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향을 넘어 행복으로
나는 내 소비 습관이 잘 잡혀 있다고 자부한다. 장바구니에 담아 둔 물건을 3개월 동안 고민하다가 결국 지워버리고, 필요 없는 소비를 방지하기 위해 가방에 이것저것 챙겨 다닌다. 나는 이런 사람이다. 이렇게 소비에 철저한 내가 고민 없이 소비하는 분야가 있다. 바로 ‘음악’이다. 흔히 많은 사람들이 “music is my life”라는 말을 유행어처럼 사용한다. 나 역시 많이 사용하는 말이지만, 나는 내 하루가 진정한 “music is my life” 아닐까? 생각하곤 한다. 스마트폰이 없었던 초등학교 시절부터 나는 CD 플레이어를 들고 다니며 노래를 듣곤 했다. 용돈을 모아 좋아하는 가수의 CD를 구매해 플레이어가 뜨거워질 정도로 많이 들었다. 스마트폰이 생긴 이후에는 곧바로 음악 어플을 구독해 음악으로 가득 찬 하루를 보냈다. 정말 오래전부터 “music is my life”로 살아온 것이다. 수많은 음악 장르 중에서도 나는 밴드 음악을 정말 좋아한다. 현재는 비교적 밴드 가수들이 많이 등장하고 유명세를 얻는 분위기이지만, 과거에는 현재 유명한 “데이식스”조차 모르는 사람들도 많았다. 그래서 나는 오래전부터 밴드를 좋아해 왔다는 자부심이 있다. 주변 친구들이 아이돌 그룹을 좋아할 때 혼자 밴드 음악을 들었고, 지금까지도 밴드 음악을 너무나 좋아한다. 이 여파로 나를 오랫동안 알아온 사람들 혹은 나와 대화를 많이 나눈 사람들은 나를 “밴드소녀”라고 지칭한다. 조금 유치하지만 친구들 사이에서 내 별명이기도 하다. 어렸을 때는 남들에 비해 마이너 한 장르를 좋아하는 내 취향이 말하기 꺼려지기도 했지만, 이제는 누구보다 자랑스럽게 말한다. 밴드를 정말 좋아한다고!
밴드 음악에도 다양한 장르가 있다. 그중에서도 나의 취향을 저격한 것은 인디 밴드이다. 적당히 신나는 멜로디, 따뜻한 가사, 노래의 중심을 잡아주는 악기까지 어느 하나 내 취향을 저격하지 않은 것이 없었다. 이런 밴드 음악을 찾아 듣다가, 중학교 2학년쯤 내 마음에 딱 들어온 노래가 있었다. “가장 따뜻한 위로”라는 노래인데, 당시 힘들고 무기력한 나에게 다시 일어날 원동력이 되어준 노래이다. 이 노래는 학창 시절 내 배경음악이 되어주며 내가 무너질 것 같을 때마다 버틸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자연스럽게 내 관심사는 이 노래를 부른 가수로 바뀌었고, 그들의 이름은 ‘소란’이었다. 그들은 자신을 설명하는 수식어로 “함께하는 매 순간이 특별한 기념일”이라는 문장을 사용한다. 그들의 음악을 매일같이 듣는 나에게는 참으로 공감 가는 문장이다. 그들이 주는 따뜻한 위로를 계기로 관심을 갖게 되었지만, 이제 그들의 노래는 나의 모든 순간에 함께하며 여전히 내 배경음악으로 흘러나오고 있다.
그들의 공연을 보고 나면 나는 잔뜩 상기되어 입가에 미소가 떠나지 않고, 분위기도 한층 밝아진다. 나는 사람들에게 소란은 나의 원동력이라고 설명한다. 무엇보다 나 스스로 소란을 통해 내가 더 밝아지고 많이 웃는다는 것을 알게 되어, 그들에 대한 소비를 아끼지 않는다. 옷 한 벌을 못 사더라도 공연을 한 번 더 본다. 그러면 나는 공연을 본 후 옷을 산 것보다 더 큰 행복을 얻는다. 누군가는 공연과 같은 추상적인 소비재는 행복에 크게 기여할 수 없다고 말한다. 길어 봐야 두 시간 남짓한 시간이면 끝나기 때문이다. 하지만 공연은 나에게 큰 여운을 남긴다. 더군다나 밴드 소란의 공연은 더욱 큰 여운을 남긴다. 그들의 노래와 연주뿐만 아니라 무대 장치와 조명, 그리고 함께 즐기는 사람들의 함성까지 마음 한 구석에 차곡차곡 모아두고, 힘든 일이 생길 때면 그 기억들을 꺼내 보곤 한다. 열다섯 살에 처음 간 음악 페스티벌이 나에게 그런 존재였다. 내가 소란을 본격적으로 좋아하게 만든 공연이자, 내 꿈을 더 키워준 공연이기도 하다. 처음으로 음악 페스티벌이라는 현장에 방문해 너무나 즐겁게 즐기는 사람들, 행복하게 노래하고 연주하는 가수들을 보며 마음이 진심으로 따뜻해지는 기분을 느꼈다. 아, 이게 바로 내 취향이구나, 취향을 저격했구나, 이런 생각들로 머릿속이 가득 찬 하루였다. 부모님도 이런 내 모습을 너무나 잘 알기에 나의 공연 생활을 적극적으로 지지해 주시고 응원해 주신다.
그들을 위해 소비하는 돈이 적지 않은 것은 아니다. 비싼 공연은 한 회에 10만 원이 훌쩍 넘기도 하고, 저렴한 공연이라도 그들을 보기 위해 지방까지 내려가면 교통비가 들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이런 소비가 전혀 아깝지 않다. 다른 것도 아닌 내 행복을 위한 촉진제를 구매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옷이나 사치품에 큰 관심이 없어 이에 대한 소비는 아깝다는 생각을 줄곧 하곤 한다. 하지만 공연에 대한 소비는 전혀 아깝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하지만 이것은 지극히 나의 경우이고, 다른 사람들은 내 소비 생활이 이해되지 않을 수도 있다. 어쩌면 이러한 현상은 당연한 것이다. 사람마다 취향은 다르고, 취향에 따라 소비를 하기 때문이다. 나는 소비도 취향의 일종이라고 생각한다. 소비는 우리에게 많은 영향을 주지만, 나는 그중 행복에 미치는 영향이 가장 크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행복을 주는 소비에도 어느 정도 옳고 그른 방향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공연을 소비하는 사람도, 일상에 과하게 개입하거나 일상생활에 지장이 있을 정도로 소비하는 것은 삼가야 한다. 어떤 취향이든, 어떤 소비이든 과하지 않고 일상을 보존할 수 있음을 전제하에 이루어져야 한다. 소비의 목적에도 행복이 있지만, 나는 소비의 결과에도 행복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단순히 어떤 물건을 샀다, 이뤘다는 정의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행복의 여운을 남기는 소비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행복한 삶을 위해 행복한 소비를 하는 우리를 응원한다.
24년 초겨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