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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레스트 May 17. 2024

꽃길만 걷는데 왜

Episode 14. 꿀벌

휴일 아침. 뜨끈하게 데운 물을 한 잔 마시면서 밤새 건조해진 몸, 특히 코와 목을 부드럽게 풀어준다. 나이가 들어서 그런가... 한 번 걸린 감기가 쉽게 떨어지지 않는다. 미열과 오한으로 시작해서 인후통을 거쳐 며칠 두드러기가 생겼다 사라지더니 마침내 코로 넘어갔다. 침만 삼켜도 찢어질 듯 고통스러운 인후통에 비하면 견딜만하긴 한데, 어쩌면 그렇게 끊임없이 콧물이 생겨나는지 하루종일 코를 풀어대는 상황에 짜증이 나면서도 한편으로는 신기하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눈 코 입처럼 외부에 노출되는 기관은 병원균의 침입이 잦다. 그래서 우리 몸은 '점액'을 만들어 상피조직이 건조해지지 않도록 보호하고 들어온 병원균을 둘러싸서 무력화시키는데, 콧물도 그중의 한 가지.


점액에 포위된 병원균은 식도로 넘어가 위산에 사라지거나 콧물이나 가래의 형태로 밖으로 내보내진다고 한다. 평상시 만들어내는 점액의 양은 하루에 무려 1리터 이상이라고! 내 몸에게 별로 잘해준 것도 없는 것 같은데 이렇게 묵묵히 열심히 일하고 있었다니... 자꾸 코 나온다고 짜증내서 미안.


목이나 코가 간질간질하기 시작할 때 프로폴리스가 들어간 캔디를 먹거나 차를 마신다. 맛과 향은 맵고 쓰고 떫지만 꽤 효과가 있다. 프로폴리스는 식물에서 얻은 수지와 꽃가루에 꿀벌의 밀랍과 효소가 더해져 만들어지는데, 집을 짓거나 밀봉할 때 사용되어 병원균의 침입을 1차적으로 막는 역할을 한다.


Propolis라는 단어 자체가 도시(polis)를 앞서서(pro) 지키는 '방어선'이란 의미라고 하니, 우리 몸의 '점액'과 비슷한 역할을 한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항균력만큼이나 접착력도 뛰어나서 벌통에 들어왔다 죽은 생쥐가 썩지 않고 미라가 될 정도라고 한다(그렇다, 고대 이집트인에게 미라 제작법을 알려준 건 바로 꿀벌이었다).


우리나라 꿀벌들의 건강 상태는 어떨까? 길게 생각하지 않아도 그리 좋은 것 같지는 않다. 기후변화로 개화시기가 빨라진 것도, 짧은 개화기간에 느닷없이 기온이 떨어지거나 폭우가 내리는 것도 문제다. 철마다 수목소독을 한다며 해외에서는 금지된 치명적인 농약을 슬쩍 쓰고 있는 것도, 좀 더 들여다보면 아카시꿀이 대부분을 차지할 정도로 밀원수의 종류가 부족한 것도 문제다. 그러나 근본적으로는 꿀벌을 고려하지 않는 착취에 가까운 양봉 방식이 가장 큰 원인 아닐까.


꿀벌은 집을 짓고 유충을 키우고 겨울을 나는 데 필요한 열에너지를 꿀에서 얻는다. 개화기에 수집벌이 물어온 꽃꿀은 수분이 많다. 일벌들은 되새김질로 꽃꿀에 항균물질과 효소를 더하고 열을 내고 바람도 내서 수분을 날린다. 꿀방의 입구를 덮는 '밀봉'은 드디어 꿀이 완성되었다는 표시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대부분의 양봉업자는 이렇게 꿀이 만들어질 때까지 기다릴 여유가 없다. 밀봉된 덮개를 벗기는 일도 번거롭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꿀벌들이 꽃꿀을 물어올 때마다 벌집을 털어 묽은 꽃꿀을 드럼통에 가득 담아 자연숙성된 꿀과 비슷한 농도가 될 때까지 저온에서 수분을 날리는 방법이다.


그럼 꽃꿀을 빼앗긴 꿀벌들은 뭘 먹고 사느냐고? 링거처럼 연결된 파이프를 통해 벌통 안으로 떨어지는 설탕물을 대신 얻어먹는다. 애벌레를 키우는 로열젤리를 만드는 데 필요한 꽃가루는 벌통 입구에 그물망 같은 채집기를 만들어 집에 가지고 들어가기도 전에 털어간다. 그리고는 중국산 유채꽃가루가 주재료인 '화분떡'을 대신 내어준다.


놀랍다. 그것도 모자라 아예 꽃꿀도 아닌 설탕물을 먹여 만든 '사양꿀'이라는 걸 버젓이 판매하고 있다. 이러니 우리의 꿀벌이 건강할 턱이 있나. 매년 수천만 군이 사라지는 것이 당연한 거 아닌가?


지난 몇 주 동안 눈이 아플 정도로 많은 꽃을 봤다. 철쭉, 라일락, 등나무, 오동나무, 이팝나무, 찔레, 아카시, 장미, 때죽나무까지. 꿀벌도 나도 꽃길만 걷는데 왜 이렇게 마음은 무겁기만 한 지.




5월 20일은 일곱 번째 맞이하는 '세계 벌의 날 World Bee 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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