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병이란 이런 것이다

유방암과 함께 다시 걷는 시간_15

by 포에버선샤인

수술 당일이 환자에게도 간병인에게도 가장 힘든 밤이다. 수술 후에 특히 간호사가 밤새 자주 와서 들락날락거렸던 터라 남편은 사실상 거의 밤을 샌 편이다. 나도 상태가 안 좋지만 그런 내 눈으로 보기에도 남편의 상태도 안 좋았다. '수술은 당신이 받은 게요?' 하고 묻고 싶은 정도다.


점심때 여동생이 와서 남편과 교대했다. 동생이 오기 전에 흰죽을 가지고 오라고 미리 말을 해 놓아서 동생은 점심밥이 오면서 딱 알아서 밥상을 차렸다. 이때부터 너무 마음이 편해졌다. 나는 흰죽을 먹을 테니 동생 보고 내 밥을 먹으라고 했다. 둘이 마주 앉아 점심을 먹기 시작했다. 역시나 또 죽을 쳐다보니 한숨이 먼저 나왔다.


비위가 약하다는 말이 어떤 것인지를 임신했을 때 처음으로 알았다. 평생 입맛이 좋던 내가 처음으로 음식 냄새가 역하고 밥 냄새만 맡아도 토하고 냄새에 예민해졌다. '비위가 약하다'는 소화와 기운을 담당하는 비장과 위장의 기운이 허약해, 냄새나 맛에 예민하고 쉽게 구역질, 소화불량, 체함을 느끼는 상태를 말한다.


동생이 가져온 흰죽에서 참기름 냄새가 났다. 보통 때라면 고소했을 그 냄새가 좋지 않게 느껴졌다. 지금이 비위가 약한 상태의 최고봉인 듯하다. 그만큼 소화도 안 되고 기운도 없다는 뜻이겠지. 나으려면 여기 이 흰죽을 다 먹고 토하지 말아야 할 텐데… 이건 살기 위해 먹는 수준이다.


이렇게 한숨을 짓고 있는데 마주 앉은 동생이 병원밥이 맛있다며 냠냠 먹는다. 앞에서 잘 먹으니 또 얼추 숟가락이 앞사람을 따라 들어간다. 맛있게 먹으면서도 계속 웃기는 얘기를 하니 따라 들으며 웃었다. 울렁거리는 느낌이 전보다 덜했다.


우리 어머님은 입맛이 없어지신 후로 통 식사를 안 하려고 하셨다. 밥을 물에 말아 김치랑 드시는 정도다. 그런데 아들딸들이 와서 여러 사람이 같이 나가 식당 가서 먹으면 밥 한 공기를 다 드신다. 그 이유를 이번에 알았다. 밥맛이 없을 때는 누군가랑 같이 먹어야 한다. 그래야 그마나 먹기 싫은 마음을 잠시 잊고 아무 생각 없이 숟가락을 입안으로 넣을 수 있다.


아침까지도 아무것도 못 먹겠다고 하고 있었는데 동생이 와서 떠들고 웃고 하면서 얼추 죽 반공기를 다 먹었다. 이상한 건 이렇게 뭔가를 먹자마자 미칠 듯이 잠이 쏟아진다. 이건 흔히 아는 식곤증 이상이다. 피가 모두 위로 쏠리면서 몸 안에 남아 있는 마취가스가 다 머리로 올라가는 걸까? 그래도 전신마취 후유증에서 벗어나려면 이렇게 졸릴 때 자면 안 될 것 같아 점심을 먹고 걸으러 나섰다.


수술 들어가기 전까지 매일 만보 이상을 걷던 나다. 그러던 사람이 수술을 하고 나니 몸을 움직이기도 힘들고 걷는 것도 완전 굼벵이다. 옆에서 같이 걸어주는 사람에게 "천천히!"라는 말이 입에 붙어 버렸다. 동생은 계속 내 걸음걸이 속도에 맞춰서 아주 천천히 걸어주었다. 그러면서도 속이 더부륵한 느낌을 잊게 하고 졸음도 깨우려고 부지런히 말을 걸고 이야기를 해댔다.


혼자 걸으면 걷기 싫은데 같이 걸으니 또 걷게 된다. 이렇게 동생과 같이 걷고 쉬고 물 마시고 또 걷고 쉬고 물 마시고 하며 잠 한 번을 안 자고 오후를 보냈다. 저녁밥이 나왔다. 점심때와 같이 나는 흰죽을 먹고 동생이 병원밥을 먹었다.


역시나 병원밥이 너무 맛있다며 아주 맛있게 먹는다. 그 모습을 보며 나도 또 한 수저씩 끊임없이 놀려서 이번에도 제법 흰죽을 먹었다. 죽을 먹고 나니 점심때의 데자뷰인 것처럼 미친 듯이 졸음이 와서 또 동생이랑 걸었다. 살짝 울렁울렁했던 속을 다스리려고 나랑 잘 맞는 첫 번째 항구토제를 맞고 누웠다.


오후 내내 한숨도 안 자고 걸어서인지 밤에 아주 꿀잠을 잤다. 여동생은 '간병은 이런 것이다!'를 보여주었다. 밥을 먹게끔 하고 운동하게끔 하고 불편한 느낌을 분산시키기 위해 계속 말을 걸고 나의 상태를 계속 살폈다. 아이셋의 엄마로서 육아를 통해 쌓은 스킬을 나에게 다 발휘한 것 같다. 일도 해 본 사람이 잘하는 것처럼, 간병도 평상시에 다른 사람을 챙겨 버릇하는 사람이 잘하는 게 확실하다. 동생이 너무 고맙다.


#유방암 #암수술 #통증 #울렁거림 #간병


이전 14화통증과 울렁증과의 싸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