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란 이름의 꽃말은 사랑 사랑 사랑
꿈은 없고요. 그냥 놀고 싶습니다. 예, 제가 바로 그 어른이 될 줄은 몰랐습니다. 살다 보니 살아지던걸요. 이겨내는 게 아니라 넘어서는 법을 익히며 꾸역꾸역 삼켜내고 있습니다. 낭떠러지 같은 어두컴컴한 절벽 앞에 서 있을 땐, 고비를 넘어설 튼튼한 다리 하나 만들지 않고 무얼 하고 있었나 자책만 했습니다. 밀리듯 떨어진 곳이 광활한 바닷속이란 걸 깨달은 후엔 다짐했습니다. 인생, 앞만 보지 말고 가끔 발끝도 봐주자고. 어른이란 무엇일까요. 해를 거듭할수록 한숨만 늘어갑니다. 걱정이 너무 많아 그런 걸까요. 그렇다면 이 걱정은 언제쯤 다 해소될 수 있을까요. 숨을 내뱉는 순간 우리 몸은 추욱 늘어지며 긴장을 풀어버립니다. 내가 놓친 게 바로 그거였어요. 아무것도 해낼 수 없을 때, 땅거미 진 어둠뿐이 보이지 않을 때 마음껏 늘어지자고. 그래야 나의 발끝을 볼 수 있겠다고. 내가 서 있는 이곳이 결코 절망의 끝자락이 아니라고.
아버지는 제 기억이 까마득하게 어린 시절부터 퇴근길에 양손 가득 무언가를 들고 오셨습니다. 가끔은 우리만이 공유하는 텔레파시가 실제로 존재하는 걸까 의심될 정도로 그날 먹고 싶은 음식을 짜잔 하며 들고 오셨습니다. 회사 근처 역사에서 파는 델리 만주, 집 근처 포장마차에서 사 온 삼천 원짜리 떡볶이, 눈 내리는 날 손을 호호 불며 들고 온 붕어빵 열 마리. 종종 우리의 텔레파시가 실패하는 날도 존재했습니다. 방금 막 밥을 먹어 부른 배를 빵빵 치고 있을 때, 통닭 봉지를 들고 퇴근하시던 아버지. “아, 나 벌써 밥 먹었는데! 치킨은 어제 먹고 싶었단 말이야.”보름달처럼 둥그렇게 불린 볼의 딸을 바라보며 아버지는 그저 웃음만 지었습니다. 그때는 몰랐습니다. 그가 음식과 함께 퇴근하던 날은 가장 고된 하루였단 것을요. 업무에 지치고 거래처에 치이던 그는 오로지 가족의 웃음으로 하루를 달래려 했다는 것을요. 은연중 알게 됐습니다. 제가 동일하게 그 모습을 하게 됐으니까요.
카페에서 알바하며 무례한 손님으로 인해 한바탕 눈물을 훔치던 날, 집으로 향하는 제 손에 들려 있던 것은 편의점에서 구매한 보름달 빵 세 봉지였습니다. 그것은 순전히 아버지의 취향이었어요. 나는 그런 빵을 절대 좋아하지 않았으니깐요. 그때의 우리가 공유한 건 지난날 당신의 슬픔이었습니다. 이후로 지금까지 하루의 기분이 맑음에 떠 있을 때도 종종 편의점으로 발걸음을 돌립니다. 매번 지나치지 못하는 구역은 음료 맞은편에 있는 봉지 빵 코너예요. 그곳만 가면 자꾸 누군가 떠올라서 멈추게 됩니다. 이런 마음이었나요. 평소라면 떡볶이를 즐겨 먹지 않던 당신이었고, 붕어빵 가게 앞에서 기웃댈 일도 없었던 당신이었습니다. 어른이란 무엇인가요. 현재 그 자리는 평안한가요. 여전히 휘청대고 작은 파도에도 풀썩 주저앉게 됩니다. 그때마다 내가 찾을 수 있는 곳은 봉지 빵 속 부풀어 있는 보름 달 뿐이에요. 이 빵을 건네는 날마다 우리가 공유하는 슬픔이 한껏 저물어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반복되는 날이 지나고 언젠가 한껏 부풀어진 서로를 바라보며 서로의 보름달이 될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