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량엄마_20

아이에게 폭력은 안됩니다

by foreverlove

오늘 휴일이라 하루 동안 외출을 하고 돌아왔더니

똥똥이가 나가수 레전드 편을 보고 있더군요,

인순이 씨가 아버지란 노래를 열창 중이더라고요, 아버지란 노래를 들으면서

저도 제 친정아버지가 생각나더라고요

뭐 인순이 씨의 아버지란 곡도 아픔 속에서 피어난 곡이듯이

저도 아버지와 제아픔의 기억이 떠오르네요




무슨 일이 있어도 아이에게 폭력은 가하면 안됩니다

그 상처는 아무리 오랜 세월과 시간이 흘려도 가슴에 멍으로 남아 지워지지 않습니다


저는 초등학교 3학년 때 한글을 깨칠 만큼 느려 터진 아이였다고 적은 바 있습니다

그렇게 느린 저였지만 그래도 누구보다 책을 많이 읽었고

글을 깨우치고 책 읽기가 왜 그렇게 재미있던지? 초등학교 때는 학교 도서관의 책 90%를

읽었을 정도로 열혈 독서광이 되었고 공부도 나름 열심히 했죠

하지만 왜 그렇게 수학은 재미도 없고 안되던지 '', 안 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수많은 책을 읽어서 그런지 작문실력은 쪼매 진짜 쪼매 있어서 상도 받곤 했습니다

하지만 제 아버지에게 있어서 저란 존재는 그냥 공부 못하는 아이였을 뿐입니다

제 바로 아래 동생 2명은 공부를 잘했거든요

비교대상까지 존재하니 저란 사람 참 못나고 못난 존재였을 겁니다

아버지는 언제부터인지 술에 찌들기 시작했고, 폐인이 되어 있었고 가정은 등한시되었죠

그러니 자식들에 대해서 제대로 알긴 했을 지 의문이었습니다


제 의문에 답을 해주었던 건

제가 중학교를 입학하고 얼마 안되어서 벌어진 사건으로 답이 되었습니다

저란 존재는 여전히 한글도 모르고 , 영어 알파벳 ABC도 모르는 무지한 아이로

생각하고 있단 사실을요




중학교 입학 후 얼마 안되어서

아버지께서 저를 부르시더군요 , 그때 저는 아버지에 좋은 감정이 없던 시기였습니다

앞에 무릎 꿇고 앉은 저에게 대뜸 국어책을 읽어봐라고 시키더군요

정말로 눈물 나더라고요., 나란 아이가 이렇게까지 못난 자식이었구나 싶어서

그래도 왠지 아버지란 존재 앞에선 울기 싫어서 꾹 참고 국어책을 읽었습니다

아무런 말씀도 없이 들으시더니 "영어책을 가져와라"

영어책을 가지고 다시 앞에 앉으니 "자 이건 뭐고?" 하면서 저에게 알파벳에 대해 묻더군요

너무 짜증이 솟구치더라고요.


어찌 사람을 무시해도 아니 어떻게 이렇게까지 자식인 나에 대해서 모르나 싶어서

서러움이 폭발하더라고요

저 비록 한글 깨침이 늦긴 했으나 영어는 아주 빨리 깨우쳤거든요

제가 중학교 다닐 때만 해도 대부분 아이들 영어학원에 다니면서 알파벳 정도는 다 배우고

아니 거의 기본은 다 떼고 들어갔지요

그래도 선생님들은 알파벳을 모르고 들어오는 아이들이 많은 관계로 알파벳부터

차근차근 가르쳐주셨던 시기였습니다

왠지 모르겠지만 영어는 너무나도 쉽게 익혀지더라고요 , 정말로 신기하게 말입니다

지금도 신기하게 생각할 정도로 영어는 너무 쉽게 익히고 배웠습니다

그리고 영어 발음도 좋다고 선생님께 칭찬도 듣곤 했을 정도로 나름 좀 했지요

하지만 문법에는 많이 약해서 영어성적은 안 좋았습니다.

그런데 이상스럽게 영단어는 그렇게 잘 외워지더라고요 ;; 그래도 하난 잘해야죠


중학교 2학년 때 담임선생님께서 매일 아침 100개의 영단어 쪽지시험을 치르셨는데

그때 10개 미만으로 틀리면 한 단어당 무조건 1000개씩 적어오는 숙제를 내셨죠

저는 1년 동안 내내 한 번도 10개 미만으로 틀려본 적이 없는 기염을 토했네요

어디서 나온 암기력인지? 참 모를 기적 같은 일이었죠

그땐 진짜 힘들었지만 그래도 그 선생님 덕분에 영어단어는 진짜 제대로 많이 익혔죠

이런 저이지만 한자는 또 죽어라고 못 외웠습니다

한자 한 글자를 외울 동안 영단어 10개를 외울 정도였으니 정말로 한자울렁증 대단했습니다

아마.... 아버지에 대한 트라우마가 나로 하여금 한자울렁증을 만들어 낸 건 아닌가 싶습니다

아버지는 한자를 아주 잘 아셨고 그리고 한자를 아주 잘 적으신 분이었습니다.,

엘리트였던 분이셨죠 , 그런 분이었기에 저란 존재가 참 한심스러웠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버지에 대한 반감인지? 아니면 공포심 때문인지 한자를 보면 울렁증이 생기더군요



