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isode 07. 산토끼
숲을 걷기 시작하면서 생긴 버릇이 있다. 귀를 쫑긋 세우고 코를 킁킁대면서 주변을 두리번 거린다. 이전과 달라진 것이 있는지 새로운 것이 나타나지는 않았는지, 가능한 모든 감각을 동원해 변화를 감지하는 것이다. '발견의 재미'를 알아가는 중이라고 할까.
깊은 잠에 빠진 듯한 겨울 숲에서도 매번 새로운 것을 발견하게 된다. 얼마 전 강원도 고성의 화암사 숲길을 걷다가 낙엽 위에 가지런히 놓인 알밤 크기의 경단들을 발견했다. 동그랗게 빚은 찹쌀떡을 코코넛 가루에 굴려 만든 것 같았다. 경단의 주인이 누구인지는 한참을 수소문한 끝에야 알게 되었다.
산토끼 Lepus coreanus는 우리나라의 고유종으로 무리를 짓지 않고 홀로 살아간다. 태어난 지 며칠 되지 않은 새끼들도 낮에는 각각 흩어져 있다가 해가 지고 난 뒤에야 어미의 젖을 먹으러 모인다고 한다. 뒷다리가 길고 근육이 발달해서 시속 60km 이상의 속도로 산비탈을 뛰어오를 수 있지만, 굴을 파거나 먹이를 저장할 줄은 몰라서 겨우내 매일같이 포식자를 피해 먹이를 구해야 하는 처지다.
겨울에는 주로 나무의 껍질이나 뿌리를 찾아먹는데, 소화기관이 짧아서 먹이를 대충 소화한 채로 배설한다. 내가 발견한 코코넛 경단이 바로 그것이었던 모양이다. 나중에 이 경단을 다시 먹어서 남아있는 영양분을 흡수한다고.
산토끼 토끼야 어디를 가느냐
깡총깡총 뛰면서 어디를 가느냐
산고개 고개를 나 혼자 넘어서
토실토실 알밤을 주워서 올 테야
생전 본 적도 없는 산토끼가 친숙하게 느껴지는 것은 바로 이 동요 때문일 것이다. 일제 치하의 1928년, 해지는 어느 저녁에 어린 딸과 뒷산에 오른 이일래 선생은 자유롭게 산과 들을 뛰어다니는 산토끼를 보고 이 곡을 쓰셨다고 한다. 오랫동안 작자미상으로 알려져 있다가, 1975년에 <조선동요작곡집 - Edward H. Miller. 1938년 발행>의 영인본이 발견되면서 노래의 주인을 되찾게 되었다.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해지는 저녁 숲을 배경으로 자유롭게 깡총거리는 산토끼 가족을 보고 싶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