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방암과 함께 다시 걷는 시간_02
며칠 후에 결과가 나왔다고 전화가 왔다. 지난번과 비슷한 결과를 예상하며 병원에 갔다. 건강검진을 할 때 암표지자 검사도 추가했었다. 그때 유방암 표지자 검사에서는 아무 이상 없는 정상이라고 나왔다. 그래서인지 '뭐 별일 있겠어?' 하는 마음이 더 컸다.
한 방 크게 맞은 느낌이다. 의사 선생님은 조직검사 결과가 암이라고 했다. 그것도 0 기암은 아니란다. 얼른 대학병원으로 가라며 주치의 예약을 도와주겠다고 했다. 아니! 암 표지자검사로는 정상이라며? 선생님 말이 피검사 중 암표지자 검사는 예민도가 떨어진다고 한다. 뭬야? 지금 이 상황이 내 현실이 아닌 것 같다.
병원에서는 진료예약을 잡아 주었다. 의사 선생님은 5년 생존율이... 뭐라고 하는데 갑자기 아무 말도 안 들린다. "5년 생존율이라뇨?" 아니 그러면, 5년 후에는 죽는다는 말이냐? 5년 안에 죽는다는 말이냐? 갑자기 왜 그 '5년 생존율'이라는 말에 화가 났는지 모르겠다. 지금 생각하면, 미안하게도 암진단 소식을 전한 선생님께 화를 낸 모양새다.
집에 와서도 한동안 얼떨떨했다. 정말 '내가 유방암이란 말인가?' 인정할 수 없었다. 마음을 가라앉히니 감사의 마음이 들었다. 암 걸렸다는데 감사라니? 암 걸려서 감사한다는 말인가? 그렇다면 그건 완전 악담이다. 그게 아니라 암에 걸렸지만 지금의 나의 상황이 그다지 나쁘지는 않아서 감사하다는 느낌이 든 것이다.
일단 일찍 알게 되어 감사했다. 늦게 알수록 전이의 가능성이 커지고 치료가 힘들어지는데 건강검진으로 빨리 알게 되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지금 나의 건강 상태가 좋은 편인 것도 감사했다. 아프면 달려와 줄 가족이 곁에 있는 것도 감사했다. 그리고 암보험이 있다는 점도 감사했다. 갑자기 재작년에 유방암이 걸렸던 친구 수지가 떠올랐다.
친구 수지의 유방암 발병과 그 치료과정을 보면서 수지가 한 말 중에 크게 와닿은 것이 있었다. 일 년 동안 유방암 치료비가 꽤 나왔는데 암보험이랑 실손 보험 덕분에 다행히 치료비를 다 감당할 수 있었다고 했다. 보험이 없었다면 아픈 것도 서러운데 치료비 낼 걱정까지 더 힘들었을 거라고 했다. 그 말을 듣고 나도 그때 보험을 들었다.
보험은 정말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몰라 들어두는 것이다. 내 마음 편하지고 들어둔 것인데 이렇게 암보험을 쓰게 될지 몰랐다. 여전히 정말 '내가 암에 걸린 걸까?' 하는 의문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혹시라도 암이라면 병원비는 해결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다니... 머릿속이 온통 뒤죽박죽이다.
최근에 암은 나에게서 멀리 있는 것이 아니었다. 코로나 시기를 지나면서 내 친구 중에 세 명이 암진단을 받고 수술과 치료를 하고 나았다. 가장 처음에 경진이가 난소암 4기에 걸렸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가장 충격을 받았다. 너무 놀라고 슬퍼서 일주일간 거의 잠을 자지 못했다. 그 소식을 들었을 때 경진이는 이미 수술을 다 한 후였다.
겨우 용기를 내서 경진이에게 전화를 했다. 경진이는 씩씩했고 그 간의 이야기를 해주었다. 경진이도 처음에 얼마나 경황이 없고 온갖 걱정이 밀려왔을까... 그렇지만 이제 수술도 잘하고 밥도 잘 먹고 치료 잘하고 있다고 했다. 계속 약을 먹으며 추적 관찰 중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아~ 다행이다 싶었다.
1년 뒤 수지가 유방암이 걸렸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수지는 무려 회사를 다니면서 유방암 투병을 했다. 항암과 방사선 치료시기에는 요양병원에 가서 쉬면서 회사도 다녔다. 지금 이렇게 유방암 판정을 받으니 그 당시 흘려들었던 수지의 이야기가 다시 떠올랐다. 수술도 잘 되고 그 후로 치료도 잘 돼서 지금은 회사도 여전히 잘 다니고 있다.
그 후로 친구 재희가 대장암 판정을 받았다. 이 경우는 마음이 좀 아팠다. 엄마의 암투병을 도우며 엄마를 보살피던 재희는 엄마가 결국 암으로 돌아가시고 나서 장례를 치른 후에 건강 검진을 했다. 그때 대장암을 발견했다. 엄마를 병간호하느라 이미 몸이 힘들었고 장례를 치르면서 마음도 충분히 힘든 상태에서 암판정까지 받은 재희는 얼마나 힘들었을까?
재희는 항암이 너무 힘들었다고 했다. 목소리도 기운이 없어서 오래 통화도 할 수 없었다. 그러나 신앙의 힘으로 꿋꿋이 버티고 두 번째 삶을 살고 있다며 웃어 보이는 재희를 보며 '암 그까짓 거! 이렇게 다들 잘 이겨내고 있잖아'하는 생각이 들었었다.
이런 상황에서 나에게 온 암진단은 처음에는 생각보다 크게 타격을 주지는 않았다. 이미 세명의 친구가 나에게 간접 경험을 시켜준 셈이다. 이 또한 감사했다. 암이란 저 멀리 나와 상관없는 줄 알고 있었다면, 가장 처음 경진이의 암소식을 들었을 때처럼 큰 충격으로 잠도 못 자며 괴로웠을 것이다. 스스로를 구박하고 운명을 미워하며 힘든 시기를 보냈을지도 모른다.
암진단을 받았어도 여전히 내 친구들의 일인 것처럼 '남의 일'인듯한 상태로 며칠이 흘렀다. 대학병원에 가서 다시 검사하면 암이 아닐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일말의 희망을 바라는 마음도 있었다. 그러면서도 '왜 나야?' 하는 분노와 '일찍 발견해서 감사하다'는 긍정의 마음이 시도 때도 할 것 없이 들이닥쳤다. 유방암센터 교수님과의 진료예약 날이 오기까지 이러저러한 생각으로 마음이 싱숭생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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