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은 '워런버핏과의 한 끼'가 아니라 '미키마우스와의 한 끼'였다. 서커스 천막처럼 중앙이 솟은 월드 네이쳐관에 들어가면 위에서 내려오는 노랑과 주황의 리본을 마주하게 된다. 그 리본이 햇살처럼 느껴지는 것은 나만의 느낌일까? 개방감으로 가득 찬 이 건물의 가장자리를 둘러서 1층과 지하층에 식당가가 있다. 이 중에서 우리는 Garden Grill이라는 곳을 예약했다. 이곳은 지금까지 갔던 레스토랑과 달리 캐릭터 다이닝을 표방하는 곳이다.
미키마우스와 플루토, 다람쥐 칩과 데일이 식사하는 동안 각 테이블을 돌아다니면서 같이 사진 찍어 주고 마임도 해준다. 각 캐릭터의 옷을 입은 직원이 돌아다니며 응대해 준다. 미키마우스와 친구들이 만화를 찢고 나온 것 같아 신기했다. 그래서인지 가격이 만만치 않다. 점심과 저녁 식사 가격이 동일하고 메뉴도 고민할 필요 없이 하나인데 1인당 62불이다. 여기에 택스와 팁이 붙으면... 확실한 것은 1인당 62불은 아니라는 거다.
우리도 캐릭터 다이닝이니까 한번 해볼까 하는 마음으로 갔다. 미키마우스와 플루토, 다람쥐 칩과 데일을 알기는 하지만 미친 듯 좋아하는 캐릭터는 아니라서 크게 기대하지는 않았다. 이 레스토랑은 앉아 있으면 좌석이 한 바퀴 도는 구조다. 앞쪽은 위 사진에서 보는 것처럼 광장을 향하고 있으나 뒤쪽은 배 타고 가는 라이드 쪽을 바라보고 있어서 숲과 배 타고 가는 사람들이 보인다. 앉아서 한 바퀴를 다 둘러볼 수 있어서 밥만 먹는데도 여행하는 기분이 들었다.
점심은 생각보다 잘 나왔다. 식전빵과 샐러드가 나오고 한 냄비에 매시드 포테이토와 고기 2종류 그리고 구운 야채가 나온다. 다른 팬에 마카로니 치즈도 나온다. 처음에는 62불이나 하는 식사인데 이게 다야? 하는 생각이 들었었다. 먹다 보니 아주 만족스러웠다.. 양도 많고 음식도 맛있다. 서빙해 주는 분도 계속 신경 쓰며 말도 걸고 챙겨주었다. 마지막으로 아이스크림을 얹은 애플파이가 나왔다. 너무 배가 불러 후식을 거의 못 먹은 것이 아직도 아쉽다.
밥을 먹는 동안 미키마우스와 플루토와 칩과 데일이 한 테이블씩 돌아다닌다. 큰 기대를 안 했는데도 눈앞에 정말 TV에서 보던 미키와 플루토가 다니니 완전 신기했다. 그들이 막 스크린에서 나를 만나러 나온 것 같은 기분이다. 다람쥐 칩과 데일은 비슷해서 '네가 칩이니?'하고 물어보면 말은 하지 않지만 몸짓으로 대답해 준다. 우리 앞 테이블에 있던 아이들은 너무 좋아하고 난리였다. 그들이 가까이 오니, 생각과 달리 흥분되었다. 같이 사진 찍고 대화하면서 그들과의 시간을 즐겼다.
멀리서 보아오던 캐릭터와의 점심은 이런 기분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매직킹덤에서 '공주들과의 점심' 프로그램에 참여한 아이들도 이런 기분이겠다 싶다. 스크린으로만 보던 공주들과 옆에 앉아서 말하고 점심을 먹는 것만으로도 너무나 스페셜한 경험이 될 것 같다. 매년 워런버핏과의 한 끼가 경매에 붙여져서 엄청난 가격으로 낙찰된다. 그 사람 뭐 별거라고(사실은 대단한 사람이 맞다!) 그렇게 돈을 주고 밥을 먹냐! 했는데, 이젠 알 것 같다. 그런 경험자체가 주는 베네핏이 크다. 경험은 하기 전과 후로 생각과 가치관에 변화를 일으키기 때문이다.
이 식사플랜은 단지 미키와의 점심만이 아니라 다른 것도 세트로 묶여 있었다. 크리스마스 주간에 앱콧의 스페셜 이벤트는 '캔들라이트'행사다. '캔들라이트'는 합창단이 나와서 45분 동안 크리스마스 관련노래와 함께 유명연예인을 초청해서 거기에 맞는 내레이션을 하는 일종의 음악회다. 무료참석 가능하지만 좌석이 한정되어 있어 1시간 줄을 서는 건 기본이라고 한다.
