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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woHearted Oct 08. 2020

예스, 노, 비코우즈

배움은 자신의 생각을 다듬어가는 과정


이번 학기에 수강하는 수업의 제목은 "가르치기 위한 배움 Learning to Teach"이다. 전형적인 뇌섹남 아우라를 풍기는 40대로 보이는 남자 교수님이 얼마나 찰지게 수업을 이끌어 나가시는지, 일주일에 한 번씩 제대로 마음 깊이 감동받는 수업이다. 교수님 혼자서 세 시간 동안 강의하신다고 하더라도 주옥같이 받아 적을 문장들이 많겠지만, 교수님은 수업 시간 동안 학생들이 더 깊이 생각하고 그 생각을 나눌 수 있도록 자신의 "참견"을 최소화하신다. 교사 교육에 대해서 깊이 고찰해야 할 화두를 던져주시고, 토론이 이어지는 중간중간에 학생들의 의견에서 파생되는 탐구 포인트를 제시하신다.


 학기 동안 우리가 반복적으로 다루면서 스스로의 정의를 찾아가야 하는 질문은 "가르치기 위한 배움은 무엇인가? 좋은 가르침은 무엇인가? 그것을 판단하는 기준은 무엇인가? 교사들의 배움을 위해서 어떤 조력이 필요한가?" 같은 것들인데, 정해진 답을 찾아내기 위한 것이 아니라 교사 교육자로서 조금씩 조금씩 자신의 생각을 선명하게 다듬어 나가도록 이끌어 주는 질문들이다.


수업에서는 어떤 말이든 생각이든 존중되고 받아들여진다. 대신 왜, 어떻게 그런 생각에 이르게 되었는지를 사람들은 궁금해 하고, 말을 꺼낸 사람은 이유를 설명해야 할 의무가 있다.


뼛속까지 소심한 AA형 한국인으로서 세 시간 동안 이어지는 심도 있는 토론 수업에서 자연스럽게 내 생각을 공유하는 것은 여전히 긴장되고 어렵다. 아무리 내 머리로 마음으로 "다른 사람들의 생각과 의견을 평가하고 무시하는 건 나쁜 거야" 믿고 있어도, 나의 말이 남들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질까 신경 쓰고 있는 이중적인 갈등이 내 안에 존재한다. 외국인으로서, 그것도 경쟁과 비교와 겸손의 미덕에 익숙한 한국인으로서 그런 토론 수업에 앉아 있는 것은 나 자신과의 싸움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긴장감 덜한 강의식 수업보다 이런 수업에서 배우는 것이 훨씬 더 많다는 것을 경험으로 깨달았기에 참아야 한다. 저녁 수업이 끝나면 곧바로 냉장고로 달려가 맥주 한 캔을 꺼내는 날도 종종 있지만.




생각과 이유를 표현하는 문화


처음에는, 말빨 화려한 교육대학원 학생들이 참여한 수업이라 그런가, 생각하기도 했었다. 간단한 질문 하나에도 절대 간단명료하게 한 두 문장으로 대답하는 경우는 없었다. 예를 들어, 교수님이 "이번 주에 논문들 읽기 괜찮았어?" 질문하면, 학생들은 "어려웠어요."에서 그치지 않고, 왜 읽기가 더디고 어려웠는지 그 이유를 자세히 설명했다. 그러다 보면 논문을 읽는 동안 생겼던 질문을 자연스럽게 공유하게 되고 토론이 시작된다.


그러나 토론 수업이 아닌 상황에서도 친구들은 자신의 생각, 감정, 선택을 표현하는 것이 자연스러웠고 그런 표현에는 꼭 그 이유를 함께 설명해주어서 듣는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도록 했다. 한 번은 어떤 수업의 쉬는 시간에 학생들이 돌아가면서 각자 자신이 사용하는 리딩 정리용 프로그램이 무엇인지 공유했었다. 나는 당연히 단답형으로 프로그램 이름만 말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멘델레이요."하고 마침표를 찍었지만, 다른 학생들은 "멘델레이요. 그게 왜 좋았냐면..." 하고 이유를 덧붙였다.


또 한 번은, 점심시간을 이용한 짧은 소셜 타임이 있었다. 다른 프로그램 사람들도 섞여 있고 해서 돌아가며 각자 자기소개를 하기로 했다. 간단히 이름, 소속을 밝히고 "만약에 초능력이 생긴다면 무엇을 갖고 싶나?"라는 질문에 대답하기로 했다. 당연한 듯, 아무도 "해리, 호그와트, 투명인간." 하고 마침표를 찍지 않았다. 짧게든 길게든 "투명인간, 왜냐하면..." 하고 이유를 덧붙였다.


