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호프의 갈매기를 읽다 든 생각
나는 어렸을 적부터 이야기를 짓고 책을 만드는 것을 좋아했다. 다섯 살 무렵부터 시작된 그 취미는 곧 내 삶에서 가장 소중한 꿈이 되었다. 초등학생 시절, “내 꿈은 소설가야”라고 말하면 사람들은 웃으며 응원해 주었다. 내가 만든 작은 동화책들을 가족과 친구들이 읽고 칭찬해 줄 때면, 세상을 내 방식대로 표현할 수 있다는 사실이 마치 마법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처음 ‘꿈‘이라는 존재를 알게 되었을 때부터 소설가라는 꿈을 소중히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중학생이 되었을 때, 내 오랜 꿈에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내가 점점 나이를 먹을수록 내 꿈을 대하는 사람들의 시선이 조금씩 달라지더니 걱정의 말들을 건네기 시작했다. “소설을 쓰는 것으로는 먹고살기 힘들지 않아?”라는 말, “그런 건 부업으로 해도 되잖아”라는 조언에 내 꿈이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래도 중학교 생활은 생각보다 순탄하게 보냈다. 글쓰기 대회에서 상도 받고, 글로 인정받는 경험을 하며 내 실력과 꿈을 굳게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중학교3학년, 고등학교 원서를 쓰며 나는 다시 한번 현살의 벽에 부딪히게 되었다. 내가 이때 마주한 갈등은 꼭 트레플레프가 겪은 갈등과 닮아있다. 트레플레프는 새로운 형식의 예술을 오랫동안 꿈꾸지만, 주변 인물들에게 외면당하면서 점차 흔들리기 시작한다. 그가 만들어낸 연극은 고리타분한 형식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의지가 담겨 있었지만, 관객들 괴 즈뱐 인물들은 이를 이해하지 못한다. 특히 어머니인 아르카디나는 아들의 예술 세계를 전혀 인정하지 않으며, 오히려 냉소적으로 대한다. 트레플레프의 연극이 끝난 무대 위의 정적처럼, 나의 꿈 앞에도 갑자기 조용하고 차가운 현실이 내려앉았다. <갈매기>의 제목은 단순한 동물 갈매기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꿈을 품고 날아오르려는 사람들의 상징으로 쓰이며 동시에 현실에 의해 날개를 꺾인 존재를 의미한다. 트레플레프가 니나에게 선물처럼 내미는 죽은 갈매기는, 그가 꿈꾸던 예술이 짓밟힌 모습 그 자체다. 지금 생각해 보면, 중학교 시절의 나는 나도 모르게 내 갈매기를 가두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갈매기>를 읽으며 나는 트레플레프라는 인물에게 깊은 공감을 느꼈다. 트레플레프는 기존의 연극 형식을 거부하고, 새로운 예술을 꿈꾸며 자신만의 무대를 만들어낸다. 그러나 그의 연극은 이해받지 못하고 조롱당하며, 어머니 아르카디나에게조차 외면당한다. 그는 결국 자신이 속한 세대와 예술의 벽, 그리고 가족이라는 가장 가까운 존재로부터도 인정받지 못하는 깊은 외로움 속에 빠져든다. 트레플레프의 모습은 어린 시절의 나와 닮아 있다는 생각을 했다. 나 역시 ‘소설가’라는 꿈을 품고 있었지만, 현실적인 문제와 어른들의 걱정 속에서 방향을 바꾸게 되었다. 내게 조언을 건넨 어른들 역시 나를 걱정해서 한 말이었을 것이다. 그들은 나와 세대가 다른 사람들이기 때문에 그들의 가치관에서는 학생을 안정적이고 미래가 선명한 길로 인도하는 것이 그들의 역할이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 순간 속에서 내가 느낀 감정은, 트레플레프가 무대 위에서 아무도 자신의 연극을 이해하지 못했을 때 느꼈을 절망과 유사할 것이라 생각한다. 트레플레프는 결국 예술에 대한 갈망과 현실 사이에서 길을 잃고 비극적인 선택을 하게 된다. 작품의 마지막 장면에서 그는 조용히 퇴장하고, 곧 총성이 울린다. 아무도 그 총성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말하지 않지만, 그것은 그의 꿈이 무너진 소리로 절망이 울려 퍼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 학창 시절의 꿈에 대한 고민은 트레플레프와 유사했지만, 다행히도 내 꿈에 총성이 울려 퍼지지는 않았다. 고등학교 진학 후 역시 어렸을 때부터 좋아하던 음악감상에서 이어진 꿈을 찾았기 때문이다. 이 꿈은 지금까지 갖고 있지만, 이에 대해서도 주변 어른들은 많은 걱정을 했다. 나의 꿈인 공연기획자는 박봉이고 업무 강도가 높은 직업으로 유명하다. 이를 걱정하는 어른들은 마치 소설가를 꿈꾸던 어린 시절의 나에게 했던 것처럼 당부의 말을 던졌다. 물론 현실적인 고민을 아예 배제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나는 트레플레프와 나의 결말이 다르길 바란다. 내 선택을 내가 스스로 책임지고 트레플레프는 흐지 못했던, 꿈꾸는 일을 실현시키는 것을 해내고 싶다. 그는 끝내 길을 잃었지만 나는 아직도 날아가고 있다.
지금 꾸는 꿈도 너무 소중하고, 꼭 이루고 싶은 꿈이지만 여전히 마음 한편에 소설가라는 꿈이 남아있다. 아직 소설가라는 꿈을 포기하지 않았다. 단지 내 마음속에 다른 형태로 남아 있는 것이다. 지금도 나는 블로그와 브런치 같은 공간에 내 글을 올리고, 출판사의 서평단 활동을 하며 글쓰기의 감각을 놓지 않으려 애쓰고 있다. 트레플레프가 꿈을 잃은 자라면, 나는 꿈의 방식만 바꾼 자라고 생각한다. <갈매기> 속에서 니나는 결국 트리고린과의 관계에 상처를 입고 무대에서의 실패를 맛보지만, 작품 끝 무렵에 다시 한번 연극을 향한 애정을 드러낸다.
“이제 나는 참된 배우가 된 기분이에요”
라고 말하는 그녀처럼, 나 또한 다시금 글쓰기에 마음을 기울이며 나름대로 나만의 세계를 만들어 나아가고 있다. 트레플레프는 끝내 자신의 갈매기를 날려 보내지 못했다. 하지만 그와 다르게 살아갈 것이다. 현실의 무게 앞에서 가로막혔지만, 다시 뚫고 나아가면 되는 것이다. 나는 여전히 그 갈매기를 다시 날릴 준비를 하고 있다. 무대 위에서 외면당한 트레플레프의 연극처럼, 나의 글도, 나의 꿈도 누군가에게는 외면당할 수 있겠지만, 내 꿈에 대한 애정, 나를 응원하는 사람들 그리고 지금의 내가 있는 한, 나는 이 꿈을 계속 품고 살아갈 것이다. 트레플레프가 침묵을 택한 자리에서, 나는 당당히 말할 것이다.
25년 눈이 오던 초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