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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woHearted Aug 12. 2020

계산기가 할 수 없는 수학을

중학생에게 수학을 가르치는 것이 직업이던 시절, 가장 많이 들었던 질문은 "그래서, 도대체 수학을 왜 배워야 하죠?" 였던 것 같다. 신기했던 것은, 그 질문을 학생들보다 어른들에게 더 많이 받았다는 것이다.


학생들의 경우는 수학을 배워서 어디다 쓰는지 정말 궁금하고 알고 싶어서라기보다 "오늘 우리 반 축구 졌어요! 슬퍼요! 수업하지 말고 놀아요~"와 같이 어떤 핑곗거리를 가져다가 수업 시간을 휴식 시간으로 만들고 싶을 때, 그 질문을 꺼냈다. 그래서 학생들은 내가 "수학, 왜 해야 하는지 모르겠어서 하기 싫으면, 안 해도 괜찮은데..."라고 장난처럼 대답하면 오히려 "에이, 저는 수포자 안될 건데요"라며 자세를 바로 잡는다. 이미 그들의 삶에 수학은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어른들은 직설적으로 표현했다, 살짝 씁쓸한 미소를 지으면서. 예를 들면, 소개팅을 나갔는데 내가 중학교 수학 선생님이라고 하면 남자들의 반응은 똑같았다. 문과 이과 관계없이 95%는 "아, 저는 수학 진짜 못했는데 (혹은, 싫어했는데)"라고 말했고, 특히 문과 쪽 남자의 경우는 "솔직히 학교 졸업한 뒤에는 수학을 쓸 일이 없는 것 같아요"라고 했다. 그럴 때면, 소개팅남과의 핑크빛 연애를 상상하는 것보다 일반 성인이 생각하는 수학 (혹은, 수학적 사고)의 비실용성에 대해 속상해하는 것에 마음을 다 써버리곤 했다.


막막했다. 학생들도 어른들도, 아무도 학교에서 역사를 왜 배우냐거나, 과학을 왜 배우냐거나, 영어를 왜 배우냐거나 묻지 않으면서 유독 수학에 대해서는 실용성을 따지는 것이 억울했지만, 그것이 무엇이든 어떤 것의 필요성을 어찌 말로 설득할 수 있을까.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이 경험을 통해 직접 깨달아야 하는 일이기에, 이미 "수학은 사는 데 아무 필요 없어"라는 깊은 믿음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어떤 말로도 설득당하려고 하지 않았다.


물론 대학 수학 내용까지 고등학교에서 다루어야 하는 입시 위주의 우리 교육과정에 불만인 것은 나 역시 마차가지였다. 하지만 사람들은 대체로, 입시에 대한 반대보다 수학 학습 자체에 대한 반대를 표현했다. "수학 다 필요 없고, 돈 계산만 잘하면 돼"라거나, "사칙연산만 할 줄 알면 사는 데 아무 지장 없어"라고 했다. 그래서 "돈 계산을 잘하는 건 어떤 건데?"하고 물으면 "남한테 돈 사기만 안당하면 돼"라고도 했다. 돈 계산이나 사기를 당하지 않을 수 있는 합리적 사고의 밑바탕에 수학적 사고가 있다는 것을 설득시켜 내기가 참 힘들었다. 그래서 그냥 침묵했던 순간도 종종 있었다.


수학을 배우는 목적은 수학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를 수학으로 해결하기 위해서이다. 그 첫 단추는 일에서건 일상생활에서건 어떤 문제에 대하여 그 문제를 수학으로 해결할 수도 있겠다는 것을 감지하는 것이다. 물론, 더욱 근본적으로는 그 문제를 문제로 인식하는 것이 앞서야 한다. 그래서 수학을 배우는 일은 현상에서 문제를 문제로 인식하는 것, 그 문제가 수학적 문제라는 것을 인식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아무리 복잡한  계산도, 스마트 폰과 컴퓨터가  해결해주는 세상이다. 그런 기계와 경쟁하여 빠르고 정확하게 "계산" 해내는 것은  이상 인간의 역할이 아니며, 스마트 폰과 컴퓨터가 계산  없는 영역의 "생각"   있는 인간이 요구되는 시대라고 한다. 그러니까, 구구단을   아는 것보다, 구구단을 언제 어떻게  건지를 아는 것이 필요한 것이다.




구구단을 (혹은 계산기를) 언제 어떻게 쓰는 것인지의 예는 생활 속에서도 종종 마주할 수도 있고, 인식하지 못하고 지나칠 수도 있다. 인식했다면, 이미 수학적 사고를 하고 있는 것이다.


아파트보다 주택이 많은 미국의 교외 지역에는 동네마다 홈디포 Home Depot 같은 대형 자재 마트가 있다. 창고형 매장 안 빼곡히, 셀프 인테리어 및 셀프 시공에 필요한 모든 재료가 구비되어 있어서 미국 여행 중에 한 번쯤 들러 가정집의 웬만한 보수 관리는 직접 하면서 사는 미국 문화의 한 단면을 구경해 보는 것도 좋을, 재미있는 곳이라고 생각한다.


