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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woHearted Aug 04. 2020

수업 시간에 먹는 간식


코로나로 학교가 문을 닫기 전까지, 일주일에 한두 번씩 옆 동네의 중학교 수학 교실을 찾아갔다. 연구 중인 프로젝트의 필드 테스트로서, 비디오 두 대로 학생들의 그룹 활동을 촬영하고, 스크린 캐스트로 개개인 학생의 컴퓨터 스크린을 녹화해서 연구에 데이터로 사용하고 있다. 물론 연구에 참여하기를 희망하고 학부모님의 동의를 받은 학생들만 촬영한다. 출퇴근 시간 정체를 피해서 일찍 집을 나서는 편이 늦어서 동동대는 것보다는 훨씬 낫기에 커피 한 잔 제대로 못 마시고 출발해야 하는 날도 있지만, 그럼에도 수업의 현장을 관찰하는 일은 이후에 비디오로 확인하는 것과는 사뭇 다른 생생함이 매력적이라서, 설레는 마음으로 달려가곤 했다.


수업 관찰은 보통 2교시에서 4교시까지 세 시간 동안 하게 된다. 미국의 수업은 학생들이 과목 교사의 교실을 찾아다니기 때문에 교사는 같은 교실에서 같은 내용으로 세 번의 수업을 하고, 쉬는 시간마다 세 번의 다른 학생들이 들어와 정해진 자리에 앉는다. 교실은 여섯 개의 그룹 테이블이 있고, 수업 시간은 대부분 학생들의 그룹 활동으로 채워진다.


어느 날 3교시, 내가 앉아있던 테이블에서 가장 가까운 그룹의 한 아이가 가방에서 과자를 꺼냈다. 집에서 덜어온 것인지, 손바닥만 한 지퍼락 비닐봉지에 도리토스 같은 칩이 담겨 있었다. 나는 순간 움찔해서 교사를 쳐다보았다. 그 소년은 눈치를 보지 않고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칩을 하나씩 천천히 입에 넣고 빠스락 빠스락 먹었다. 교사는 특별히 그 소년에게, 아니 그 소년의 과자에게 시선을 주지 않았다.


나는 한참 동안 그 신기한 광경을 관찰했다. 학생들이 나의 시선에 부담을 가지게 할 수는 없었으니 대놓고 쳐다보지는 못하고 교실을 둘러보는 사이사이에 힐끔힐끔 그 그룹의 아이들을 관찰했다. 과자를 꺼내 놓은 소년은 컴퓨터로 과제를 해결하면서 틈틈이 과자를 집어 먹었다. 다른 아이들은 교사와 마찬가지로, 그 소년도 그 소년의 과자도 쳐다보지 않았다. 마치 그 소년이 과자를 먹고 있는 것이 보이지 않는 것처럼 그룹 토론을 했고, 문제를 풀었다. 나는 지금 무슨 장면을 보고 있는 건지 몽롱해졌다.






오래전, 나의 수학 교실이 떠올랐다. 그때 많은 선생님들이 그러셨듯 나도 종종 사탕이나 초코파이 같은 작은 간식들을 챙겨서 교실에 들어갔다. 나의 규칙은 수학 문제의 정답을 맞힌 학생들에게 간식을 주는 것이 아니라 문제를 해결하는 동안 서로 협동을 잘하는 그룹에게 주는 것이었기에, 결국 수학 시간이 끝날 때에는 모든 그룹의 학생들이 간식을 먹을 수 있었다. 열심히 수학 문제를 풀어서 틀리면 그것만으로도 기분이 별로인데, 그것 때문에 사탕까지 못 먹으면 얼마나 억울하겠는가 싶어서였다.


그때 학교는, 선생님들이 주시는 간식 이외에 다른 먹거리를 교실에서 먹지 못하게 했다. 교실 바닥이 지저분해진다는 이유와 다른 학생들도 먹고 싶어 진다는 이유들이 있었던 것 같다. 아이들은 늘 배가 고팠다. 반면 교무실에는 비상식량 캐비닛이 있었다. 같은 학년의 선생님들이 회비를 거두어 총무가 이런저런 간식을 사다가 차곡차곡 쌓아둔 캐비닛은, 매일 2교시가 끝나는 쉬는 시간이면 선생님들의 사랑을 독차지했다. 나 역시 아침밥을 먹고 출근했어도 2교시 수업만 지나면 허기가 지고, 당 보충이 필요하다면서 평소에는 먹지도 않던 과자들에 손을 뻗곤 했다. 어른들이 그런데 아이들은 오죽 허기가 졌을까.


