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isode 26. 북극제비갈매기
장면 1.
우당탕탕 한바탕 소란이 끝나고 갑자기 집안이 고요해졌다. 눈을 동그랗게 뜬 채로 모든 신경을 귀에 집중했다. 이윽고 코 고는 소리가 벽 너머로 들려왔다. 참았던 침을 꿀꺽 삼키고는 아직 방 안에서 휘적거리는 시큼한 알코올 냄새를 내보내기 위해 창을 열었다. 뒷산에서 내려오는 서늘한 밤바람에 코끝이 찡했다.
장면 2.
며칠째 반복되는 야근과 불면의 새벽. 심호흡을 하고 선배에게 전화를 걸었다. 몸살감기로 몸을 움직일 수 없다는 뻔한 거짓말을 하고는 차를 돌려 공항고속도로를 탔다. 섬을 한 바퀴 돌고는 남쪽해안도로의 갓길에 차를 세웠다. 머리 위를 스치듯 지나 착륙하는 비행기를 하나 둘 셋 세어보다가 까무룩 잠이 들었다.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아득히 먼 곳으로 떠나고 싶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결국 나는 어디로도 떠나지 못했다. 제자리를 벗어나지 못한 채로 내게 다가오는 운명을 그대로 맞닥뜨렸다. 지난한 시간이었으나 그 나름대로의 의미가 있는, 떠나지 않은 사람만이 경험할 수 있는 여정이었다고 생각한다.
나이테가 포갬 포갬 쌓여가면서 세상 살아가는 요령을 조금씩 배워 익히게 되었다. 그래도 나는 여전히 어디론가 멀리 떠나고 싶다는 꿈을 가슴속에 품고 산다. 지난 시절과 비교해 크게 달라진 것이라면, 글쎄... 뭐랄까 이제는 편도가 아니라 언제든 다시 돌아올 수 있는 왕복티켓이어야 한다는 것.
그간 여행이란 것을 떠나보지 않은 것은 아니다. 허나 길어야 2주 남짓한 여정은 늘 여백 없이 빠듯했고 어김없이 소화불량의 상태로 되돌아왔다. 완전히 다른 환경 속에 나를 내려놓아두고 적당한 긴장 속에 탐험하고 알지 못했던 것들을 발견해 나가는 시간을 갖기 위해서는 적어도 석 달은 필요하지 않을까.
실제로 석 달 단위로 생활환경을 바꾸는 새가 있다. 날개길이는 30센티미터가 조금 넘고 체중은 100그램에 불과하지만, 지구상의 어떤 새보다도 멀리 난다. 지구 한 바퀴의 거리는 적도 기준으로 약 4만 킬로미터. 이 친구는 매년 약 8만 킬로미터를 이동하며 짝짓기를 하고 새끼를 키우며 살아간다.
8월 말 북극의 여름이 끝나갈 즈음, 북극제비갈매기는 따뜻한 남쪽으로 여행을 떠난다. 최종 목적지는 놀랍게도 남극. 직선거리는 약 2만 킬로미터이지만, 약 3개월 동안 대서양과 서아프리카 혹은 브라질 동부의 해변 구석구석을 여행하며 4만 킬로미터를 비행해 내려간다.
마침내 12월, 여름에 들어선 남극은 플랑크톤과 크릴새우가 제철. 수염고래가 천천히 유영하며 바닷물을 마시고, 범고래 무리는 물개를 끈질기게 몰아붙이며 사냥하고 있다. 그 사이에서 펭귄들은 잽싸게 빙하 위로 올라와 새끼에게 먹이를 게워낸다. 북극제비갈매기는 3월이면 다시 대서양을 종단해 북극으로 향한다.
장거리를 비행하는 새들 중에는 의외로 장수하는 종이 많다. 태평양을 횡단하는 앨버트로스가 약 60년, 사하라사막을 지나 유럽과 아프리카를 오가는 황새가 약 35년. 히말라야산맥을 넘는 줄기러기가 약 20년. 북극제비갈매기의 수명도 무려 30년에 이른다.
석 달마다 정주와 이동을 반복하기 위해서 그들은 어떤 준비를 하고 어떻게 하루를 보내고 있기에 그런 여정이 가능한 것일까.
기후변화에 인간들의 남획까지 횡행하며 크릴새우의 수는 매년 크게 감소 중이다. 크릴새우는 그만 펭귄과 수염고래에게 맡겨두면 안 될까. 천년만년 사실 것도 아닐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