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메라 앞에서 떠오른 우리의 단상

by 천소이

친구들이랑 놀다가 어쩌다 찍는 셀카는 자연스러운데, 렌즈를 정면으로 바라보고 사진을 찍으면 왠지 모르게 어색하다. 웃음기가 사라지고 긴장한 얼굴이 된다. 사진이 가장 자연스럽게 나오는 건, 카메라를 의식하지 않은 상태에서 찍힌 모습이다. 책을 읽고 있거나 누군가의 말에 웃으며 손뼉을 치고 있거나 무언가에 시선을 뺏겨서 멈춰있는 모습. 그리고 내게 렌즈를 내민 사람이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일 때, 사진 속 내 얼굴은 생생한 그때의 감정을 담고 있다.


결혼은 우리가 함께하는 삶의 일부이면서도 우리 관계가 새롭게 정의되는 단계이기에, 사진으로 남기고 싶었다. 손수 준비하는 게 많은 결혼식이므로, 촬영도 직접 해보기로 했다. 그는 카메라를 중고로 구매해서 촬영 방법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조리개를 맞추는 방법, 최적의 촬영을 위한 설정값 등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면 틈틈이 사진 공부를 했다. 그는 만날 때마다 카메라 가방을 메고 나와서 구도를 잡고, 난 그의 모델이 되었다.


카메라 촬영이 익숙해질 무렵, 그는 포토샵 공부로 넘어갔다. 로우(RAW) 파일로 저장해야 사진의 톤이나 선명도 등을 미세하게 보정할 수 있다고 했다.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던 어느 날, 우린 사람이 드문 날을 정해서 카메라를 들고 나갔다. 그날 수백 장을 찍고 집에 돌아왔더니 그가 보정한 사진을 보여줬다. 그림자가 드리워져 잘 보이지 않았던 얼굴이 훤히 보였다. 보정의 힘이었다. 보정이 일으킨 마법에 감탄하자 그의 어깨가 으쓱 올라갔다.


이제 준비는 끝났고 실전으로 옮겨보기로 했다. 따뜻한 봄날, 파란 하늘이 눈부시고 겹벚꽃이 만발하던 때였다. 사람이 많이 몰리는 시간을 피하려고 아침 일찍 공원에 도착했는데, 이미 먼저 온 사람들이 사진을 찍고 나오고 있었다. 서둘러 촬영에 돌입했다. 배경에 사람들이 많이 걸리지 않는 한적한 벚나무 길을 골랐다. 내가 서 있으면 그가 삼각대에 카메라를 고정해서 구도를 잡고 타이머를 눌러서 사진을 찍었다. 왔다 갔다 하며 사진을 찍느라 그의 이마에 땀이 맺혔다. 사람이 몰리기 전에 부지런히 여러 포즈를 취해가며 사진을 찍었다. 거의 3시간 동안 사진을 찍고 나자 우린 말 그대로 녹초가 돼버렸다. 그래도 그는 얼른 보정을 하고 싶어 했고, 난 그가 보정한 사진을 얼른 보고 싶었다. 우린 어느새 사진에 진심이 되어 버렸다.


공기 온도가 바뀐 가을이 되었다. 청바지와 셔츠를 입고 편안한 느낌으로 야외 촬영을 했다면, 스튜디오를 빌려 결혼식에 입을 양복과 원피스를 입고 실내 촬영도 하기로 했다. 스튜디오에 꾸며진 공간을 확인해서 어떤 포즈를 취할지 시안을 만들었다. 촬영에 들어가면 우왕좌왕할 게 뻔히 보였기 때문에, 각 공간에 맞는 포즈를 인터넷에서 찾아 붙여서, 바로 포즈를 취할 수 있게 하기 위함이었다. 우린 둘 다 굉장한 계획형(J) 인간이다. 계획을 꼼꼼히 세워서인지 시간에 맞춰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시안이 있어서 어렵지 않게 구도를 잡고, 자세를 고치고 그에 맞는 표정을 지을 수 있었다. 처음엔 우리 둘만 있는데도 쭈뼛거리며 카메라를 응시했는데, 계속 사진을 찍으면서 포즈나 표정이 자연스럽게 나오고, 굳어있던 얼굴에 자연스럽게 미소가 지어졌다.


처음에 만났을 때가 생각났다. 옆자리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데, 어색한 분위기를 풀어보기 위해 그에게 알파벳 필기체 쓰는 법을 아느냐고 물었다. 소문자 F를 어떻게 쓰는지를 한참 얘기했던 것 같은데, 나중에 물어보니 그는 기억나지 않는다고 했다. 다만 뭔가 계속 이야기를 하면서 어색했던 느낌만 기억에 남는다고. 우린 어떻게 서로에게 자연스럽게 녹아들었을까. 우연한 순간에 마주쳐서 아는 사이가 되고, 친구가 되어 연인이 되기까지 우리의 말과 행동, 서로를 바라볼 때의 표정은 어느새 공기를 들이마시는 것처럼 자연스러워졌다.

우린 카메라를 바라보고 있다가 서로를 마주 바라봤다. 소문자 F의 필기체를 열심히 얘기하던 그때의 난 알았을까. 그와 마주 보면 저절로 미소가 번지는 사이가 되리라는 것을. 상대방의 말에 나의 말을 보태고, 그 말들이 포개어지며 서로를 알아갔다. 익숙해지기 위해선 노력이 필요하다. 수많은 대화와 만남, 시간을 공유하고 단순히 공유하는 것을 넘어서서 밀도 있게 관계를 다져야 한다. 두 사람 모두의 노력이 쌓여서 오늘의 우리가 이렇게 마주 보며 서있다. 이제 우린 한 집에서 같이 사는 삶을 그린다. 어색하게 마주할 또 다른 순간들을 마주하더라도 자연스러워지도록 새로운 노력을 할 것이다. 그 노력은 수고스럽지 않다.


이제 살림만 합치면 되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에게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가전, 가구, 생활 도구 등등 전부 새로 장만해야 했다. 그래서 난 그동안 관심을 두지 않았던 또 다른 미지의 세계, 가전의 세계에 발을 담그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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