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은 내 탓일까 남 탓일까?

유방암과 함께 다시 걷는 시간_09

by 포에버선샤인

수술방법이 정해지고 나서 수술을 기다리는 동안은 정말 번뇌의 시간이다. 차라리 빨리 후딱 해버렸으면 좋겠다. 기다리는 동안 많은 생각이 든다. 일단 부모님께도 수술날짜가 변경된 것을 알렸다. 어떤 반응이실까 걱정되면서도 궁금했다. 엄마는 '잘 될 거야' 하시고 아버지는 '일찍 알아서 얼마나 다행이냐' 며 차라리 웃으신다.


너무 큰일 난 것처럼 우거지 상도 싫지만 이렇게 아무 일도 아닌 것처럼 반응하시니 또 '이건 뭐지?' 싶다. 그래도 암인데 말이다. 아마도 기운 내라고 오히려 과하게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신 것 같다. 집에서 두 분만 계실 때는 쳐져계시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오랜만에 전화한 친구가 내 목소리에서 이상한 느낌이 들었는지 자꾸 묻길래 이야기해 주었다. 친구는 벌써 목소리가 촉촉해지고 한숨을 땅이 꺼지게 쉰다. 안 보이지만 아마도 눈물도 찔끔거리고 있을 거다. 눈물이 많은 친구다. 이렇게 한숨을 내쉬고 울먹이니 그것도 또 거슬린다. 뭔 죽을병 걸린 것 같아 나도 덩달아 마음이 무거워진다.


가만히 내 마음을 들여다보았다. 큰일 아닌 듯이 반응하면 섭섭하고, 울며 한숨 쉬며 큰일인 듯이 반응하면 나도 같이 깔아져서 힘들다. 그럼 도대체 어떤 반응을 기대하는 거냐? 나와 직접적인 관계를 갖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의 유방암 소식에 일단 다 놀란다. 나라도 그럴 것이다.


내가 원하는 반응은 아마도 조금 걱정하고 많이 응원해 주는 그런 반응 같다. 너무 과하게 긍정적이어서 '요즘 유방암은 거의 다 살아'라고 하는 것도, '암이라니 큰일 났네' 하는 것도 힘들다. 그리고 투병과정 동안 응원해 주는 것이 큰 힘이 될 것 같다.


암에 대한 반응은 사람마다 많이 다르다. 친구의 동서는 암에 걸린 것을 시어머니에게만 알렸다고 한다. 시어머니를 통해 이 소식을 들은 친구는 전화해서 '힘들지?'라고 위로하고 응원해 주어야 할지, 아니면 모르는 척해야 할지 애매하다고 했다. 다른 사람이 알기를 원치 않으면 모르는 척해 주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암에 걸리면 '내 탓이요'와 '남 탓이요'가 가장 많이 나타난다. 내가 뭘 잘못해서 암이 걸렸다고 생각하는 인과응보도, 남들 때문에 스트레스 받아서 암에 걸렸다고 생각하는 남 탓 주의도 모두 정신건강에 해롭다. 암은 정신과 신체를 쥐락펴락하는 큰 병임에 틀림없다.


몸이 아프기 전에 정신이 벌써 한차례 폭풍을 겪는다. 평상시 감정변화가 적고 담담한 편인 나도 이렇게 질풍노도의 시기를 겪고 있으니 말이다. 예민한 사람들은 수술하기 전에 벌써 많~이 힘든 상태일 것 같다.


내가 좋아하는 말이 있다. 유방암 정보를 찾아 유튜브를 헤매다가 들은 말이 있다. '암은 운이다' 다. 암은 내가 뭘 잘못해서도 남 때문에 스트레스받아서도 아니고 그냥 운이라는 거다. 그래 그런 거다. 유방암은 그냥 운이다. 그냥 운이라면 받아들여야지 뭐 별다른 수가 있나? 그리고 나에게 다가온 운이 나쁜 운이 될지 좋은 운이 될지는 나에게 달렸다. '지금이라도 알게 된 게 어디냐' 하며 '감사합니다' 하면 좋은 운이 되는 거다.


이제부터는 좋은 면만 보려고 한다. 이번 암진단의 감사한 점을 꼽아보았다.

1. 건강검진에서 빨리 발견해서 감사

2. 남편과 가족이 곁에 같이 가까이 있어 감사

3. 치료받는 병원이 가까워서 감사

4. 좋은 의사선생님을 만나서 감사

5. 전에 암보험을 들어 둔 것에 감사

6. 미세석회가 문제긴 하지만 암 자체는 순한 암이고 초기라 감사

7. 수술할 때 팔을 만세자세로 있는데 오십견이 오지 않은 왼쪽 팔이라 감사

8. 수술하면 압박브라를 해서 더운데, 시원한 계절에 수술하게 되어 감사

9. 선항암 안 하고 바로 수술로 진행해서 감사

10. 수술날짜가 빨리 잡혀서 감사


감사를 쥐어짜는 느낌이다. 그래도 이렇게 적고 보니, 이렇게나 감사한 점이 많다. 나에겐 오히려 전화위복인 셈이다. 매번 가족을 위해 기도했는데 이제는 나를 위해 기도한다. 다른 사람들을 먼저 생각했다면 이제는 나를 먼저 생각할란다. 인생 어찌 될지 모른다고 생각하니, '열심히'가 아니라 '즐겁게' 살고 싶다.


이제 다음 주에 있을 수술을 기다리고 있다. 수술을 기다린다는 것은 마음이 영 불편한 채로 하루하루를 보내는 거다. 불편한 마음이 올라올 때마다 위에서 꼽은 감사를 하나씩 꺼내어 감사의 망치로 두더쥐 잡듯이 불만을 눌러버려야 겠다.


#유방암은 #운이다 #남탓도아니고 #내탓도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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