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운율, 나만의 속도로

영화 패터슨을 보다 든 생각

by 영원



아무 생각 없이 영화 패터슨을 보던 어느 날, 나는 주인공에게서 낯익은 감정을 발견했다. 특별한 사건도, 대단한 반전도 없는 이야기. 그저 주인공 패터슨이 매일 같은 일상을 단조롭게 반복할 뿐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나는 그 단조로운 흐름에 깊이 끌렸다. 마치 누군가 나의 일상을, 마음을 조용히 들여다보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나 또한 변화와 거리를 두고 사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나는 변화를 두려워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굳이 변화를 추구하지도 않는다. 변화가 다가오면 자연스럽게 적응하는 편이며, 어떤 변화는 나를 설레게 하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파격적인 변화보다는 일상 속에서 반복되는 소소한 순간들을 더 의미 있게 여긴다. 그런 일상에서 작은 기쁨을 느끼고, 나만의 리듬과 속도로 살아가는 것이 나에게는 더 큰 안정감을 준다. 이러한 가치관 외에도 패터슨의 삶은 내 삶과 많은 부분에서 닮아 있었다. 영화 속 패터슨은 세상의 속도에 휘둘리지 않고, 조용히 자신만의 세계를 유지하는 사람이다. 매일 같은 길을 걷고, 같은 시간에 시를 쓰는 그 모습에서 나는 내 삶과 유사함을 느꼈다. 나도 매일 비슷한 일상을 보내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다만 나는 평온한 일상 속에서 사소한 행복을 발견하고 느끼는 것을 추구한다. 매일 빛이 조금씩 다른 노을을 본다거나, 산책을 하며 생각을 정리하거나, 운동으로 하루를 마무리하는 등 사소하지만 규칙적인 내 일상은 은연중에 큰 위안이 되고 있다. 규칙적인 삶이지만 그 속에서 나는 나만의 의미를 찾고, 나만의 이야기를 써 내려간다.


영화 중 패터슨은 우연히 만난 어린 소녀가 자신의 시를 들려주며 운율이 다 맞지는 않다고 당부하자 “난 안 맞춘 게 더 좋아”라고 말한다. 이 대화에서 시를 대하는 패터슨의 태도는 마치 내가 삶을 대하는 태도와 비슷해 깊은 공감이 갔다. 때때로 우리는 세상에 맞추려고 애쓰지만, 맞추려고 노력하다가 ‘진짜 나‘ 를 잃어버리기도 한다. 패터슨은 시를 ‘완벽하게 맞추기’보다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그 의미를 담아내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말한다. 시를 내 삶에 대입해 보면 꼭 내가 일상 속에서 찾는 ‘사소한 행복‘ 과 유사한 것 같다. 누군가는 그냥 지나칠 법한 것들에도 의미를 담아내고 해석하며 내 행복을 만들어 가는 것이다.


그렇지만 내가 느끼는 일상의 작은 사건들이 때로는 사람들에게 과장된 방식으로 해석되는 경우도 있다. 영화 속에서 패터슨의 버스가 고장 난 이야기를 듣고 사람들은 모두 “불덩이 솟구치며 터질 뻔했네”라고 말한다. 영화에서 뿐 아니라 현실에서도 사람들은 작은 사건들을 지나치게 크게 해석하거나, 무언가를 과장하려는 경향이 있다. 세상은 점점 더 빠르게 돌아가고, 사람들은 작은 일에도 예민하고 큰 반응을 보인다. 이러한 반응 속에서 내가 추구하는 일상의 의미는 때로는 잘못된 방식으로 왜곡되기도 한다. 어쩌면 자연스러운 현상이기는 하나, 개인이 왜곡에 넘어가느냐, 신념을 지키느냐에 따라서 사소하지만 소중한 것들을 놓치거나, 지키는 것이다. 나는 가끔 닥치는 소음 속에서도 여전히 내 일상을 소중히 여기며, 그것이 나에게 진정한 행복을 준다고 믿는다. 변화가 빠르거나, 화려한 삶을 추구하는 것이 아닌, 지금 이 순간의 일상 속에서 진짜 의미를 찾아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나는 이제 다시 한번 나만의 속도로, 나만의 리듬으로 살아가고 있다.


비슷한 맥락에서, 패터슨이 바 사장과 대화 중 휴대폰에 대해 이야기하는 장면도 나에게 큰 공감을 일으켰다. 바 사장은 휴대폰의 편리함을 이유로 패터슨에게 휴대폰 사용을 제안한다. 하지만 패터슨은 휴대폰을 가지면 “족쇄 될 게 뻔해요”라고 대답하며 굳건한 의지를 드러낸다. 패터슨의 이러한 태도는 내가 SNS를 다루는 태도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주변 사람들도 sns가 있으면 연락도 쉽고 다들 하는데 너도 해보지 않겠냐고 제안하곤 했다. SNS가 사람들을 연결시켜 주는 도구이기는 하지만, 나는 sns 속에서 사람들이 진정한 자아를 잃고, 끊임없이 비교하고, 보여주기 위한 삶을 살아가게 된다고 생각한다. 언젠가 나도 사람들의 말에 현혹되어 sns를 사용했던 시절이 있다. 그러나 결국 그 속에서 느껴지는 족쇄 같은 압박감을 견디지 못하고 그만두었다. 패터슨의 말처럼, 휴대폰이라는 도구는 생각하고 상상할 경로를 차단하기 때문에 오히려 자유를 억제하는 존재가 되기도 한다. SNS도 마찬가지로,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보다 외부의 시선에 의해 끌려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결국 그것을 벗어난 지금 마음의 평화를 찾을 수 있었다. 나는 잠깐이지만 sns에 빠져있다가 조용한 일상 속으로 돌아와 사람들과의 관계를 더 소중히 여기기 시작했다.



패터슨은 말없이 하루를 살아가지만, 그의 눈과 마음은 하루하루를 시처럼 바라본다. 나 역시 그렇게 살고 싶다. 대단하고 특별한 일이 없어도, 일상 속 사소한 것들에 집중하며 나만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것. 세상은 끊임없이 빠르게 돌아가고, 사람들은 더 많은 것을 보여주고, 더 빠르게 반응하려 한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그 흐름에서 한 발짝 비켜나, 내 속도대로 하루를 살아간다. 노을의 색이 조금씩 다른 것을 알아채고, 걷는 길의 공기를 느끼고, 조용히 나만의 생각을 정리하며 하루하루를 행복으로 채워 나가고 싶다. 변화는 언젠가 또 찾아오겠지만, 나는 그것을 거부하지 않고도, 나만의 방식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을 잘 안다. 그러니 오늘도 나는 조용히, 나만의 시를 써 내려간다. 운율이 꼭 맞지 않아도, 나의 속도로 간다면 어디로든 가도 좋다.



25년 봄의 끝무렵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