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을 빼야 할 때

Episode 27. 수영

by 포레스트

요즘도 하늘을 나는 꿈을 꾼다. 한 오륙 년 전까지는 거의 마블 히어로급 비행능력을 뽐내곤 했는데, 어느 시점 - 코로나19가 세계를 휩쓴 이후 - 부터는 비행 횟수가 크게 줄었다. 그뿐 아니라 비행 스타일도 우주유영에 가깝게 소극적으로 바뀌고 말았다. 이것도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의 주요 후유증 중 하나라는 유럽질병통제센터의 발표... 같은 건 없었고. 그저 개인적으로 의심할 뿐이다.


바람을 타고 대기권 끝까지 고도를 높이거나 빛의 속도로 지구를 한 바퀴 도는 것도 좋지만, 꿈속 비행의 가장 멋진 부분은 아무런 저항감도 무게감도 없이 가만히 공중에 떠 있을 때다. 중력과 더 이상 싸우지 않아도 되는 자유로운 상태, 주위는 고요하고 머릿속은 맑고 마음은 형언할 수 없이 편안해진다. 현실 속에서도 비슷한 기분을 느껴본 적이 있다. 하늘은 아니었지만.


친구들을 따라 처음 가본 실내수영장. 겁도 없이 플로팅 보드를 양손으로 붙들고 발차기를 하다가 문득 눈을 떴다. 발이 닿지 않을 정도로 바닥이 깊다는 걸 아는 순간, 몸이 가라앉기 시작했다. 보드는 겁에 질린 내 손을 매정하게 뿌리치고 떠나버렸다. 수영장 바닥에 떨어져 몸을 웅크리고 있다가 수면을 올려다보았는데 이상하게도 더 이상 무섭지 않았다. 오히려 고요하고 편안한 기분이 들었던 것이다.


물결에 따라 왜곡되어 떨어지는 빛이 참 예쁘구나, 하다가 친구들 생각이 났다. 손을 위로 뻗고 바닥을 차고 일어섰다. 가벼워진 몸으로 물살을 부드럽게 가르며 천천히 수면을 향해 올랐다. 이때까지는 모든 것이 슬로비디오처럼 기억되고 있다. 그러다 갑자기 강한 충격과 함께 빛과 공기가 쏟아져 들어왔다. 수영장 밖에서 한참을 꺽꺽거리며 물을 뱉고 나자 오한이 들면서 딱딱하게 몸이 굳기 시작했다.


성인이 되어 수영을 제대로 배워보려 했는데, 강사님이 전국체전에 나가버리는 바람에 발차기만 하다가 흐지부지 끝이 났다. 뭐... 그런 사연으로 여태까지 나는 수영을 할 줄 모른다. 그래서 물가에 놀러 가도 발이나 좀 담그고 선탠만 하다가 돌아오고 만다. "아휴... 몸에서 힘을 빼야지." 당연한 걸 모른다는 듯이 주변사람들은 말하는데... 도대체 힘, 그거 어떻게 빼는 건데.


가끔 바다 한가운데서 멧돼지나 고라니가 포획되는 경우가 있다. 대부분의 육상동물은 부력이 있어 물에 뜰 수 있다지만, 이 친구들은 차원이 다른 수영 실력을 갖추고 있다. 멧돼지는 바다를 한 번에 10km 이상 헤엄칠 수 있고, 고라니의 영어 이름은 아예 water deer. 학명은 Hydropotes inermis. Hydropotes로, '물을 좋아하는', inermis는 '무장하지 않은 ‘, 다시 말해 물 좋아하는 뿔 없는 사슴이란 뜻이다.


늘 잔뜩 긴장하며 살기는 나 역시 야생동물과 마찬가지다. 변하지 않았으면 하는 것은 하나둘 사라지고 마땅히 사라져야 하는 것들은 새로운 껍데기를 쓰고 다시 나타난다... 갑자기 이야기가 너무 심각해져 버렸네. 그것 때문에 내가 헤엄을 못 치는 것도 아닌데. 여하튼 이 친구들은 이런 와중에도 힘을 빼야 할 때를 잘 안다는 것. 세상이 어떻게 바뀌더라도 주저 없이 물에 뛰어들 용기가 있다는 것.




지인의 아버지는 은퇴 무렵에 수영을 배우기 시작해서 매일 수영을 즐기셨다고 한다. 나도 아직은 희망이 있다... 내 수준을 이해하고 맞춰줄 선생님이 계셔야 할 터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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