그냥 일상적인 잡담을 나눌 때에도 마찬가지이다. 교수님들이나 친구들과의 대화에서 주말에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할 때에도 "주말에 파머스 마켓 간댔지? 좋았어?" 하고 누가 물어오면 "응, 좋았어."에서 마침표를 찍을 수 없다. 내가 잠시 말을 쉬는 거라고 생각하고 미소 띤 얼굴로 나를 쳐다보고 있다. 무엇이 왜 좋았는지 간단하게라도 설명해주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Yes, I do." 혹은 "No, I don't." 이 아니라, "Yes, because..." 혹은 "No, because..."라고 자동반사적으로 대답하도록 훈련을 받는 걸까 생각이 들기도 했다.


이렇게 학교에서든 학교 밖에서든, 자기 자신의 생각과 의견을 자연스럽게 표현할 수 있고, 대신 그 이유를 덧붙여서 상대방의 이해를 도와주는 의사소통 방식에 조금씩 익숙해져가고 있다. 일방적이지 않은, 이해와 공감을 전제로 하는, 의사소통.


그리고 자신의 생각과 이유를 설명하는 자연스러움은 중학교의 수학 교실에서도 볼 수 있었다.



이유를 설명해야 하는 수학 문제


특히 수학을 배우는 학생들이 연습해야 하는 것은 정확한 계산보다 그 계산식을 얻기 위한 수학적 사고 과정이다. 좋은 수학 문제는 학생들에게 모두 똑같은 단 한 가지 방법으로 풀이하고 답을 얻기를 요구하지 않는다. 그런 문제들에 익숙한 학생들은, 문제를 풀 때 답에 이르는 과정이 꼭 한 가지만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안다. 그리고 그런 문제들은 "왜 그 풀이 방법이 옳다고 생각하는지 이유를 설명하세요"라고 묻는다.


중학생들의 수학 수업 시간 스크린 리코딩 데이터를 분석하다 보면 놀라울 때가 있다. 심지어 문제에서 이유를 설명하라는 요구가 없더라도, 학생들은 절대 x=1 혹은 yes라고만 쓰지 않았다. 왜냐하면... 하고 왜 그 답이, 그 풀이과정이 맞다고 생각하는지를 설명했다. 수식으로 쓰기도 하지만 대부분 문장으로 쓰는데, 누군가에게 말을 하는 듯이 설명하는 듯이 혼자 중얼거리면서 쓰는 경우도 많다.


지금까지 관찰한 수업과 스크린 리코딩 중에서 문제가 어렵다는 말은 들었지만, 단 한 번도 "여기 설명하라는 건 뭐라고 쓰는 거야?" "뭘 쓰라는 말인지 모르겠는데" "답만 쓰면 안 되나" "설명은 안 쓰고 건너뛸래" "귀찮아" 같은 말들은 듣지 못했다.


그래서 자꾸만 생각하게 된다.

 

어쩌면, "왜냐하면..." 하고 자기의 생각을, 느낌을, 감정을 표현하고 그것이 있는 그대로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문화에서 살아가는 학생들에게는 그 이유를 설명해야 하는 수학 문제도 별로 부담스럽지 않은 걸까. 그것을 설명할 수 있어야 진짜 제대로 이해한 것임을 자연스럽게 동의할 수 있는 걸까.


어쩌면, "왜냐하면..." 이 자연스럽지 않은 문화에서 살아가는 학생들에게는 자신의 풀이과정을 설명하는 것이 애초에 낯설고 어려운 일이 아닐까. 그래서 아이들은 "뭘 쓰라는 말인지 모르겠어"라고 속삭이는 것인데, "학습자 중심 교육"이라는 이상적인 목표만 생각하면서 "잘 생각해봐, 넌 할 수 있어!"라고 무의미한 응원만 했던 것이 아닐까. 우리 아이들은 답만 맞으면 과정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걱정만 했지, 과정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그것을 설명할 수 있는 힘을 기르도록 이끌어주지는 못했던 것이 아닐까.


교직에서 물러나면 더 이상 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았던 부끄러운 반성은 오늘도 계속된다. 휴, 맥주나 마시러 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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