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라는 선택

by 고사리


기상 알람이 울리고 나는 퇴사를 결심했다.




매일 아침 줄곧 입버릇처럼 뱉던 말 "나 퇴사할 거야."를 이제는 실행할 때가 된 것이다. 지난 10년간 수없이 스쳐간 월급처럼, 깼다 부었다 반복한 적금통장처럼


'고수희 님의 퇴사 시기가 도래하였습니다.'


삑- 하고 기계음이 울린 것 같았다.


마구 솟아오르는 확신을 움켜쥐고 인사팀을 찾아갔다. 몇 주나 이어진 '이제는 퇴사하자!' 프로젝트는 대략 이런 순서로 진행되었다.


면담→서류작성→면담→서류작성→사직서


예상보다 빠른 속도에 불쑥 불청객이 문을 두드렸다.


'똑똑- 안녕? 나 불안이야 너 괜찮니?'


지난 십 년이 몇 마디 말과 서류 몇 장으로 끝이 났지만 생각만큼이나 별거 없었다. 썩 괜찮지도 나쁘지도 않은 묘한 기분.


"이제 퇴사하면 뭐할 거야?"라는 과장님 질문에

'아직 아무런 계획이 없어요. 무계획도 계획이라..'라고 답하기 싫어서


"공부할 거예요."라고 했다.


공부만큼 썩 괜찮은 핑계도 없다.






퇴사할 준비를 마치고 가까운 사람들에게 내 결심에 대해 이야기했다. 제일 먼저 가족들은 내 결정을 존중한다고 했다. 고생한 만큼 푹 쉬라고 그동안 고생 많았다고.


민아는 내 결정이 멋지다고 했고, 소현은

"축하해! 이제 우리 수희가 하고 싶은 건 다하고 사는구나."라며 자기일 처럼 기뻐했다.


*민아와 소현은 고등학생 때 만난 친구들이다. 우리는 스물여덟 살이 되었어도 여전히 술도 마시고 욕도 하고 함께 울기도 웃기도 한다.


그와 달리 직장에서는 걱정과 우려의 목소리가 컸다. "어디 아파?"부터 "결혼이라도 하고 나가지." "여기만큼 좋은 직장 없다 잘 생각해라." 걱정인지 비아냥인지 헷갈리는 목소리까지 그야말로 혼돈 그 자체였다. 그동안 퇴사를 하지 못했던 수두룩한 이유가 이 우물 안에 있었다. 올챙이 시절부터 헤엄쳐온 탓인지, 개구리가 되어서도 우물 밖을 벗어나지 못했다. 어쩌면 나는 이 안에 있는 모든 것들이 세상에 전부라고 착각하며 살았는지도 모른다.






수많은 걱정 속에서도 유독 내 발목을 붙잡았던 건 애매한 나이였다. 스물여덟 적지도 많지도 않은 애매한 나이.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이 적어도 나에게는 해당되지 않을 것이라는 두려움이었다.


'환갑 넘어 보디빌딩에 도전한 남성'

'90 넘어 대학에 입학한 여성'

'77세에 스카이 다이빙에 도전한 여성'

'90 넘어 중학과정 졸업'


하지만 알고 있다. 뉴스 헤드라인에서 심심찮게 보이는 『나이를 막론하고 도전하는 사람들』을 보면 내가 정말로 두려워하는 것은 '나이'가 아니라 '의지'라는 것을. '어쩌면 세월이 주는 힘이 의지를 만들어내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덧붙였다.


세월(나이) + 힘 = 의지


:) 이 공식은 나이를 먹을수록 의지가 강해지는 신비한 공식이다.






77세에 첫 스카이 다이빙에 도전한 영국 여성 머시 백스는 이렇게 말했다.


어차피 인생은 한 번뿐이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하고 싶은 일을 미룬다.
'그 일을 했으면 좋았을 텐데'라고 후회하는 사람을 볼 때마다 마음이 안 좋다.
이번 생은 한 번뿐이라는 것을 기억하길 바란다.


출처 : 허프포스트 코리아(https://www.huffingtonpost.kr)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라는 말이 있다. 불과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무엇을 먹을까? A or B? 하는 생각부터 하루가 시작되니 말이다. 나는 퇴사라는 선택지를 제2의 인생이라 부르기로 했다. 앞으로 수많은 기회와 선택의 순간에 실패와 좌절을 경험하겠지만 정답은 없다. 그것 또한 내가 쓰는 인생의 일부이기에.


퇴사한 지 약 5개월이 지났다. 그동안 나는 먹고 자고 싸고 여행도 다니며 자격증을 땄다. 틈틈이 구직활동을 하면서 실업급여를 받는 덕에 나름 윤택한 삶을 산다. 오늘 저녁엔 뭘 먹을지 고민해봐야겠다. 결국 선택의 연속이다.






-2022년 늦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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