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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소이 Apr 02. 2023

서로를 기다리는 시간

- 고요하면서도 착실히 반짝이는 생활일기

 어렸을 때부터 조용한 방 안에서 책 읽는 시간이 나에겐 하루 중 가장 편안한 시간이었다. 온갖 도시의 소음이 가득한 바깥세상으로 향하는 문을 잠시 닫고, 내 앞에 펼쳐져 있는 책을 한 장씩 정성 들여 넘기면서 저자가 들려주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울고 웃고 감탄하고 진지해지고 다양한 감정이 내 안에 쌓이고 쌓여서 마음이 조금 더 단단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 사람에 대해 알고 싶을 때, 난 요즘 읽고 있는 책이 있는지 물어본다. 재테크에 관련한 책을 읽는 사람, 추리소설을 읽는 사람, 위로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 에세이를 읽는 사람 모두 자신의 삶을 소중히 생각하고 타인의 삶에도 관심을 기울이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인지, 난 취미가 독서라고 말하는 사람은 대체로 좋은 사람이라는 믿음이 있다.


 최근, 일본 작가 '이치조 미사키'가 쓴 소설 '오늘 밤, 세상에서 이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를 읽었다. 소설에서 묘사하는 벚꽃이 흩날리는 공원과 초여름 하늘을 수놓는 불꽃놀이 장면을 떠올리며 왠지 모르게 설레었다. 그리고 풋풋하고 순수한 사랑이야기에 마음이 말랑해졌다. 소설은 주로 혼자 읽고 감상하는 편인데, 왠지 짝꿍이 좋아할 것 같아 이 책을 소개했다. 그랬더니 그는 바로 책을 빌려서 나와 같은 속도로 책을 읽어나갔다.


 "우리가 같이 읽은 책에 대해 말하고 싶어서 함께 이야기할 이 시간을 하루 종일 설레어하며 기다렸어."

 그는 햇살을 가득 머금은 듯한 목소리로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시간이 다음 날로 넘어갈 때까지 우리의 이야기는 끝날 줄 몰랐다. 피곤함을 느끼지 못한 건, 물리적으로 다른 공간에 있는 우리가 책 속으로 들어가 한 공간에서 만난 것 같은, 서로를 포근하게 감싸고 있는 기분이 들었기 때문일까. 난 그날 책을 읽으며, 내가 좋아하는 걸 함께 좋아한다는 유대감을 공유하고 다정한 마음을 담아 조근조근 이야기하는 그의 목소리를 듣고 싶었다.


 설레는 마음으로 서로를 기다리며 보내는 하루하루가 행복하고 사랑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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