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프면 그냥 울어
감정은 솔직해지는 연습이 필요하다.
소설을 읽다가 우는 일이 잦아졌다. '감수성이 풍부해진 건가'라는 생각을 하다가 '감정에 솔직해진 거지'라는 결론을 내렸다. 예전엔 눈물은 곧 잘 참는 편이었는데, 요즘은 톡 하고 건드리면 금방 눈앞이 뿌예지는 상태를 자주 경험한다.
한참 감정을 숨기고 살던 때가 있었다. 슬퍼도 안 슬픈 척, 우울해도 행복한 척, 절망해도 괜찮은 척, 그렇게 척을 방패 삼아 하루를 살던 때가 있었다. 상처를 잘 받는 성격임에도 그렇지 않다고 거짓으로 포장을 일삼다가도, 혼자 있는 시간엔 켜켜이 쌓여있는 포장들이 벗겨져 덩그러니 남아있는 진실들과 심연 속에 빠져야만 했다. 그러니 혼자 있는 시간만큼은 그렇게 헐벗은 채로 상처들과 마주해야 했다.
단지 좋은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기점으로 시작된 혼자만의 사투였다. 타인이 편하다면 내가 조금 불편하더라도 참는 편이 나을 거라 치부했다. 하지만 결국 그런 관계는 오래가지 못했다. 내가 주는 배려만큼 타인은 나를 배려하지 않았다. 아니 그러지 못했다. 그리고 그런 관계는 우정에서도 연애에서도 사회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결국 감정에 솔직하지 못한 사람은 스스로가 본인의 삶을 거짓으로 꾸미기를 자처한 꼴이 되어버렸다. 그래서 행복하지 못한 삶을 살았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런 나에게도 '네가 나에게 해준 배려만큼 나도 노력할게'라는 따뜻함을 안겨준 사람이 있다.
타인에게 주는 배려가 당연한 듯 배어있는 나에게 처음으로 '네가 원하는 것을 얘기해봐'라고 물었던 사람. 본인이 필요한 것이 아닌 내가 필요한 것을 우선으로 생각한 사람. 혼자 울고 있던 날 우울하다는 연락한 통에 한달음에 달려와 멋진 바다를 보여준 사람. 어쩌면 처음 나를 사랑한 타인이었다.
처음 울음을 참았던 날 그는 '슬프면 그냥 울어'라고 말했다. 우는 게 슬픔을 이기는데 특효약이라며 울음을 참는 내게 말했다. 그날 처음으로 그에게 내 약점을 보였다. 울면 더 못생겨지는 얼굴과 눈물보다 콧물이 더 많이 나오는 진귀한 광경에도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나를 안아주었다.
그렇게 나는 타인을 통해 나를 포장하던 거짓들을 한 꺼풀씩 벗겨냈다. 진심으로 내가 원하는 것, 그리고 내 안에 숨어있던 진실된 감정을 표현하는 방법을 연습하기 시작했다. 처음 걸음마를 떼는 아이처럼 넘어지고 일어서기를 반복하면서도 '정말 내가 솔직해져도 괜찮을까?'라는 생각들이 머릿속을 지배했다. 그때마다 '그래도 괜찮아'라고 말해주는 사람이 있었기에 다치지 않고 걸을 수 있었을 것이다.
끝내 감정에 솔직해진 지금은 책을 읽다 울더라도 그 눈물을 창피해하지 않는다. 오히려 슬플 때 울고 기쁠 때 웃는 내가 퍽 인간적으로 느껴져서 좋을 따름이다. 하마터면 평생 모를뻔한 내 진심을 알게 해 준 그에게 감사함을 전한다. 감정은 외면할수록 독이 되는 것임을. 타인의 감정이 본인의 감정보다 우선시돼서는 안 되며, 포장하는 삶이 행복을 미루는 최악의 선택임을 다시 한번 되뇌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