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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소이 Jun 04. 2023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가는

- 고요하면서도 착실히 반짝이는 생활일기

 이젠 헤어짐이 익숙해질 만큼 만남과 이별의 교차점을 많이 지나다 보니 서로의 곁을 떠나도 담담해진다. '인연이 되면 다시 볼 수 있겠지' 하는 막연한 기대감을 간직한 채. 


 오랜만에 만난 전 직장 동료들과 밥을 먹으며 제법 많이 달라져버린 각자의 삶과 헤어짐에 대해 이야기했다. 같은 직장에서 만나 헤어지게 된 우리, 다른 직장으로 떠난 팀원들, 한국을 떠나 네덜란드로 이주할 준비를 하고 있는 그의 이야기까지. 


 미래를 불안해하면서도 무엇이든 해보려는 그를 응원했다. 그곳에서는 한국에서의 고된 일을 잊고 더 자유롭게 살기를 바랐다. 같이 자리한 다른 동료는 책임감과 업무량을 무겁게 느끼면서도 자신의 몫을 다하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었다. 난 그의 특유의 귀여움과 발랄함을 잃지 않기를 바랐다.


 우린 각자 안고 있는 고민과 아픔을 이야기하고 들어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가고 있는 자신의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어쩌면 불행을 온몸으로 껴안고 인정하면서, 그것도 내 삶이라고 인정하는 마음에서 진정으로 살아갈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김연수 작가의 책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에서 말했듯이.


개인의 불행은 건기나 우기나 마찬가지입니다. 이곳 방글라데시에서 저는 수많은 개인사적인 불행을 만났습니다. 불행이란 태양과도 같아서 구름이나 달에 잠시 가려지는 일은 있을망정 이들의 삶에서 완전히 없어지지는 않습니다. 거기 늘 태양이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때, 우리는 거기 늘 태양이 있다는 사실을 잊습니다. 이들도 같은 생각을 하는 것 같습니다. 자신의 불행을 온몸으로 껴안을 때, 그 불행은 사라질 것입니다. 신의 위로가 아니라면, 우리에게는 그 길뿐입니다.

- 김연수,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 (2012, 자음과 모음, p.148)

     

 나중에 네덜란드로 오면 갈고닦은 요리솜씨를 보여주겠다는 그의 말에 우린 해맑게 웃었다. 각자 안고 가는 삶의 불행을 마주하며 서로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감당할 수 있을 만큼의 단단함이 내 안에 자리 잡을 거라는 믿음이 생겼다. 그렇게 단단해진 우리 셋이 정말 유럽에서 만나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땐 그 나름대로의 불행을 안고 있겠지만 그런대로 살아갈 수 있을 거라고, 그때도 지금처럼 서로의 마음을 들어주고 손을 얹어줄 거라는 막연한 기대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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