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이 우연이 되기까지

운명은 찾아 나아가는 것!

by 영원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많은 사람을 만난다. 아침 등굣길에 지하철에서 스친 사람도, 강의실로 가는 엘리베이터에 함께 탄 사람도, 그저 나와 스쳐 지나간 사람들이지만, 그들은 오늘 하루 내 우연을 함께한 사람들이다. 우연은 쉽사리 물러날 수 없는 존재이기도 하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서 우연은 더 뚜렷하게 드러난다. 살아오며 우연히 스친 사람들을 떠올리면, 그 수가 족히 1000명은 넘을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내 옆에 있는 사람을 떠올려보자. 결국 그들도 작은 우연에서 시작된 인연이다. 만약 내가 그 약속에 나가지 않았더라면, 이 강의를 듣지 않았더라면, 우리는 만나지 않았을 것이다.


우연은 생각보다 무섭고, 큰 힘을 가지고 있다. 이 힘은 때론 우연에게 가면을 씌우고, 운명이 되려고 애쓴다. 하지만, 그 가면이 어떤 모습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한때는 아름다운 불씨였을지 몰라도 어둠보다 더 짙은 공포일 수도 있는 것이다. 우연은 다양한 감정을 일으킨다. 어떤 이는 우연히 알게 되어 마음을 따뜻하게 녹이고, 또 어떤 이는 우연히 알게 되어 마음을 어둠으로 덮는다. 우연은 생각보다 단단한 성질이 있어 끊어내기 쉽지 않다. 누군가는 우연을 별것 아니라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나에게 우연은 운명처럼 느껴졌다. 어느 우연도 놓치고 싶지 않았고, 그것을 어떻게든 운명으로 바꾸려 애썼다.


그러나 결국, 각자의 운명은 따로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처음에는 나와 운명처럼 보이는 우연일지 몰라도, 우연이 운명이 되기 위해서는 생각보다 많은 것이 필요하다. 단 한 줄이라도, 서로를 운명처럼 여기는 마음, 서로의 우연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 서로의 다름을 운명으로 느낄 줄 아는 마음이 필요하다.


내게도 그런 사람이 있었다. 한때는 운명이라 굳게 믿었고, 그도 그랬을 것이다. 하지만 세상에는 운명을 방해하는 것들이 너무나 많다. 우리는 시간이 지나며 환경, 가치관, 성격이 점점 달라졌다. 처음에는 같은 우연을 바라보던 우리였지만, 어느새 정반대의 길을 걷고 있었다. 그는 어느새 내 가치관에 어긋나는 행동을 습관처럼 반복하고 있었고, 나는 그에게 올바른 가치관을 심어 운명을 지키려 했다. 하지만 그와의 운명은 이미 지나간 우연이 되어 있었다. 처음에는 길이 조금 달라도 포용할 자신이 있었다. 이미 내 주변에는 우연을 넘어 운명이 되어가는 사람들이 많았기에, 그도 결국 운명으로 남을 것이라 믿었다. 하지만 운명의 벽은 생각보다 높았고 일방적인 힘으로는 부족했다. 얼마 동안은 우연이 된, 그의 빈자리가 너무 컸다. 하지만 괜찮다. 여전히 많은 우연과 운명이 나와 함께하고 있다.


지금도 가끔 그때를 떠올리면 가슴 한편이 허전하다. 그를 받아들인 용기란 얼마나 무책임한 것인지, 잠깐은 운명을 쉽게 여긴 내 용기를 탓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 허전함 덕분에 이제는 운명을 찾는 법을 조금은 깨달았다. 진정 우연이 아니었던 운명들에게, 아무것도 모르던 촛불들아, 잘 있거라 외치면 그만이라는 것. 이제는 운명에 연연하지 않고, 망설임을 대신하여 눈물 흘리지 않는다. 그들은 그저 짧았던 밤일뿐이며 나는 또 다른 내일의 운명을 맞이하면 되는 것이다.


우연은 쉽지만, 운명은 어렵다.

우연이 운명이 되기는 어렵지만, 운명이 우연이 되기는 쉽다.

운명을 만나는 것은 어쩌면 기적일지도 모른다.

나는 기적을 믿지 않는다. 그저 날이 더 따뜻해지기 전에, 내가 놓아버린 운명이 있지는 않은지 떠올려 보기를 소망한다.


25년 초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