어느 날 어떤 수업에서, 기력 없이 멍하게 앉아 있는 학생을 발견했다. 그 학생의 수학 노트 제일 첫 줄, 오늘의 기분을 적는 칸에 "배고프다..."라고 적힌 것이 눈에 띄었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그 학생은 수줍은 미소를 지었다. 나는 조용히 교탁 위에 있던 초코파이 하나를 가져다주었다. 그 순간, 교실은 난리가 났다.


"쌤은 왜 쟤만 초코파이 줘요?!"

"저도 주세요, 저도 배고파요!!"

"와, 쌤 지금 차별하시는 거예요?"

"아, 좋겠다!!!"


어지러웠다. 배고픈 아이에게 건넨 초코파이 하나에 나는 나쁜 선생님이 되어버렸다. 그래서 그 날 그 교실에서 우리는 모두 초코파이 하나씩 손에 들고 수학 문제를 풀었다. 개중에는 당장 배가 고프지 않아서 나중에 먹겠다고 책상 한 귀퉁이에 올려두는 학생들도 있었다. 그러면 옆에 앉은 친구들이 "안 먹을 거면 내가 먹어도 돼?" 하면서 손을 내밀기도 했다. 그때부터 의문이 들었던 것 같다.


왜 교실에서 간식을 먹으면서 공부하면 안 되는 걸까.


학생들은 "그러면 교장선생님한테 혼나요"라고 아이다운 말을 하며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다고 웃어넘겼지만, 나는 그 불편한 의문이 종종 떠올랐다. 교실에서 간식을 먹으면서 공부하면 공부에 방해가 되는 걸까. 그리고 한참의 세월이 흘러, 미국의 어느 교실에서 그 대답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그것은 미국의 교실 문화라기보다, 미국의 사회 문화라고 할 수 있다. 무언가를 마시고 먹는 일은 지극히 개인적인 일이기에, 같은 팀에 있어도 점심시간이 정해져 있지 않다. 각자 자기가 배고프거나 먹고 싶은 시간에, 먹고 싶은 것을 먹고 마신다. 왜 안 먹느냐고 의아해하지도 않고, 같이 먹자고 조르지도 않고, 뭘 그런 걸 먹느냐고 핀잔을 주지도 않는다. 그래서 점심때 만난 지인에게 "아이고, 식사는 하셨어요?"같은 우리의 정겨운 인사를 미국 사람들은 서로에게 하지 않는다. 대학원 수업에서도 오전에는 아침 겸 간식으로, 오후에는 점심 겸 간식으로 각자 저마다의 먹거리를 가방에 챙겨 다니고, 수업 중에 꺼내어 먹는 약간의 부스럭거리는 소음을 모두 묵과하며 존중해준다. 성인들이라서 그렇게 이해해주는 건 줄 알았다. 사실 예민하게 굴면 봉지가 바스락 거리는 소리도, 음식을 씹는 소리도, 거슬릴 수 있으니까. 그런데 중학교 1학년의 교실에서도 같은 문화가 살아 있었다.


어떤 날은 바삭 김 한 봉지를 간식으로 꺼내어 먹는 아이가 있었고, 어떤 날은 샌드위치 반 조각을 꺼내어 먹는 아이가 있었다. 아무도 "한입만"이라고 부탁하지 않았고, 아무도 "맛있겠다"라고 말을 덧붙이지 않았다. 아이들은 적당히 먹을 만큼 먹고 허기가 가시면 남은 과자 봉지를 다시 가방에 집어넣었다.


솔직히 말하면, 부러웠다. 교실에서 간식은 안된다는 규제가 애당초 존재하지 않았다면, 어쩌면 오히려 자연스럽게 각자 자기의 간식거리를 챙겨 다니면서 각자 자기의 배고픔을 달래면서 각자 자기의 배움에 집중할 수도 있었을까, 생각해본다.


그런 교실, 욕심 난다. 배가 고파서 비스킷 하나 꺼내 먹는 것이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그런 교실이었으면 좋겠다. 안 그래도 어려운 수학 문제를 용써가면서 푸는데, 배도 고프면 얼마나 서러운가 말이다.




술 한잔 역시 권하는 사회가 아니라서, 가끔 아쉬울 때가 있다. 누가 한 잔 권해주면 다이어트를 잠시 잊고 마지못한 척 마시고 싶은데, 다들 세상 쿨하다. "넌 뭐 마실래?" 묻지도 않는다. 각자 알아서 마실 것을 주문해야 하니, 내가 다이어트 때문에 맥주를 안 마실 거면 물만 달라고 하면 될 일이다. 그럴 때는 "에이~ 오늘만 한 잔 해~" 말려 주던 한국 친구들이 그립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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