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펙트 데이즈

Episode 25. 나무

by 포레스트

책과 올드팝을 벗 삼아 하루하루 평화롭게 실아가는 도쿄의 공중화장실 청소부. 그 소박하고도 충만한 일상 속에 과거의 추억이 천천히 떠오른다… 고 설명을 붙여놓은 영화 <퍼펙트 데이즈>.


영화의 제목 때문이었는지 주인공의 외모 때문었는지 모르겠지만. 초연하게 삶을 대하는 태도에서 풍겨 나는 세련된 향기 같은 것을 그린 이야기로구나, 하고 ‘쉽게’ 생각했다. 그런데 그게 그렇지가 않았다.


어른의 몸에 갇힌 어린 소년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과거의 어느 시점에 어떤 층격적인 사건을 목도하고는 더 이상 어른이 되기를 스스로 거부한 사람이 아닐까 하는.


“알고 보면 이 세상은 수많은 세상으로 이루어져 있거든. 연결된 것처럼 보여도 그렇지 않은 세상도 있지.”


카세트테이프, 100엔짜리 문고, 필름카메라는 그의 세계가 어느 시점에 멈춰있는지를 설명하는 가슴 아픈 단서일 뿐, ‘아날로그 갬성’으로 무장한 청소부 아저씨의 은근한 매력을 보여주려는 것이 아니었다.


갑자기 일을 그만둔 후배, 훌쩍 자라서 찾아온 조카, 어릴 적 좋아했던 초콜릿을 들고 온 여동생, 이자카야의 주인과 그녀의 전남편… 사람들 대부분은 잔잔하던 그의 세계에 크고 작은 돌을 던져 파문을 일으켜놓고는 제멋대로 사라져 버렸다.


그래서인가. 루 리드 Lou Leed의 Perfect Day와 니나 시몬 Nina Simone의 Feeling Good의 멜랑콜리하고 희망 가득한 노랫말은 ‘사실 삶은… 그렇지 않다’고 역설적으로 말하는 것 같다.


그의 곁을 한결같이 지키고 있는 것은 나무뿐. 주인공은 햇볕에 반짝이는 그이들의 표정과 이야기를 차곡차곡 기록하고 어린 묘목을 거두어 보살피면서 나무에 대한 존경과 사랑을 이어나간다.


영화가 끝났다.

혹시나 각본을 쓴 이가 김광석이 부른 <나무, 김윤성 시>라는 노래를 알았더라면 무척 좋아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결같이 빗속에 서서 젖는

나무를 보며

황금색 햇빛과 개인 하늘을

나는 잊었다.


누가 나를 찾지 않는다.

또 기다리지도 않는다.


한결같은 망각(忘却) 속에

나는 구태여 움직이지 않아도 좋다.

나는 소리쳐 부르지 않아도 좋다.

시작의 끝도 없는 나의 침묵은

아무도 건드리지 못한다.


무서운 것이 내게는 없다

누구에게 감사 받을 생각도 없이

나는 나에게 황홀을 느낄 뿐이다.

나는 하늘을 찌를 때까지

자라려고 한다.

무성한 가지와 그늘을 펴려고 한다.


- 김윤성 <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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