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치료를 배우다 든 생각
이야기 치료란 문제로 포화된 내담자의 자기 이야기에서 간과되고 누락됐던 “독특한 장면들”을 구축해 내고, 이를 바탕으로 삶에 관한 빈약한 서사를 풍부하게 만드는 과정이다. 나도 이야기 치료를 받은 경험이 있다. 18살 무렵, 그동안 쌓아왔던 인간관계에 신뢰를 잃고, 힘든 상황이 여러 가지로 겹치며 우울증과 유사한 증세가 나타났다. 병원을 찾을 만큼 심각한 일은 아니었으나, 그동안의 힘듦과는 크기가 달랐다. 다행히도 이를 가장 빨리 알아차린 부모님께서 상담 센터의 치료를 권해 주셨다. 센터에서 다양한 치료를 했지만 무엇보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이야기 치료였다. 이야기 치료의 개념 자체는 앞서 설명했듯이 나의 이야기를 반복하여 설명함으로써 서사를 풍부하게 만드는 것이다. 당연하게도 처음 서사를 설명하는 것은 쉽지 않다. 어떻게 보면 생전 처음 보는 사람에게 내 이야기를 늘어놓아야 하는 것인데, 말이 편하게 나올 리가 없다. 물론 상담사의 직업은 이야기를 듣고 그 이야기를 재구성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지만 혼란한 마음가짐을 가진 상태에서는 받아들이기 쉽지 않다. 그렇기에 비교적 시간여유가 많은 어린이들은 상담사와 친해지는 작업을 길게 가져 친밀감을 가진 뒤 상담을 시작하기도 한다. 하지만 당시 나는 학업적으로 바쁜 고등학생이었기에 그런 시간은 사치였고, 생전 처음 보는 남 앞에서 뾰족한 과거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이야기 치료에 대해 마음을 닫은 채로 상담을 시작했지만, 초반의 효과는 생각보다 좋았다. 나는 나의 경험과 상처들을 나열하여 이야기로 만들었고, 상담사는 문장의 끝맺음마다 내 기분이 어땠는지 묻곤 했다. 처음 1~2회는 내 감정에 공감받는 기분이 들기도 하고 내 편이 생긴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런데 3 회차쯤 되니 어느 순간부터 상담사의 반응이 식상한 빈말로 느껴지며 회의감이 느껴졌다. 그 원인은 부모님의 반응에 비해 부족한 상담사의 반응 때문인 것 같다. 나의 부모님은 매우 섬세하고 다정한 성격을 가지고 계시며 나를 길러주신 분들이기에 나의 특성, 성격에 대해 잘 아신다. 그렇다 보니 내가 힘든 상황에 놓였을 때도 내가 힘들어하는 이유, 고쳐야 하는 부분 등을 정확히 아신다. 상담사도 상담을 전문으로 하고 이에 관해 많은 공부를 했을 것이다. 그러나 상담사에게 나는 수많은 상담 대상 중 하나일 뿐이며 처음부터 나에 대해 자세히 알 수 없다. 당연한 사실임에도 나에게는 이 차이가 꽤 크게 느껴졌다. 이 기억을 떠올리니 왜 이야기 치료의 시작이 가족 치료에서 비롯되었는지 이해가 갔다. 마이클 화이트와 데이비드 옙스턴은 가족 간의 친밀감이 전제되었을 때 서사 심리학의 관점이 활발히 적응된다는 것을 알아본 것이다.
한 번 회의감을 느끼니 이야기 치료에 대한 내 마음은 떠난 지 오래였다. 정확히 어느 것이 문제였다고 할만한 이유는 마땅하지 않지만, 지금 되돌아보니 이야기 치료의 핵심 원칙이 지켜지지 않았기 때문인 것 같다. 이야기 치료의 핵심 3가지는 ‘다시 쓰기’, ‘관계적 자아‘, ’ 회원 재구성 대화‘이다. 이 세 가지를 종합해 보면, 내 이야기를 다시 써가며 올바른 관계적 자아를 성립하고 재구성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모든 과정에는 상호작용이 전제되어야 한다. 상호작용이라 하면, 화자와 청자 간의 적당한 공감과 리액션이 떠오를 것이다. 그러나 이야기 치료에서의 상호작용은 훨씬 깊은 개념을 요하고 있다. 단순히 상대의 대화에 호응하는 것을 넘어서서 상대와 같은 부분에 대해 유사한 감정을 가져야 한다. 상담사가 되는 길에 대해서는 문외한이지만 상호작용 능력이 무엇보다 중요한 자질이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그들도 결국 사람인지라 처음 본 사람에게 딱 맞는 상호작용을 하기는 쉽지 않다. 이야기 치료의 전제인 ‘상호작용적 대화‘의 핵심은 상대의 포인트를 잘 짚는 것이다. 주제가 A에 대한 것이어도 상대는 A 가 아닌 옆의 B에 더 큰 상처를 받을 수 있다. 어쩌면 예민한 상대였던 나는 상담사와의 상호작용이 어긋나자 답답한 마음만 더 커져갔다. 치료를 받기 시작한 목적은 말 그대로 상처를 다시 쓰며 건강한 자아를 확립하는 것이었지만 상처를 다시 쓰는 방법에 있어 나와 상담사의 방식은 너무나 달랐다. 나는 상처를 계속해서 드러내기보다, 상처를 받아들이는 방법을 배우고 싶었다. 그러나 상담사는 계속해서 내 상처를 파고드는 데에만 열중하였다. 한결같은 상담사의 태도에 내 상처는 더뎌지기 시작했다. 이야기를 계속해서 하다 보니 상처가 지겨운 지경이 되어버린 것이다. 결국 나는 세 달 만에 상담을 그만두었다. 하지만 나는 이 이야기 치료를 결코 실패한 치료라고 보지 않는다. 상담사와의 상호작용은 실패했지만, 나는 나 스스로와 상호작용하는 방법을 깨달았다. 내 이야기를 누구보다 잘 알고 내 감정을 누구보다 잘 아는 것은 오직 나 하나뿐이다. 어쩌면 최고의 이야기 치료를 할 수 있는 사람은 스스로 상처를 다시 쓸 줄 알고 재구성할 줄 아는 나인 것이다.
현재의 나는 건강한 자아를 가지고 있으며 과거에 비해 정신적으로도 매우 건강하다. 건강한 자아를 성립하기까지 수많은 상처를 겪었으며 상처를 치료하는 방법을 찾는 데에도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었다. 시간으로 따지자면 족히 5년은 걸린 것 같다. 나는 이 과정이 얼마나 외롭고 힘든지 잘 알기에 다른 이들이 관계적 자아를 성립할 수 있도록 돕고 싶다. 이야기 치료의 진정한 효과는 친밀한 사람과의 상호작용이 전제되었을 때 이뤄진다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자신이 아직 스스로 이야기 치료를 할 단계에 이르지 못했다면, 나는 전문 기관에 가서 이야기 치료를 하기보다 가까운 사람과 이야기 치료를 할 것을 권유한다. 나는 한 번의 전문적 이야기 치료로, 이제는 스스로 이야기 치료를 할 줄 아는 삶을 살고 있다. 이야기 치료를 거듭하며 이야기 치료가 필요 없는 나를 만들어 가고 있다. 세상은 결국 하나의 이야기이고 나 역시 그중 하나이다. 세상의 결말을 해피엔딩으로 맞이하기 위해서는, 내 서사의 엔딩이 해피엔딩 이어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말자. 행복한 서사만 가득 채워도 페이지는 모자라기에, 누구라도 아픔을 하루빨리 떨쳐내길 소망한다.
25년 초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