그런데 지본주의 테마파크가 도입한 편의기능이 있으니... 그것은 줄 서지 않고 바로 입장 가능한 좌석표다. 한 15불 정도 하는 셈이다. 그런데 좌석표만 파는 것도 아니었다. 좌석표는 앱콧에 있는 레스토랑 중 몇몇 곳에서만 식사할 때 콤보티켓으로 구매할 수 있다. 우리가 갔던 가든그릴에서도 식사예약할 때 캔들라이트 좌석을 함께 구매할 수 있었다. 가격은 더 올라갔지만 정말 음악회 시작 15분 전에 들어가서 앉을 수 있었다. 무려 1시간 반전부터 줄을 길게 서 있는 곳인데 말이다. 엄밀히 말하면 시간을 돈으로 사는 것이다.
점심을 먹고 나서 5:15 pm에 하는 캔들라이트 공연을 보러 가기 전에 호숫가를 한 바퀴 걸었다. 라따뚜이를 보니 프랑스 관이다. 크레페가 맛있는지 크레페 매대에 줄이 엄청 길었다. 와인과 샴페인을 파는 곳도 있고 샹송도 나와서 프랑스 분위기가 물씬 난다. 그 옆에는 이슬람 문화를 보여주는 모로코다. 알라딘의 재스민 공주와 사진 찍기에 줄이 엄청 길었다. 재스민 공주도 정말 만화에 나오는 그 재스민 공주 같다. 나도 가서 줄 설 뻔했다.
그 옆 일본 관은 다른 관보다 규모가 컸다. 마침 일본 북을 치는 이벤트가 열리고 있었다. 큰 북을 치는 '난타'느낌이다. 오사카성과 비슷하게 생긴 일본성 내부는 기념품 샵인데 정말 다른 나라의 기념품샵과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컸고 사람도 많았다. 마침 초밥 만들기 시연을 하고 있었다. 사람들의 관심이 꽤 높다. 일본 문화자체에 호감을 보이는 사람이 많다.
아메리카 어드벤처 관에 들어가면 시간에 따라 아카펠라 공연이 벌어진다. 미국의 옛날 복장을 한 사람들이 아케펠라로 캐럴을 부르는데 너무 듣기 좋았다. 디킨즈의 소설 '크리스마스 캐럴'에 들어와 있는 것 같다. 생각해 보니 우리나라 민속촌에서 한복 입고 판소리를 하는 것의 미국버전이겠구나 싶다. 그 옆은 이탈리아관이다. 베네치아 산마르코 광장에 우뚝 서 있는 두 기둥인 산마르코 성인과 사자의 동상기둥을 보고 단번에 베네치아 임을 알아버렸다. 이탈리아관에서는 광대들이 서커스 같은 묘기를 하고 있었다. 역시 말은 없고 마임으로만 하는데도 너무 유쾌하고 즐거웠다. 그 옆은 독일관이다. 독일관 즈음 와서는 다리도 아프고 사람도 많고 해서 '캔들라이트'음악회를 보러 발길을 옮겼다.
야외 음악당 앞에 이렇게 음악회를 알리는 입간판이 서 있다. 그리고 두 번째 사진이 식사 예매하면서 구입한 좌석표다. 자리 번호가 쓰여 있는 것은 아니고 몇 시 공연 티켓인지가 쓰여있다. 하루에 두 번 5:15pm과 8:30pm에 한다. 참고로 5:15분 공연이 더 낫다. 공연은 약 45분 진행되어 끝나고 나면 6시였다. 그 후로 해가 지면서 쌀쌀 해지기 시작했다. 더 늦은 시간에 45분 동안 앉아 있으면 추울 것 같다.
Orlando EpCot Candle light show
음악회는 너무 멋졌다. 프로페셔널 음악회 단원들이 인간 촛불이 되어 나선형으로 중앙에 자리 잡는다. 그리고 학생들이 금색옷을 입고 객석 뒤쪽에서부터 초를 들고 입장한다. 노래에 맞춰 조명도 바뀌고 분위기도 바뀌면서 완전 귀호강 눈호강의 세계에서 헤매다 나왔다. 내레이션을 한 연예인이 유명한 사람이라는데... 내가 모르는 걸 보니 유명한 사람은 아닌가 보다. 15불 내고 편하게 앉아서 듣기에 만족도 천 프로의 공연이었다.
음악회가 끝나고 나니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이제부터 앱콧의 두 하이라이트가 기다리고 있다. Virtual Queue(버츄얼 큐)로 예약해야만 탈 수 있는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라이드와 9시 반에 하는 호수 위의 레이저쇼 불꽃놀이가 그것이다. 이 두 하이라이트는 다음 주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