결>된 사람들이 없다는 것이다. 

연결된 사람. 연결된 관계. 사람과 사람의 관계는 단순히 만남으로서만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만남 그 후의 진정한 연결이 있어야만 한다. 연결된 사람과의 시간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다. 


  많은 설명 없이 몸짓 하나로도 나의 마음을 헤아리는 사람. 우리 사이에 대화가 있을 때와 침묵이 있을 때의 공기가 일정한 사람. 이따금 나보다 나를 더 잘 알아주는 사람. 진정으로 이해받고 있다고 느끼게 해주는 사람. 함께 보는 세상이 혼자 보았을 때 보다 더 아름다운, 그런 사람. 나의 삶에 의미가 된 사람, 내 삶을 의미있게 만들어주는 사람, 세상에 의미를 불어넣어주는 사람. 그런 사람들이 <연결>된 사람. 


  바쁜 일상이 지나간 자리에 찾아오는 여유를 함께 누려주는 연결된 사람들, 그들과 나누는 대화, 그들과 나누는 시간들이 없다는 것은 타지생활에서 가장 고된 점이다. 그들이 없는 일상은 고독하고 무료하고 가치를 잃는다. 


  그리고 지난 주. 이런 시들시들한 일상에 생기를 불어 넣어준 손님이 찾아왔다. 이 손님으로 말할 것 같으면 나에게 <연결>되어있다는 느낌에 대해 처음 알려준 사람이다. 이 친구를 만나기 전에는 사람이 다른 사람의 삶을 바꿀 수 있다거나, 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거나 하는 생각을 도통 하지 못했다. 인간은 불완전하고 끊임없이 변하는데 어떻게 그런 존재가 삶을 바꿀 수 있나 싶었다.

 

  하지만 이 친구와 함께 캠퍼스를 거닐고, 서로의 청춘을 누비고, 스무살의 나날들을 함께 하며 깨달았다. 인간은 언제나 변한다. 그 변하는 모습, 자라나는 모습, 때로는 머뭇거리고 후퇴하는 모습, 멋지게 나아가는 모습, 더 완고해진 모습, 더 너그러워진 모습, 그 모든 변화를 함께 나누며 서로의 삶을 바꾸는 거구나! 

  불완전한 것들, 내 세계에 찾아오는 균열, 하루의 끝에 뻥 뚫린 공허한 구멍, 모자란 어딘가, 그 모든 곳을 서로 채워나가며 삶을 바꾸는 거구나! 

 

  그렇게 내 서울을 의미있게 만들어주었던 친구는 타이페이에도 의미를 불어넣어주었다. 역시 공간을 의미있게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은 연결된 이! 공간 위로 우리의 대화가 쌓이고, 나 혼자 보았을 땐 보지 못했던 것들을 보게 되는 그런 순간들을 만났다. 타이페이가 한껏 다채로워졌다. 분명 어제와 같은 크기일 이 도시가 더 넓어진 기분을 느낀 것이다.  


  석양, 밤 하늘, 간판과 커피, 달과 나무, 그 모든 것이 의미가 되어 다가왔다, 함께 해준 친구 덕에. 


  


  그렇게 대만 곳곳에 의미를 불어넣어주고 나의 손님은 서울로 돌아갔다. 그녀가 머물렀다 간 덕에 이 곳은 더 사랑스러워졌다, 그녀처럼. 하지만 덕분에 나의 그리움은 어딘가 배가 되었다. 열심히 청소를 하고, 빨래를 하며, 그녀가 머물던 동안 미루었던 일상의 소일거리들을 해가며 그리움을 극복하고 있지만 꽤 힘들군! 

  벌써부터 그녀의 서울이 궁금하다, 또 의미가 되어갈 그녀의 겨울들이. 


그녀 덕에 멀리 있어도 여전히 연결된 모든 이들을 궁금해하고 그리워하며, 그들의 의미를 곱씹어 본다. 다시 얼른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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