여하튼 아버지가 저한테 알파벳을 물어보던 그때 전 이미 문장을 읽는 수준이었고

영어 독해까지 하던 시기였습니다

엄마가 "대견하다, 어떻게 영어는 그리 금방 배우니? 남의 나라 말"을 하시면서

칭찬해주시곤 했던 시기였던 거죠

자식 교육에 무관심이 아닌 자식에 대한 무관심 앞에 나의 서러움은 제대로 폭발했고

저는 아버지 앞에서 보란 듯이 영어문장을 술술 읽어버렸습니다


열심히 읽고 있는 데 순간 제 오른쪽 뺨이 얼얼해지고 따끔해지더라고요

아버지가 제뺨을 때린 거였던 겁니다.

생전 처음으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뺨을 맞은 날이었고.....

금방 지다가 이유였던 겁니다

그렇게 저는 아버지의 폭력을 당해야 했던 겁니다.

눈물은 쏟아지고 저는 대성통곡을 했습니다, 서럽고 서러워서 저는 밤새 울었죠

그리고 마음속에서 '나한테 아버지란 존재는 없다'라며 그렇게 지워버렸습니다


지금 이 글을 적는 지금도 가슴이 아파오고 답답해지고 손이 덜덜 떨릴 정도네요

20년이 지난 지금에도 뚜렷한 상처로 남아있습니다.




아이들에게 체벌을 안 할 수는 없습니다

키우면서 꼭 체벌을 가해야만 할 때는 반드시 있습니다

그때 폭력이 아닌 정당한 벌을 주세요 , 그리고 이유도 반드시 설명을 해주시고요

저도 우리 똥똥이가 욕을 배워와서 욕을 하거나 하면 아주 따끔하게 회초리를 들었습니다

종아리를 걷게 하고는 회초리로 몇 대 때리고 왜 맞았는지에 대해서 설명을 해주었고.

반드시 이유를 설명하는 벌을 주곤 했습니다.


그리고 무슨 일이 있어도 아이의 몸에 손을 대지는 않았죠

제가 받은 그 사춘기 시절의 상처가 너무 커..........

종아리외에는 그 어떤 몸에 손을 대지 않도록 이를 악물고 노력을 했습니다.


아이들 앞에서 자신도 모를 분노와 화가 솟구친다면

한번 가만히 가만히 자신을 들여다보세요, 그러면 보일 겁니다 그 이유가

왜 이렇게 화가 나고? 분노가 나는지 가요.

자라면서 부모들로부터 받은 상처와 트라우마가 가슴에 응어리로 남아 그게

화산처럼 폭발하는 원인이 될 수도 있으니까요

솔직하게 자신을 들여다보고 자신을 깨닫는 순간 아이들과 원만한 관계가 되질 않을까 합니다

저는 아직도 상처 치유가 완전히 되지 않아서.


아니 제가 눈을 감는 그 날까지 아버지에 대한 용서는 이루어지지 않을 거라서

제 상처를 완전히 치유하진 못할 거 같습니다.

그래도 똑같은 엄마가 되진 않기 위해서 노력에 노력을 계속할 겁니다.


용서하면 편하겠죠?

하지만 그건 자신의 일이 아니기에 할 수 있는 말이라 생각합니다

지금은 친정부모님 모두 돌아가시고 아니 계시지만 전 아버지의 장례식날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을 정도였고 지금도 그립지 않네요.


이렇게 부모가 주는 상처는 자식들에게 평생의 恨이 된답니다

육아는 부부 공동의 책임입니다, 아버님들 아무리 바쁘고 바쁘셔도

내 아이가 어느 정도인지는 제대로 알고는 계셔야 합니다

그게 바로 부모의 관심이고 아이들이 갈구하는 진정한 사랑 아닐까 생각합니다

아버지란 존재는 돈만 벌어오는 존재가 절대로 아닙니다

어머니들께서도 신랑이 들어오면 아이에 대해서 보고하듯이 보고를 해주고

서로서로 아이에 대해서 알게 되는 게 있으면 정보공유를 하세요

그러면 한쪽 부모의 무관심은 사라지게 될 겁니다.


매거진의 이전글불량엄마_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