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정한 나에게
‘다정하다’라는 말을 사전에서 찾으면, ‘정이 많다’, 또는 ‘정분이 두텁다’고 나온다. 나는 다정함을 성격을 칭찬하는 최고의 말로 생각한다.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라는 책의 내용처럼, 다정함은 사람이 좋은 것에서 더 나아가 세상을 따뜻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주변에 다정함과 어울리는 사람을 떠올려 보면, 그들만의 공통점이 있다. 그들은 공감을 통해 사람들과 연결을 만들고 협력을 가능하게 하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 다정함을 가진 사람들에게서 느껴지듯, 다정함은 반향(에코)처럼 퍼져 나간다. 따뜻한 말 한마디가 오늘 누군가의 기분을 바꾸고, 사소한 위로 하나가 오늘도 누군가를 살린다. 하지만 다정함이 꼭 말로만 전달되는 것은 아니다. 다정함을 전하는 방법은 무수히 많다. 그 대표적인 예시가 말일뿐이며, 행동, 글, 심지어 표정으로도 다정을 전할 수 있다. 다정을 전하는 방법은 무수하지만, 그 방법마다 상대에게 닿는 시간은 모두 다르다. 어떤 다정함은 상대에게 즉각적으로 닿을 수 있지만, 어떤 다정은 먼 길을 돌아가 나중에서야 상대에게 닿기도 하고, 길을 잘못 들어 상대에게 닿지 못하기도 한다. 나는 다정은 반드시 닿는 것이고 닿아야만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닿지 않는 다정도 가치가 있고, 실패한 다정도 살아남는 방법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내가 이를 깨달았던 것은 열네 살 무렵이었다. 어쩌면 남들보다 조금 더 빠르게 다정의 힘을 눈치챈 셈이다. 나는 어려서부터 남의 눈치를 많이 보고, 주변을 의식하는 경향이 강했다. 이러한 성격 탓에 어려서부터 나는 다정에 특화된 사람이었다. 긴 시간을 산 건 아니지만, 보통의 인간관계 속에서는 다정한 사람이 살아남았고, 결국 사랑받는 사람은 다정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열네 살, 나의 이런 관념을 깨뜨리는 일이 발생했다. 당시 내가 가진 다정함도 어쩌면 성향 탓에 인위적으로 시작된 다정일지 모른다. 하지만 그 다정은 내 마음속에 오랫동안 함께하며 어느새 내 또 다른 정체성이 되어 있었다. 그런데 내 다정함이 누군가에게는 나를 쉬운 사람으로 보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다정한 사람은 대체로 아량이 넓고, 관대한 모습이 있다. 당시의 나도 그랬고, 때로는 거절하고 싶기도 했지만 다정의 힘이 거절의 욕구를 이겼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의 다정을 마음 따뜻하게 받아주고, 갚아 주려고 노력했지만, 몇몇 사람들은 내 다정을 악용했다. 내 다정함이 변질되어 돌아오던 순간, 그때의 배신감과 허탈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앞서 말했듯, 다정함은 반향(에코)처럼 퍼진다. 그렇기에 누군가 내 다정을 악용한다면 그 변질된 다정도 반향(에코)처럼 퍼진다. 더군다나 당시 나의 다정은 높은 지위에 있었기에 그 영향이 더 심했다. 당시 회장이었던 나는 그 해를 유독 다정함이 충만한 사람으로 보냈다. 하지만 내 다정들은 변질되어 돌아올 뿐이었다. 나는 이 순간을 기점으로 다정을 조금 다른 태도로 여기게 되었다. 다정은 항상 좋은 결과만을 낳는 것이 아니구나. 아무리 많은 다정을 준다고 해도 변질되어 돌아올 수 있구나,라는 깨달음과 함께 상처를 안고 살아갔다.
이후로 나는 나름 정제된 다정을 품고 살아갔다. 하지만 타인에 의해 내 다정을 억압할 필요는 없었다. 그냥 누구는 내 다정히 맘에 안 들고, 누구는 내 다정에 감사할 줄 아는 것이다. 나는 이걸 모른 채 몇 년을 살아갔다. 타인의 다정에 상처받은 내 다정은, 또 다른 타인의 다정에 의해 회복되고 있었다. 그의 다정은 내가 가진 다정함을 뛰어넘었고, 내 다정이 어떤 모습이든 감싸주었다. 그의 다정을 마음 가득 느끼며 깨달은 것들이 꽤나 많다. 꼭 성격에서 다정함이 드러나는 건 아니라는 것. 웃지 않아도 마음속으로 미소를 한가득 짓고 있다는 것, 글로 표현하는 다정도 참 예쁘다는 것 등이었다. 왜냐하면 그는 까칠한 성격에 잘 웃지도 않았고, 글을 쓰는 것을 참 좋아했다. 내가 그동안 생각했던 다정의 방식과는 다른 결이었지만, 그의 다정은 나에게 많은 것을 알려주었다. 그의 다정함이 나에게 닿은 순간, 비로소 내 다정이 완성되었다. 다정함을 주는 것은 단순히 좋은 감정을 나누는 것을 넘어서 세상을 따뜻하게 만드는 힘이 되고, 결국 자신을 더 성장시키는 기회를 준다. 반향(에코)처럼 퍼지는 다정함은 너무나 귀하고, 소중하고, 따뜻했다.
나에게 상처를 주었던 다정은 같은 나이의 학생이었고, 나에게 다정할 용기를 주었던 다정도 같은 나이의 학생이었다. 나이에 상관없이 우리는 각기 다른 다정을 가지고 살아가며 다정을 느끼는 방법도 다르다.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라는 책에서 이런 문장이 나온다. “다정한 행동은 순간적인 감정의 표현이 아니라, 관계를 지속시키고 깊게 만드는 중요한 요소다.” 나는 이 문장을 읽고 마음 깊은 공감을 느꼈다. 아무리 내가 많은 다정을 나누어도 결국 그 다정을 받아들이는 이들만이 나와 깊은 관계를 유지하고, 색안경을 끼고 내 다정을 받아들이는 이들과는 결국 깊은 관계를 유지하지 못한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은 소수일 뿐, 대부분의 사람들은 다정을 받아들일 줄 안다. 과거 나의 다정을 받아들이지 못했던 이들도 지금쯤이면 다정을 나눌 줄 아는 사람으로 성장했으리라 믿는다. 다정함은 조용히, 그러나 강하게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인다. 그리고 그렇게 움직인 마음들은 세상을 더 따뜻하게 만들곤 한다. 다정이란, 결국 닿지 않아도 손을 내밀었다는 것에 큰 의미가 있다. 내가 내민 다정함은 언젠가는 세상에 큰 울림이 되어 돌아올 것이다. 우리는 생각보다 많은 다정을 안고 살아간다. 부디 당신의 다정함이 머뭇거리지 않기를 바라며, 당신의 다정함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믿음으로, 그 힘을 세상에 나누어주길 바란다.
25년 초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