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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대만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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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주의 숲 Nov 20. 2017

<24> 겨울

  그리운 이에게서 연락이 왔다. 이 곳은 첫눈이 오고 있어! 


겨울이었다. 11월의 중순, 아니 끝자락이 되어가도록 실감하지 못 하고 있었다. 스타벅스 토피넛 라떼의 계절이 왔다는 것을. 요 며칠 계속 비가 내리는 탓에 타이페이 역시 제법 쌀쌀해졌다. 그러나 여전히 습한 공기와 다소 낮지 않은 기온, 계절을 가리지 않고 우뚝 서 있는 야자수와 여름날 해변같은 요란한 야시장 골목들은 겨울이라기엔 어색하다.


나는 겨울이 좋다. 반려동물을 키우게 된다면 이름을 겨울이라고 짓고 싶을 정도로 겨울이 좋다. 지금은 이름과 비슷한 Sue를 사용하고 있긴 하지만 정식으로 영어 이름이 필요한 때가 생긴다면 Winter라고 짓고 싶을 정도로 겨울이 좋다. 


한국이 아닌 곳에서 겨울을 나는 것은 타이페이가 처음이라 이곳의 겨울은 어떤 모습일지 궁금하고 기대가 된다. 어쩌면 이미 덜컥 찾아왔는데 그동안 보고 자란 겨울이 아닌 탓에 미처 발견하지 못한 것일 수도 있겠다. 


  내가 보고 자란 겨울은 핑계의 계절이다. 올 한 해도 열심히, 무사히 살아낸 자기 자신과 우리 모두에게 너그러워질 수 있는 핑계. 봄과 여름과 가을에는 낯간지러워서 전하지 못했던 말들도 크리스마스니까, 연말이니까, 새해니까, 라는 핑계를 대며 전할 수 있는 계절이다. 매서운 바람을 핑계로 더 가까이 다가가도 괜찮은 계절이고, 첫눈을 핑계로 보고싶은 이에게 그리움을 전달해도 괜찮은 계절이다. 


  내가 보고 자란 겨울은 따뜻함의 계절이다. 따뜻한 토피넛 라떼, 군고구마, 군밤, 어묵 국물. 추위에 맞서 온갖 따뜻함을 찾게 되는 계절이다. 그리고 그 따뜻함을 나누는 계절이기도 하다. 더운 세상은 그 누구도 떠오르게 하지 않지만 <추운> 세상은 많은 이들을 떠오르게 한다. 소외된 이들, 어려운 이들, 아픈 이들이 존재하고 있음을 자각하게 하고 따뜻함을 나누게 한다. 구세군 종소리와 연탄의 빛깔에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내가 보고 자란 겨울은 해소의 계절이다. 겨울에는 하늘마저 묵혔던 감정을 꺼낸다. 한 해 동안 열심히 앓아왔던 마음들, 참아왔던 설움들, 감춰왔던 눈물들을 한 번에 펑펑 쏟아낸다. 하늘이 쏟아내는 눈을 맞으며 우리 역시 한 해가 끝나감을 혹은 다시 시작되고 있음을 깨닫는다. 지난 계절들을 돌아보며 우리는 자신을 칭찬하고 용서하고 위로하고 다독인다. 뭉쳤던 설움을 풀고 다시 한 번 희망을 믿게 된다. 


  첫 눈의 계절, 크리스마스의 계절, 편지와 카드와 엽서의 계절, 연말과 연초의 계절, 끝과 시작의 계절, 토피넛 라떼의 계절, 다이어리의 계절, 목도리와 장갑의 계절. 

너그럽지만 나태해지지 않는 계절, 매서운 추위에 맞서 따뜻한 사람들과 마음들을 더 찾게 되는 계절, 쉽게 안락해질 수 있는 계절, 쉽게 포근해질 수 있는 계절.


그런 계절이 나의 겨울이다. 


타이페이의 계절은 보고 자란 겨울과 어떤 점이 같고 또 다를까. 이곳에서 겨울을 보내고나도 여전히 겨울을 사랑할 수 있기를, 아니 더 사랑하게 될 수 있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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