그때 우리는 집안 곳곳의 마룻바닥에 뚫려 있는 냉난방 환풍구의 커버를 새로 사기 위해 동네 홈디포에 들렀다. 우리 집 마룻바닥 색과 비슷한 우드 커버를 겨우 찾아냈으나 재고가 많지 않았다. 일단 남아 있던 다섯 개를 모두 가져오려고 보니 그중 세 개는 포장 비닐이 뜯겨 있었다. 그렇다고 제품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라서 그냥 사기로 했는데, 그 구역 담당 직원이 본인 이름을 알려주면서 계산할 때 비닐이 뜯긴 제품은 50% 할인을 받으라고 했다. 계산대 앞에는 20대로 보이는 젊은 아가씨가 서 있었다.


우리는 아가씨에게 50% 할인에 대해서 설명했다. 미소를 지으며 그 아가씨는 한참 동안 계산대의 컴퓨터를 뭐라고 뭐라고 두드렸다. 마치 공항의 항공사 카운터에 탑승 수속을 할 때, 도무지 알 수 없는 항공사 직원의 두두두두- 타자 치는 소리를 들으며 기다리는 기분과 비슷한 심정으로, 한참 그녀의 계산을 기다렸다. 그녀는 밝은 미소와 상큼한 목소리로 "커버 다섯 개 해서 총액 185.5달러입니다"라고 했다. 그 순간 나도 모르게 "아닌 것 같은데"라는 말이 튀어나왔다. 미리 지불 금액을 계산해 본 것은 아니었지만, 한 개 가격이 35불인 커버 중에 세 개를 할인받으면 아무리 세금을 더한다고 해도 185.5달러는 너무 많은 거라고 생각했다.


그녀는 고개를 갸우뚱했지만, 고객이 원하니 다시 한번 계산대의 컴퓨터를 뭐라고 뭐라고 두드렸다. 우리는 세 개는 반값이라는 것을 재차 강조했다. 얼마간의 정적이 흐른 뒤, 그녀는 심호흡을 크게 하면서 "오케이~ 다시 입력해서 계산했어요. 똑같아요. 총액 185.5달러네요"라고 기계는 거짓을 말하지 않잖아요 하는 미소를 지어 보였다. 3초의 정적이 흘렀다. 나는 그녀의 천진난만한 미소를 보면서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아 멍하게 서 있었고, 옆에 있던 그는 세상이 무너지는 듯한 리액션을 미처 감추지 못하고 뱉어냈다. "아니에요! 그건 이 우주의 원리에 어긋나는 말이에요! Nooooo!! It is not how the universe works!!!!!"


그녀는 무엇이 문제인지 도통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인터폰으로 매니저를 호출하면서 세 번째로 투닥투닥 컴퓨터를 만지작대었고, 옆에서 그는 성실하게 설명했다. 다섯 개 중에 세 개의 가격이 반값인데 어찌 185.5달러가 나올 수가 있느냐고. 그녀는 그의 설명을 한 귀로 흘려들으며 대신 컴퓨터가 그의 말을 알아듣기를 바라는 눈치였다.


한참만에 결국 130달러를 지불하고 매장을 나오면서, 나는 그 충격에서 쉽게 헤어 나오지 못해 비틀거렸다. 수학자가 될 것이 아니라면 돈 계산만 잘하면 된다더니, 저 아가씨 설마 초등학교도 안 다닌 건가. 50달러를 아낀 것보다 "우주의 원리"를 이해하지 못하는 그녀의 천진난만한 미소가 잊히지 않아서, 그와 나는 저녁 내내 수학교육의 목적에 대해 토론했다.  


얼마 , 어느 수학 학습 심리 수업에서  사건이 회자되었고,  아가씨는 수감각 Number Sense 없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특히 초등 수학 수업의 주요한 학습 목표는 수감각과 양적 추론 quantitative reasoning 능력을 기르는 것이다. 중학생이 되면 이를 바탕으로 수학적 추론 능력을 기르게 된다. 어떤 대학들에서는 양적 추론 학습 센터 quantitative reasoning learning center 두고 지역 초중등 학생  교사를 위한 학습 프로그램을 제공하기도 할만큼, 모든 학생들에게 꼭 필요한 학습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전공 분야와 관계없이, 일상생활의 언제 어디서든 수감각이나 양적 추론 능력이 요구되는 상황은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그런 수감각과 양적 추론 능력이 어른이 된다고 해서 자연스럽게 습득되는가 하면 꼭 그렇지도 않다, 홈디포의 아가씨처럼. 연습이 필요하고 시간이 필요하다. 계산기를 손에 쥐고 있어도 무슨 계산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머뭇거리는 학생들이 생각보다 많다. "수"를 따지기 이전에 수와 계산에 대한 "감각"을 먼저 익혀야 하고, 천천히 몸과 마음에 감각이 배도록 연습해야 하는 것이다.


어떤 종류의 지식이든, 획득한 뒤에는 그것을 적절한 시점에 적절한 방식으로 활용할 수 있을 때 그 가치를 이해하게 된다. 수학이 유독 그 실용성과 필요성에 대해 비판을 받는 것은, 수학 지식을 획득하는 일에 지나치게 치중하여 어디에 어떻게 활용할 수 있는지 그 연결을 찾는 연습이 부족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바꾸어 말하면, 수학을 배우는 일이,  연결을 찾는 것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계산 연습을 먼저  뒤에 응용문제를 푸는 것이 아니라, 응용문제 속에서 계산 연습을 해야 하고, "함수의 활용" 단원이 제일 마지막에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 제일 처음으로 등장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홈디포 그녀의 해맑은 미소에, 건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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